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크리스를 배웅하려고 대전역에 같이 갔다. 학교 안에 있는 여행사에서 기차표를 미리 예매했다고 하는데 하긴 미용실에도 혼자 가서 염색도 하고 온 걸 보면 한국 사람들과 직접 부딪혀가며 겪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흔히 캐리어라고 부르는 큰 여행용 가방  2개가 있었는데 크리스 혼자서는 무리일 것 같아서 기차를 탈 수는 없지만 역 안에는 들어갈 수 있는 500원짜리 표를 끊고 같이 들어갔다. 그 표에는 '절대 기차 안으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라는 말이 써 있었는데 짐이 무겁기도 했거니와 친구를 보내는 아쉬운 마음에 기차 안으로 들어갔다. 미국식으로 포옹도 하면서 정말로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어? 기차가 움직인다. 큰일났다!!

서둘러 승무원을 찾아서 사정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약간 면박을 주는 말투로 ) 여기 이렇게 써 있는데 왜 타셨어요?" "(내 잘못이니 할 말 없다. 머리를 긁적이며) 죄송합니다. 잠깐 친구를 배웅한다는게 그만..."

근데 얘기를 하다 보니 문제가 하나 더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크리스는 무궁화호를 예매했는데 우리가 탄 것은 KTX였다. 이런!! 크리스하고 이야기하며 기차를 기다리다가 비슷한 시각에 기차가 들어오니 아무 생각없이 탄 건데 그게 5분 정도 빨리 들어온 KTX라니... 게다가 우리가 올라 탄 객실은 '특실'이라서 역방향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미처 KTX라는 생각은 못하고 '무궁화가 많이 좋아졌네'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긴 무궁화호에 여 승무원들이 있다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해야 했지만 어제는 기차가 출발했다는 당황스러움에 미처 생각을 못했다. 아무튼 영어 잘 하던 그 승무원의 설명을 듣고 우리는 일반실로 옮겼고 (전에 한 번 KTX를 타 본 적이 있지만 KTX에 특실<First class>이 있다는 건 어제 처음 알았다) 나는 서울역까지 가야만 했다. 요금은 서울역에 가서 내라고 내라고 한다.

그래도 역시 KTX라 1시간만에 서울에 도착한다. 그 1시간 동안 크리스와 또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나니 뭐 이것도 괜찮다 싶었다. 예상못한 지출을 해야하니 돈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서울역 개찰구에 있는 분에게 사정 얘기를 했더니 역시 같은 말씀 "그러게 여기 이렇게 써 있는데 왜 탔어요?" "죄송합니다. 제 친구가 외국인이라 좀 도와준다는게 그만..." "그럼 다시 대전으로 가야 돼요?" "네" "그러면 대전에서 여기 온 건 돈 안 받을 테니까 표 끊어서 다시 돌아가요" "네? 정말요? 우와 감사합니다 ^^"

Sometimes good luck comes after bad lucks. 말이 되는 영어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얘기하니 크리스도 웃으며 알아듣는다. 앞으로도 잊지못할 재밌는 마지막 추억이라는 말과 함께... 기차비를 주겠다며 2만원을 꺼내는 크리스를 서둘러 택시에 태워 호텔로 보냈다.

아! 정말 우리가 나중에 만나면 꼭 이 얘기를 하게 되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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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털이 2004-08-12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일이었어요 ㅎㅎ

sweetmagic 2004-08-12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추억이네요 ... ^^

머털이 2004-08-1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미국 친구들과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재밌게 보내고 있을 거에요. 호텔에 전화했는데 안 받네요. 나중에라도 꼭 매직님의 작별 인사를 전할게요 ㅎㅎ

두심이 2004-08-1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런일이 다있군요. ㅎㅎ..재밌는 추억거리가 크리스와 하나 더 생겼네요. 좋은 사람 하나 가지는게 세상살이에 얼마나 보석같은 존재인지 벌써 님은 아시나봐요..좋은 만남 오래오래 간직하세요..

머털이 2004-08-1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 크리스가 인천공항에서 타이완으로 떠나기 전에 전화를 해 왔어요. 한국에 있는 동안 즐거웠고 도와줘서 고마웠다구요. 두심이님 말씀처럼 두고두고 좋은 친구로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미네르바 2004-08-14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추억, 좋은 친구가 생겼네요. 부러워요^^

머털이 2004-08-14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수록 서로 잘 맞는 친구 만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이렇게 가끔씩 좋은 사람을 알아가게 되네요. 이런건 행운이라고 하는게 맞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