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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이종인 옮김 / 동아일보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원서를 읽은 건 아니지만 작가는 무척 평범한 어휘로
무난한 문장을 만드는 사람일 것이다.
퍼즐을 맞추듯이 꼼꼼이 조직된 글이 아니라
무척 수월하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단편들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평범한 삶의 울림을 만들어냈다.
마치 생활의 발견이란 영화나 개콘의 코너처럼
그냥 그렇구나, 하다가 갑자기 꼭 짚어낸 듯한 느낌을 받게 되듯이.
잠시동안의 일, 이라는 처음 단편부터 좋았다.
우연히 며칠 간의 정전을 경험하면서 부부가 진실게임 같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귀여운 발상이었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눈빛을 감지할 뿐 눈빛이 말하는 걸 보지 못한 채
그들은 담담히 감춰뒀던 이야기를 한다.
어둠은 진실 속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읽게 했고,
약함을 인정하며 받아들이게 했다.
하지만 그들이 마지막날의 이야기를 예상하지 못했듯,
나도 반전처럼 돌연 들려온 이야기를 짐작조차 못했다.
아, 그렇게 사람은 어둠이 지난 후, 눈물을 흘리게 되는구나.
어둠을 활용할 수 있는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그들 부부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만의 상처가 가장 깊다고 생각하며 위로해주지 않는다는 원망을 품는 사람은,
이들처럼 우연한 어둠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그도 아니라면 의도적인 어둠이라도.
표제작인 축복받은 집, 도 흥미롭다.
종교적인 의미로서의 축복받음, 이 종교 밖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아니, 축복은 받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
여러가지 상념들을 할 수 있는 단편이었다.
작가의 소설은 무척 아름답다.
평이한 삶이 얼마나 소중하며 놀라운 역사인지, 마지막 단편은 이야기한다.
이렇게, 여기까지 살아온 나의 모든 발자취는 오롯이 나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내 옆에는 나의 배우자, 나의 자식, 나의 부모, 그리고 나의 동료들,
그들이 여기까지 함께 걸어와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작가의 단편 속에는 평범한 내가 그런 위로를 받는 듯 마음이 편안했다.
예전에 읽은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는데 오래도록 나를 위로했다.
그는, 하느님이 내게 어떤 역사를 원하실까, 하는 고민을 내려놓게 되었다고 했다.
하느님은 내게 뭘 원하시지 혹은 원하시지도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는,
내용이라고 그 책을 읽던 당시의 나는 이해했다.
그리고 상처받았다고 암울해했던 나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역사에 남을 자취도 없고, 이름도 남지 않을 테지만,
오래도록 꾸준히 묵묵히 삶을 걸어온 나, 와 같은 존재들.
작가는 소설에서 그들을 가만히 얘기하고 웃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