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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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단지 '급격한 역할 교환'이 아니다. '한 줌의 지배계급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에 대한 혁명은 '한 줌의 지배계급이 차지하던 것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남보다 잘 먹고 잘 사는 일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혁명의 최종 목표는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다. p.159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글이 있다. '그래 맞아, 그럼. 바로 이거야.'라고 맞장구치지만 그게 경쾌 발랄한 기분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느낌을 주는 글이 있다. 내가 어디쯤에 서 있느냐고 끊임없이 물어보고, 괴롭히는 글이 있다. 그래서 외면하고 싶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노라고 덮어버리고 싶지만 그걸 허락하지 않는 글이 있다. 가슴에 커다란 돌을 얹은듯, 열심히 먹고 돌아서 체하듯 먹먹하고 아득해 지는 글이 있다. 김규항의 글은 내게 끝없이 요구한다. 너는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 물어보지 말아요. 괴로워요.

나는 단지 사람들이 제가 사는 세상의 얼개쯤은 알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나는 여전히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않고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믿는다. '생명이든 평화든 생태든 신앙이든 다른 어떤 소중한 차원에서든 말이다. (머릿말)  몇 년간의 글을 책으로 묶어 내며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상을 자기 눈으로 보라고, 이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보라고. 그에겐 자본으로 돌아가며 소수의 인간만 안락한 이 시스템은, 궁극적으로는 갈아 엎어야 할 사회체제다. 훌륭한 사회체제가 행복을 보장하진 않지만, '더 많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야만의 체제인 건 경쟁력 있는 (잘나고 능력 있는) 소수의 인간은 한없이 안락하고, 평범한(정직하고 성실할 뿐인) 다수의 인간은 한없이 고단한 인생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p.117 에서 보듯 그에게 자본주의는 세상의 악이며 야만 그 자체이다. 게다가 적대하는 계급끼리의 '통합'을 꾀하는 교활함까지 갖추었다. 그리하여 대기업 임원들 연봉엔 분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조종사 연봉엔 한없이 분개한다. 노예는 주인의 호사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다른 노예의 나은 처지는 참질 못한다. (http://gyuhang.net/archives/2005/12/index.html#000716 2005/12/11 일기)  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이 짧은 글을 읽으며 나는 가슴이 미어진다) 그에게는 이 시스템의 삶이 계급의 삶으로 보이는데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하니 구절구절 통탄하고 있다. 하긴, 누구라고 그걸 믿고 싶겠는가. 아니다, 모두 알면서 모른척 눈감고 있는것일게다. 그리고는 어느 날 나도 신분상승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헛된 욕망, 아니 내 자식만은 상류계급으로 살게 해 주리라는 헛된 욕망에 모두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다. 이런 내 현실을, 내 존재를 인정하기 싫으니 그의 글은 읽기 괴롭다.

 

그가 보는 이 땅은 인간들은 '레밍'과 다르지 않다. 그저 대열, 대열, 대열. 길이 옳은지는 판단에 아무런 길잡이가 되지 못하며, 다수의 사람들이 어느 대열에 서 있는가만이 판단 근거다. 대열을 이루고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습성은 이제 한국인들의 삶이 되었다. (p.197) 아찔하다. 정확하다 못해 날카롭게 찔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의 황우석 사태를 가만 보면 편가르고 싸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엠비시냐 황우석이냐, 진실이나 애국이냐...이런 기막힌 잣대들로 편을 가른다. (근데 진실과 애국은 어떤 이항대립인거지?) 그게 우리의 습성이란다. 그런데 그 습성 때문에 파시즘이 유지 될 수 있었다고, 그 대열이 대열을 이룬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커녕, 자본과 지배계급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반복하여 말한다. 개혁과 진보는 전혀 다르다고. 개혁 운동은 세상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늘 세상을 강화하는 것(p.149)이라고. 그런데 진보는 뭘까? 진보란 오늘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 (p.87)이라고 간단하게 말한다. 그는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는데 왜 난 어려운가?

 

그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선 쉽게(!) 글을 쓰는 사람이 분명한데 왜 나는 이토록 어지러운가? 340여 쪽의 책을 읽으며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줄을 죽죽 그어댔다. 그리고 계속 질문한다. 나는 부끄럽다. 자본주의를 미워하면서도 여전히 로또를 꿈꾸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내 아이에게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배우라고 대안학교를 고민했던 내가 부끄럽다. 이건희는 나쁘다고, 노동자의 몫을 교활하게 빼앗아 제 가족을 배불리는 인간이라고 욕하면서도 하늘에서 돈 떨어질 꿈을 꾸는 나는 부끄럽다. 열우당도 한나라당도 노무현도 유시민도 모두 그 밥에 그 나물이고, 모두 보수주의자일뿐이라고 욕하면서도 그들 중 누구는 다를것이라고 믿었던 내 무식함이 부끄럽다. 그러면서도 아직 민노당에 입당하지 않았으며 아직 그들에게 후원금 한 번 내 본 적 없는 책상물림이 부끄럽다. 나는 이렇게 오래오래 걸려 겨우 고민하는 자리에 서 있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덧)여러 매체에 기고한 그의 글들은 깊이 있고 날카로와 좋다. 하지만 내게 정말 많은 생각을 주는 것은 짧은 그의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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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 - 21세기 자녀교육 6
이주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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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겨레의 어린이들에게 이처럼 이미 지나간 시대의 동화를 세계 명작이라고 권장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더 이상 계속해서는 안 됩니다. 20세기에 씌어진 새로운 가치관을 담은 세계 명작들을 찾아 읽혀야 합니다. - p.132

지인의 책장 정리 대방출에서 건진 책. 좀 오래 된 책이긴 하지만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다.

부제 '우리 아이 무슨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는 눈에 띄지도 않아서 제목만으로 책 내용을 어림했다가 첫 몇 장으로 놀랐다. 난 어른들을 위해 동화를 소개하거나 그러는 줄 알았지 뭐. 하여간 무슨 일을 하거나 덤벙덤벙 건성건성인건 고질병이다.

 부제가 책의 본질을 말해주는 책이다. 아이들을 위한 독서지도 지침서쯤 되겠는데, 어린이도서 연구회나, 동화읽는 어른 등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도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모임들에선 독서지도를 위한 책들을 읽고 토론하고, 또 어린이 책을 선정하고, 독후 활동등을 개발해 낸단다. 매우 훌륭한 모임이다. 이 모임이 또 지역 안에서 진행되므로 지역활동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하지만, 주위에 수소문 해 보니, 그 좋은 의미와 활동에도 불구하고 사실 아이를 앞세우는 활동인 탓에, 여차하면 '수학은 이 학원이 좋다, 저 학습지가 나쁘다' 등등으로 치우치기 쉽다고 한다. 모임이 궁금했던 마음, 쑤욱 들어간다.)

 무겁지 않고, 어렵지 않은 작은 이 책에서 무지한 공감을 했던 것은 바로 저 대목이다. 세계 명작 어쩌고 하는 껍데기의 그 책들이 오늘에도 명작인가 의심하라는 것. <보물섬>, <십오 소년 표류기>, <로빈스 표류기>,<타잔> 등등에 숨어있는 약탈의 미화와 인종 편견을 제대로 보라는 말씀이다. '명작'이라는 말 한 마디에, 유럽 중심의 세계관으로 씌어진 지난 세기의 책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동감이다. 진심으로.

 독후활동 중에도 재밌는것들이 몇 개 있는데, 책 나무키우기, 책 지도 그리기, 책 연대표 만들기, 책광고판 만들기, 이야기 이어쓰기 등은 어린이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유용하겠다. 책 지도나 연대표를 만들어 보면 내가 얼마나 편식 독서하고 있는지 체크하기도 좋을 터.  아, 크리스마스 트리 걷고 나면 책 나무로 만들어 보면 재밌겠다.

 

잡설)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유아부터 100살이 되도록 누구나 쉽게 읽고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때때로 그림책 동화책을 읽고 나면 맘이 따뜻해지곤 한다. 쏟아져 나오는 어린이책들의 양은, 나 어릴적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동네 작은 서점에도 어린이 코너엔 신간이 넘쳐난다. 이런 환경에서 책과 친근하게 자라는 지금의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데, 이런 책을 '내 자식 잘 된다는데,빚내서라도 다 사준다'라는 결의가 아니고서는 읽을 수가 없는걸까?  '일년동안 책 한권 안 읽어도,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림책은 읽는다'라는 사람이 설마 그렇게 많은건 아니겠지? 글쎄...전에 알라딘 서점 통계를 본 적이 있는데, 구매비율이 가장 높은 것은 30대 주부란다. 근데 그들이 사는 책은 90% 어린이 책이란다. 아름답고 훌륭한 책 홍수 속에 사는 지금 아이들, 정말 이게 행복인지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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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심리학 - 개정판, 톡톡 튀는 9가지 맛 영화 속 심리이야기
장근영 글.그림 / 제이앤북(JNBOOK)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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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가짜를 진짜로 믿어 버리고, 그 믿음이 이전에 없었던 일들을 만들어 내고, 그래서 결국은 가짜가 진짜가 되어 버리더라는 이야기다. p.260

그러니까 난 심리학 책이 안 맞는 인간인지, 이 책도 그렇게 열광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재미없는 책은 아니다. 못 쓴 책도 아니다. 또 글쓴이는 손재주도 있어, 삽화도 직접 그렸더라. 부럽다. 영화 이야기에 심리학 이야기를 버무려 놓았으니, 이거야 말로 최근의 트렌드 중의 트렌드겠다. 소위 말하는 '글발'도 좋은 편이다. 어차직 하면 심심하고 지루할 심리학을 참 재밌게 썼다. 거기에 영화를 예로 들어 말하니 이해도 빠르다. 영화에 대한 이해도 있어서, 어떤 영화가 황당하고 재미없을 때, 어째서 그런 것인지 조목조목 이야기 한다. 예컨대 장예모의 <연인>의 상황전개가  어째서 반전이라고 여겨지지 않고 뜬금없고 허탈한지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관객이 예측할 가능성을 주고, 그 예측을 뒤집는 놀라움이 있어야 하며, 그 의외의 결말을 이어주는 규칙도 있어야 한다는 말씀.

 또 <검은 물밑에서>나 <철도원>등의 일본영화를 보며, 일본 사회에 학습된 무기력이 공동으로 내재되어 있는건 아닌지 살피기도 한다. 그런데 그 학습된 무기력이 일본 문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공무원들에게도 있다니 참 맥빠진다.

 이 책 중 제일 재밌게 읽었던 부분은 역시 <매트릭스>. 아키텍트와 네오와 오라클의 존재를 온라인 게임을 빗대어 얘기하는데 참 재밌더라. 그리고 그 이야기 중에서도 젤 맘에 드는 구절은 즐기라는 것.  '어깨에 힘 빼고 게임 속을 해킹하며 노닐 듯 즐기던 1편이 제일 재미가 있었다는 점은 이 영화 <매트릭스>를 매트릭스답게 했던 것은 심오한 철학이 아니라 유희본능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게. 즐길 수 있는 것이라면 즐겨야지. 문화를 누리는 것에 있어 그 보다 더 큰 명제가 있을까.

 덧)이 책의 내용은 블로그 꾸리면서 썼던 글을 묶은 듯 하다.

그의 블로그는  http://kr.blog.yahoo.com/psy_jjanga 싸이코 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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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의 마법 학교 푸른숲 어린이 문학 4
미하엘 엔데 지음, 카트린 트로이버 그림, 유혜자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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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잘 알아내기만 하면 다른 문제는 저절로 풀린단다. 하지만 자기가 진심으로 바라는 소원이 무엇인지 알아내는게 쉽지 않지." p.16

엔데의 많은 책을 보지 않았지만, 이 책은 대상이 어린이라 그런건지 어쩐지 뭔가 아이디어 모음이란 생각이 든다. 구체적인 환상을 보여주지 않고, 마법을 배우는 과정만 나열되어 있다. 꼭 마법학교 커리큘럼 안내같은 느낌. 간혹 재밌는 에피소드들도 나오지만 아주 환상적이지도 않다. 해리포터를 책으로 영화로 보며 사는 사람들에겐, 이런 소품이 그다지 환상적으로 다가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꼭 하나 맘을 파고 드는 씨앗이 있다. 자신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만이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것. 그건 어쩌면 마법세계에서만 통하는 얘기가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을, 내가 정말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잘 아는 것. 그것은 마법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 진정 필요한 게 아닐까?

NVC (Non Violent Communication)를 들으면서 정말 당황스러웠던게 바로 그거였다. 상황에 따른 자신의 감정이 어떤건지 (분노인지 기쁨인지 등등) 알겠는데, 정작 그 바닥에 깔린 내 욕구는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 내가 무엇이 충족되지 않아서 이토록 화를 내는지, 짜증이 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 아 그 절망감이란.

지금 이 시간,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소망은 진짜 내면에서 우러나온 것일까? 앗, 갑자기 <비폭력대화>를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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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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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아닌 우리가 아이를 살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사이드에게 해준 건 복잡한 수술도, 값비싼 중장비 치료도 아니다. 그저 두 시간에 한 번씩 시간 맞추어 영양죽을 먹였을 뿐. 밀가루와 콩가루에 소금, 설탕을 섞은 그 영양죽 이 주일치 값은 단돈 만 원이다. 단돈 만 원에 사람이 죽고 사는 곳이 긴급구호 현장이라는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그 일을 하면서도 믿기 어렵다. p.60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인생 딱 절반'의 좋은 나이라며,(그게 벌써 5년전이라 이젠 쉰을 바라보는 나이다) 주저 없이 긴급구호 요원으로 활약한 그녀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가슴 아프고, 한편 따뜻하며 긴박하고 열정이 넘친다.
약속 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이 책을 넘기다가 길 한복판에서 와락 눈물이 솟구쳤다. 독초인줄 뻔히 알면서도 그것 밖엔 먹을 게 없는 사람들. 열일곱 엄마의 빈 젖을 빨며 마냥 설사만 하고 있는 한 살 아이.  부모의 죄값을 치르고 있는 한 해 50만의 에이즈 감염 신생아들. 피로 물든 다이아몬드 채광에 이용당하는 희망없는 아이들. 쓰나미로 더러운 물 속에서 썩어가는 수 천구의 시신들.

한비야라는 개인이 경험한 구호활동 5년을 기록했다고만 볼 수 없을것이다. 그녀의 능력과 재능과 용기는 분명, 구호 전문가로 활동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단지 개인의 기록으로만 읽을 수 있을까?

책을 읽는 행위가 내 생활을 바꾸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내게 별 다섯개짜리 책이다.
월드비젼의 전신이 선명회였다든지, 선명회가 과연 순수한 기독교 NGO인지 의심하던 일들은 모두 덮어둔다. (문선명의 통일교와 선명회가 이름이 같아 오해를 샀던 그 소문. 그래서 월드비젼으로 바꿨다지 아마..)
난 오늘 한 아이의 희망을 위해 정기 후원을 신청한다.

아....그러고 보니 '선명회'의 후원자 모집 광고를 본 게 벌써 까마득히 옛 일이다. 어릴적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꼬박꼬박 실리던 광고였는데. 참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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