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이혜영 지음 / 한국방송출판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며칠 전 지리산을 다녀왔다. 
일정이 빠듯해서 딱 하룻밤을 산속에서 잤지만
지금도 몸에 남아 있는 건, 지리산 둘레길의 서늘함이다.
그나마 그 둘레길도 벽송사까지 금계마을을 내려오면서 걸었을 뿐이다.
운이 닿지 못한 탓이겠지만 벽송사까지 걸어올라가면서
뜨거운 아스팔트 길 위에 서 있었는데, 머릿속에 김이 다 올랐다.
이 길을 걷자고 지리산을 찾았나 싶어서 벽송사까지만 아무 말도 없이 올랐다.  

그러다 그 길바닥 위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시원한 소나기 속에서 맥주를 들이키면서 아차 싶었다.
지리산의 벽송사를 가려고 길을 나선 게 아니었는데도
우선 벽송사까지만 가겠다고 벼르며 분을 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리산 산길을 걸어보기 위해 길을 나선 참이었다.
그걸 잠시 잊고 아스팔트 위에 서서 분을 씹고 있었다.  

누구나 저곳에 가자, 고 목표를 정하지만 사실은 가는 길 위가 너무 소중하다. 
너무 높다 생각하여 한번에 오르려 하지 않던 산이, 내게는 지리산이었다.
오를 때는 아스팔트 위에 섰지만 내려올 때는 둘레길 위에 섰다.
그 짧은 둘레길 위에서 시누대 숲도 만났다.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대나무 숲길, 작은 산짐승들이 몸을 숨기고 다니는
고요하고 적막하고 깜깜한 길을 들여다보며 나는 숨을 죽였다.
잠깐 그 길을 걸었지만 그 서늘함은 며칠이 지나도 기억이 선했다.  
둘레길을 걸으면 정상을 오르지 않아도 지리산을 품게 된다. 
아주 짧게 걸었지만 머릿속을 관통하듯 그 사실을 깨달았다.  

지리산으로 떠나기 전, 이 책을 읽었다.
워낙 여행책은 취향에 맞지 않았지만, 알아야 보일 거라 생각하며
나름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듯 읽었다.
이 책은 둘레길을 속속들이 일러준다. 
지은이의 감상을 굳이 읽기 싫다면 내려놓고 지리산 둘레길 코스만
꼼꼼이 읽어도 좋겠다.
하지만 다녀와서 다시 훑어보는 것도 좋았다.
내가 느꼈던 지리산과 지은이가 느꼈던 지리산이 곳곳에서 겹쳐지면서
마음을 시원하게 적셨던 지리산 둘레길의 흙길이 선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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