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물 검역소
강지영 지음 / 시작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강지영의 소설은 재밌다.
스토리텔링의 힘이 강력해서 책 한 권을 뚝딱 읽어내게 된다.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를 만큼 빠른 호흡으로 독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게다가 불쑥불쑥 여물어 올라오는 유머감각까지 동원된다.

전작 <심여사는 킬러>도 그랬다.
이야기는 칼을 쥔 심여사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매번 다른 화자가 그들만의 인생을 들려준다.
모두는 그들 인생에서 이야기의 화자가 되어 울리고 웃긴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심여사의 허무맹랑하고도 거침없는 칼부림이
강력한 스토리텔링이 되어 큰 그림을 그리는 식.  

신문물 검역소, 라는 소재도 흥미롭지만 이야기가 튀어나가는 방식도 경쾌하다.
도대체 장르가 뭘까, 의아할 만큼 웃겼다가 안타까웠다가 긴장의 땀을 흘리게 한다.
물론 지난번 소설에서도 조금 아쉬웠던 건 있었다.
긴박감이 있어야 할 부분이 약간 묻히는 바람에 이 사람 죽은 거야, 하고
다시 되짚어 읽게 되는 것이다. 벌레가 죽을 때도 찍 소리를 내는데
하물며 좀 전까지 독자를 안타깝게 하던 사람이 죽는데도
어, 죽었어? 하고 멍해지는 건 좀 문제있지 않나?
하긴 내 둔한 감각이 빠른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전작에서도 약간 의문스러웠던 점이었다.  

함복배, 라는 인물의 인생은 생각을 남긴다.
어렸을 때는 신동이라고 불릴 만큼 영특하고 탁월했던 인물이,
그럭저럭 먹고살 만하게 살아간다.
영리한 배우자를 만난 것이 어쩌면 그의 인생의 최고정상이 아닐까
아쉬울 법한 인생이다.
하지만 함복배는 그다지 미련스럽게 과거를 들먹이지 않는다.
그는 술술 풀려나가는 인생을 가지지 못했지만
적당히 의롭고 덕이 있으며 배려심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는
그리 실패하지 않았다. 그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
소설을 끝까지 읽다 보면 그가 자신의 인생이 흘러가는 모습을
편히 받아들이며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의 반짝거렸던 순간에 집착하지 않았기에
거들먹거리는 어사 친구와도 그럭저럭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함복배의 순진한 인생은 작가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다.
교활하거나 계산적이지 못해 늘 한 박자 느리지만
자기만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을 그려냈다.
불행은 그 페이스를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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