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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보통의 연애
백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소설집 속 <강묘희 미용실>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넌 그냥 형용사야. 독립된 명사가 될 수 없지. ...
넌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질투하는 거야.
네가 쓰지 못한 내 책을 질투하는 거지."
이혼한 남편은 소위 잘나가는 작가.
그리고 화자인 나는 오자를 보면 고쳐놓고 싶은 욕구가 체득된 편집자.
그쯤에서 이력이 끝난다면 다행이었겠지만 나는 소설을 쓰고 싶으나
쓰지 못한 사람이라는 꼬리가 붙는다는 것.
이혼을 하는 마당에 그런 독설을 받아냈을 리 없겠다.
거기다 소설이 시작된 발단은,
몇 년이 흘러 그 독한 말 던진 남편이 썼다며 보낸 원고에
오류가 득시글하다는 사실.
한데 이야기 진행의 실마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흐른다.
강묘희, 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나는, 사천이란 후미진 지방에 있는
낯선 동명이인의 미용실을 찾아가는 것이다. 왜?
이 책의 말미에는 소설보다 더 그럴 듯한 비평 제목을 볼 수 있었다.
스스로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법.
나는 나지만, 실체에 나를 두지 않고 그림자에 나를 둔다고 이해해도 될까.
독설이지만 어느덧 형용사가 되어버렸다는 건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걸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달리 기분 괜찮은 문장으로 구사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꿈을 코앞에서 보고 끝난 사람에게는 그다지 기분 매끄러운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법.
이 소설집에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말에서 <푹>이라는 소설에 붙인 제목의 이야기를 읽고
소설보다 그 제목의 감각에 푹 마음을 붙이고 말았던 것이다.
소설가에게는 별로 기분 좋은 감상이 아닐 테지만
솔직히 독자로서 나는 그랬다.
소설은 단맛이 나고 깊이는 내가 모르는 곳쯤에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저 읽고 말 수 있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푹, 이라는 제목처럼 순간 푹 찔러 들어가는 것은 있었다.
아, 살다보니 어느새 내가 에상하지 못했고 이해도 할 수 없는 나로
산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면
이 푹, 이라는 단어에 매료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느 눈 쌓인 마을의 한곳에 푹 매몰되듯 앉았듯이
어느 예리한 칼끝에 내 몸의 한 부분을 점령당했을 때 쓸 수 있는
이 푹, 이라는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