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 - 2010년 제55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박성원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이런 사람이 있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 퍼즐을 맞추는데 마지막 하나가 없다.
이리저리 찾아보지만 작은 퍼즐조각이 좀처럼 나와주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퍼즐을 넣어두지만 해가 질 때까지
퍼즐조각 하나가 가슴에 박혀 빠져나오지 않는다.
이런 사람 어떤가. 지금에 와서는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다.
얼룩, 다시말해 이 빠진 퍼즐은 도무지 신경쓰여 못 살겠고,
아끼던 책에 보기 싫은 자국이 생기면 화가 나는 사람이었다, 나는.  

한데 얼룩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면 얼룩도 썩 괜찮은 존재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얼룩이 있으면 깨끗이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얼룩이 생긴 기억도 더러 추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빠진 퍼즐도 요기에 어떤 그림이 들어갈 수 있나 맹한 상상을 할 수 있고,
이가 하나 빠졌으니 이제 하나 더 잃어버린들 그리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옷의 얼룩은 조금 맘상하지만, 조금만 성의가 있다면 어떻게든 뺄 수 있고,
아예 새 옷을 살 핑계를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생각하는 각도를 달리하면.  

사람이 옷에 얼룩도 좀 묻히고 그래야지, 하고 소설 속 여자는 투덜거린다.
그 얼룩이 아기를 잃어버리는 일이라면, 어이쿠 생각의 각도를 바꾸면 하고 흰소리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생긴 얼룩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다. 
여자는 길을 벗어나 어디론가 자꾸만 간다.
그곳이 울란바토르든 어디든, 얼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가슴에 박힌 퍼즐조각이 훌렁 빠져주지 않을까.  

좋은 단편들이 많다. 내 삶과 연관을 지어보자면, 윤고은의 <1인용식탁>을 읽으며
소외와 고독이 판치는 세상에 내 자식을 내어보내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나처럼, 혹은 누군가처럼, 내 아이도 소외되고 고독하고 인내할 것이다.
이장욱의 <변희봉>에서는 내 안의 세계와 따로 도는 모두의 세계, 혹은 모두의 세계와 따로 도는
나의 세계가 만져졌다. 모두의 세계가 모, 라고 하면, 나의 세계는 도, 가 될 수도 있는 것.
니 변희봉 아나? 하고 숨 끊어지는 아버지가 묻는 순간 남자는 얼마나 좋았을까.
내 세계 안의 변희봉을 아는 사람은 모두가 내 편처럼 받아지는 것이 삶인 것이다.  

어떻게 된 게 이 소설집 속의 단편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 하나 빠진 것 없는 퍼즐 같다.
하나하나 읽어나가면서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삶을 바라보는 여러 눈들을 이 속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물론 작가들의 눈을 내 마음대로 이해하는 점이 없잖아 있지만.

내 맘대로 이해하는 덧붙임;
예전에는 내가 꼬장꼬장 기억 잘하는 사람인 줄만 알았다.
한데 살다보니 얼룩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된 건지,
원래 얼룩을 일정기간만 지나면 멍하게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얼룩이 눈가리고 아웅을 하면 얼룩으로 치지 않는 성격이 내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데, 이것 역시 생각하기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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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이혜영 지음 / 한국방송출판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며칠 전 지리산을 다녀왔다. 
일정이 빠듯해서 딱 하룻밤을 산속에서 잤지만
지금도 몸에 남아 있는 건, 지리산 둘레길의 서늘함이다.
그나마 그 둘레길도 벽송사까지 금계마을을 내려오면서 걸었을 뿐이다.
운이 닿지 못한 탓이겠지만 벽송사까지 걸어올라가면서
뜨거운 아스팔트 길 위에 서 있었는데, 머릿속에 김이 다 올랐다.
이 길을 걷자고 지리산을 찾았나 싶어서 벽송사까지만 아무 말도 없이 올랐다.  

그러다 그 길바닥 위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시원한 소나기 속에서 맥주를 들이키면서 아차 싶었다.
지리산의 벽송사를 가려고 길을 나선 게 아니었는데도
우선 벽송사까지만 가겠다고 벼르며 분을 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리산 산길을 걸어보기 위해 길을 나선 참이었다.
그걸 잠시 잊고 아스팔트 위에 서서 분을 씹고 있었다.  

누구나 저곳에 가자, 고 목표를 정하지만 사실은 가는 길 위가 너무 소중하다. 
너무 높다 생각하여 한번에 오르려 하지 않던 산이, 내게는 지리산이었다.
오를 때는 아스팔트 위에 섰지만 내려올 때는 둘레길 위에 섰다.
그 짧은 둘레길 위에서 시누대 숲도 만났다.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대나무 숲길, 작은 산짐승들이 몸을 숨기고 다니는
고요하고 적막하고 깜깜한 길을 들여다보며 나는 숨을 죽였다.
잠깐 그 길을 걸었지만 그 서늘함은 며칠이 지나도 기억이 선했다.  
둘레길을 걸으면 정상을 오르지 않아도 지리산을 품게 된다. 
아주 짧게 걸었지만 머릿속을 관통하듯 그 사실을 깨달았다.  

지리산으로 떠나기 전, 이 책을 읽었다.
워낙 여행책은 취향에 맞지 않았지만, 알아야 보일 거라 생각하며
나름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듯 읽었다.
이 책은 둘레길을 속속들이 일러준다. 
지은이의 감상을 굳이 읽기 싫다면 내려놓고 지리산 둘레길 코스만
꼼꼼이 읽어도 좋겠다.
하지만 다녀와서 다시 훑어보는 것도 좋았다.
내가 느꼈던 지리산과 지은이가 느꼈던 지리산이 곳곳에서 겹쳐지면서
마음을 시원하게 적셨던 지리산 둘레길의 흙길이 선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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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물 검역소
강지영 지음 / 시작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강지영의 소설은 재밌다.
스토리텔링의 힘이 강력해서 책 한 권을 뚝딱 읽어내게 된다.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를 만큼 빠른 호흡으로 독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게다가 불쑥불쑥 여물어 올라오는 유머감각까지 동원된다.

전작 <심여사는 킬러>도 그랬다.
이야기는 칼을 쥔 심여사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매번 다른 화자가 그들만의 인생을 들려준다.
모두는 그들 인생에서 이야기의 화자가 되어 울리고 웃긴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심여사의 허무맹랑하고도 거침없는 칼부림이
강력한 스토리텔링이 되어 큰 그림을 그리는 식.  

신문물 검역소, 라는 소재도 흥미롭지만 이야기가 튀어나가는 방식도 경쾌하다.
도대체 장르가 뭘까, 의아할 만큼 웃겼다가 안타까웠다가 긴장의 땀을 흘리게 한다.
물론 지난번 소설에서도 조금 아쉬웠던 건 있었다.
긴박감이 있어야 할 부분이 약간 묻히는 바람에 이 사람 죽은 거야, 하고
다시 되짚어 읽게 되는 것이다. 벌레가 죽을 때도 찍 소리를 내는데
하물며 좀 전까지 독자를 안타깝게 하던 사람이 죽는데도
어, 죽었어? 하고 멍해지는 건 좀 문제있지 않나?
하긴 내 둔한 감각이 빠른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전작에서도 약간 의문스러웠던 점이었다.  

함복배, 라는 인물의 인생은 생각을 남긴다.
어렸을 때는 신동이라고 불릴 만큼 영특하고 탁월했던 인물이,
그럭저럭 먹고살 만하게 살아간다.
영리한 배우자를 만난 것이 어쩌면 그의 인생의 최고정상이 아닐까
아쉬울 법한 인생이다.
하지만 함복배는 그다지 미련스럽게 과거를 들먹이지 않는다.
그는 술술 풀려나가는 인생을 가지지 못했지만
적당히 의롭고 덕이 있으며 배려심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는
그리 실패하지 않았다. 그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
소설을 끝까지 읽다 보면 그가 자신의 인생이 흘러가는 모습을
편히 받아들이며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의 반짝거렸던 순간에 집착하지 않았기에
거들먹거리는 어사 친구와도 그럭저럭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함복배의 순진한 인생은 작가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다.
교활하거나 계산적이지 못해 늘 한 박자 느리지만
자기만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을 그려냈다.
불행은 그 페이스를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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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 2009 제9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여러 소설가들의 단편을 한 권에 담은 책은 참 좋다.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도 어떻게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한 편씩 틈날 때마다 읽는 재미가 있다.  

나는 유독 수상작인 박민규의<근처>와 김숨의 <간과 쓸개>가 좋았다.
우연히 마침맞게도 이 책을 들을 무렵 몸이 안 좋았다.
낮잠도 안 자는 사람이 하루 종일 누워서 무겁게 떨어지는 머리를
땅에 대고 지내던 그 며칠간, 나는 누워서 이 책을 간간이 읽었다.
마흔의 미혼 남자가 시한부 삶을 안은 채 고향을 찾았고(근처),
일흔 넘은 남자가 암이 드나드는 몸을 안은 채 고향에서 산다(간과 쓸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따로 진행되었지만, 어쩐지 근처를 먼저 읽고 난 후라
마흔의 미혼남자가 간과 쓸개에서도 어른거렸다.
그들의 무상한 삶과 어른거리는 추억들이 가만히 있어도 호흡을 한 번씩 멈추게 했다.  

소설은 어느 순간 내 삶에 누웠던 추억들을 설설 찾아낸다.
그것이 아픈 추억이라도, 혹은 지우고 싶었던 것이어도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해서 좋다.
내가 나이지 못하고 나라는 존재의 근처에서 머물며 살았다 해도,  
내가 독성을 해독하지 못해 여전히 가슴을 쥐고 있다 해도,
어디까지나 내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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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계산법 4 - 자연수의 곱셈과 나눗셈 완성
기적의 계산법 연구회 지음 / 길벗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솔직히 연산책을 구입할 생각은 없었다. 
큰수도 암산을 잘하는데다 곱셈 나눗셈도 그리 어려워하지 않아서
연산은 잘하고 있다고 나름대로 판단했다.
한데 가만보니 틀리는 문제들은 모두 연산에서 어긋나 있었다.
기적의 계산법을 사줄까, 했더니 연산은 하기 싫다며 마다했다.
그래도 계속 연산 실수가 마음에 걸려 달래가며 이 책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하루에 딱 2페이지. 곱셈에서 한 페이지, 나눗셈에서 한 페이지.
그래봐야 10분도 안 걸린다.
며칠 풀고 나니까 빈틈이 보였다.
이를테면 이런 거. 7 빼기 4는 2라고 쓰고, 9 빼기 7은 3이라고 쓴다.
세 자리 곱하기 세 자리를 다 풀어놓고 정작 덧셈 뺄셈에서 틀리는 거다.  

아, 이래서 네가 자꾸 어처구니없이 틀려서 오는구나,
하고 둘이서 마주보고 웃었다.  
아니,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하는지 아이는 인상을 찌푸리고 나만 웃었다. 
그러다 몇 번의 실수가 연달아 일어나는 걸 보고 저도 같이 웃었다.  

책을 반 넘어 하면서 정확도가 무척 높아졌다.
아이도 제 실수가 어디서 일어나는지 그 지점을 확실히 본 터라
꼼꼼이 계산하느라 애썼다.  
혹시라도 이 책을 다하고도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면
똑같은 책 한 번 더 사야겠다, 생각했더랬는데
아마도 이 책을 다 끝날 즈음엔 다음 단계를 사야겠다.

사고력 문제 아무리 잘 풀어봐도 연산에서 실수하는 건 너무 허무하다.
실수쯤이야 하고 너무 놔둘 게 아니라 부담없이 짚어주는 게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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