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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국부론
우석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음식, 그것은 경제학이고, 철학이며, 동시에 하나의 예술이다. 그리고 생활이기도 하며, 이제는 또 다른 의미의 행복 그리고 식구들에 대한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이기도 하다. 아울러 음식은 정부가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 음모를 깨닫게 해주는 일종의 정의의 혁명 같은 것이기도 하다. (60쪽)
<한미 FTA폭주를 멈춰라>의 저자의 또 다른 책. 경제학자인 저자가 강력하게 세상에게 전하는 음식이야기는 <음식국부론>이다. 군주나 공화국이 섬세한 살림을 통해서 사람들을 부유하고 행복하게 만듦으로써 세상을 낫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그대로 빌린것이다. 경제학의 관점으로 음식을 바라보는 지금의 상황은 더 이상은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감사한 존재가 아니다. 맛 혹은 안전이라는 관점이 함께 존재 할 수 없는 이상하고 위험한 시대인게다. 저자는 국가가 부강해진다는 것은 시스템과 함께 문화와 제도와 그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튼튼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음식이란것은 분명 문화일진대, 한 사회의 구성원이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르고, 먹어도 탈나지 않을 음식을 공급할 수도 없을 때 그 나라의 행복과 힘은 무의미하다고. 그래서 국민소득이라는 숫자에 휘둘려 살림도 식생활도 되돌아보지 못하는 이 땅의 사람들은 '여성성'의 의미를 결코 알 수 없다고. 하여 여성의 눈으로 들여단 본 경제학의 출 발은 음식국부론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전한다.
먼저 우리가 자주 먹게 되는 음식들은 믿을 수 있는지 말한다.
중국집의 쫄깃한 면발은, 반죽할 때 한 웅큼씩 집어 넣는 중국 가성소다에서 나오고, 그 쓴 맛을 감추기 위해서 한 국자씩의 조미료가 들어간단다.(49쪽) 조미료 보다도 가성소다에서 난 기함했다. 알면 알 수록 미친 세상이다. 우유 많이 먹어야 골다공증 안 생긴다고 의사들도 아무렇지 않게 권한다. 그런데 우유는 대표적인 산성음식이고, 체내의 pH를 유지하게 위해 알칼리 성분인 칼슘등을 소모해야만 한다. 우유를 소화시키려면 결국 우유의 칼슘은 물론이고 체내의 칼슘까지도 써야만 한다.(68쪽) 게다가 발육촉진제, 항생제, 방부제 사료로 키워지는 소 아니던가.
말 많은 쇠고기. 귀족들만의 음식이던 쇠고기 스테이크를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에게 싸게 대량 공급했던 것이 스코틀랜드와 북미대륙 생태계는 물론,버펄로, 인디언들을 멸종에 이르게 했고, 덤으로 골프라는 스포츠도 만들어냈다.(75쪽) 물론 대표적인 산성음식이며, 도축 6개월전에 집중적으로 먹인 옥수수 사료로 생긴 지방을 두고 고급이라고 아우성치는 꼴이다.
벌레도 잘 타지 않아 농약 불안감도 없는 콩은 그 자체로는 완전식품. 하지만 시장의 콩과 콩제품이 모두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부나 콩나물처럼 가공하면서 무엇을 넣었는지 확인 할 길은 없다. 미국산 콩은 거의 대부분 유전자조작 식물이고. 당신이 집어든 두유는 국산콩을 만들었는가? 두부의 포장지에 쓰인 소포제, 응고제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방부제를 넣었을 확률이 훨씬 높은 대형회사의 두부가 더 안전한게 맞을까?
수입쌀은 맛이 있네 없네, 싸네 비싸네, 학교 급식에 쓰네 마네.....이 시끄러운 쌀. 한국, 아프리카 국가들에 돈을 꿔 주고는 그 돈으로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사도록 한 미국의 원조법. 덕분에 미국은 먹지도 않는 자포니아 품종의 쌀을 농가 보조금까지 지급하며 재배토록했고, 피원조국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국제 시세보다 4배 비싼 쌀을 사 먹는다. 더불어 거대 종자 회사와 곡물거래 회사, 화학품 회사들의 농간으로 특정 약품에서만 발아하는, 혹은 특정 병충해에 취약하게 만들며 동시에 자사의 병충해 약까지 만들어 파는 요지경 속의 종자회사 등에 전세계인의 주식인 쌀의 운명이 잡혀있다.(92-107쪽)
저자는 이 땅의 정부는 농업을 공업취급하는 정책을 폈었고, 이제는 그나마도 농업포기 정책을 휘몰아치듯 실행하고 있고, 정작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는 관심도 없다고 말한다. 관행농(화학농)을 하지 않는 유기농가를 지원은 커녕 타박주던 정부다. 저자는 그 시스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생협에 주목한다.우리나라 유기농의 비중은 전체 생산량의 2%를 넘지 못한다. 그 작은 시장마저도 개인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정부도 아니고, 백화점도 대형할인점도 아닌 '영세'한 개인들의 모임인 생협은 오히려 안전하고 고급스러운 제품을 유통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음식재료는 생협에서 구하는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생협은 더불어 소비 윤리와 정신건강도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구실을 한다.
저자가 말하는 생협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신뢰를 기반으로 만나는 트러스트 시장이라는 것.즉각적이고 단기적인 계약이 아니고 믿음을 근거로 하는 장기계약이다. 유기농 매장과 대형 할인매장의 유기농 코너와는 다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때그때 싼 물건만을 매입하거나, 전량 매도를 조건으로 '꺾기'를 해서 생산자를 밟는 매장에 비해 생협의 공급 조건은 생산자에게 유리한 안정적 물량의 장기계약이다. 단기계약으로는 수요를 예측할 수 없고, 생산계획이라는것도 세울 수 없다.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가 아닌 회원의 소비이므로 안정적인 소비 패턴을 갖기 때문이다.
유기농이 몸에 좋다니까 여기저기 유기농매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지만, 전체 2%밖에 되지 않는 공급이 충분히 이들 매장을 충족시키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소비의 측면으로만 운영하게 되는 유기농매장에서 생산자를 배려한 계획과 공급이라는게 있을 리가 없다. 유기농에 주목할 것이 아니고, 유기농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생협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하이엔드 시장으로 바뀔 수 있는 위험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생협에 가입해서 유기농 식단을 꾸리는 시장에 참여한다면 좋은 진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문제는 있다. 2%의 유기농이라는 안전판을 어떻게 키워갈 것인가. 유기농의 특성상 기계와 약에 기댈 수 없기 때문에 공장에서 물건 찍듯, 어느날 갑자기 생산량을 늘릴 수는 없는 문제다. 또한 수요는 어떻게 늘릴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으로는 학교 급식과 병원, 단체, 군대등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학교급식에 대한 우리 농산물 요구는 거세지고 있지만 통상부는 무역마찰을 우려한다고 반대하고 있어 지방자치 단위로 조례를 제정한 경우에도 아직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내 아이가 미국산 쇠고기국에 미국산 통조림옥수수 샐러드와, 조미료 듬뿍 넣은 반찬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약하지만 아토피를 경험했던 녀석이라 학교를 보내지 않아야 할까 좀 오바하며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으므로 여전히 오늘 돈까스, 내일 미트볼 식단에 반강제 우유를 매일 먹고 온다.
농업을 포기한 이 땅에서 앞으로의 10년은 어떻게 진화할까?
정말 소수 생협회원만으로 근근히 버티게 되는 유기농만 남게 될지, 혹은 자본에 유린된 하이엔드 시장이 될지 알 수 없다. 사실 이미 여러 생협들이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고 있다. 무엇을 위해 생산 이력을 기록하는지, 왜 매장을 경쟁적으로 개장하는지 알 수가 없다. 왜 자꾸 대형유통을 흉내내고 있는지, 가끔은 그 움직임에서 절망하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에서의 음식은 칼로리와 비타민과 맛으로 승부한다.(130쪽) 고칼로리 고단백의 서양 식단을 권장하고, 모자랄지도 모르는 영양은 비타민제로 보충하며, 집에서 만든 음식보다는 역시 조미료 한 수저씩 들어있는 얄팍한 맛의 외식을 더 선호하고 있다. 가끔 난 농담처럼 말한다. 맵고 짜고 달고 기름지기만 하다면 음식은 잘 팔린다고. 그게 이 땅의 외식이니까. 매운 걸 잘 먹지 못하고, 기름진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우리가족은 딱히 외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 그저 귀찮아서 혹은 몸이 아파서 한 끼를 때운다는 심정으로 먹게 되는게 외식이다. 조미료가 혀로 느껴질 정도로 듬뿍 넣고, 무슨 에센스까지 넣어서 눈물 나도록 맵게 만들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달고 기름진 음식들. 그럴싸한 인테리어와 달콤한 음식에 혹해서 몇 번 간 패밀리 레스토랑들도 뻔하다. 냉동식품을 데우기만 했을것이 분명하고, 주방도 패스트푸드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소문도 들었고, 무슨 근거로 매겼는지 알 수 없는 음식값도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툴툴거리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건 거의 없다. 귀찮고 힘들어도 안전한 음식을 먹을양이면 생협 식재료들로 내가 만드는 수 밖에 없다. 혹은 안전하지 못하지만 입맛을 대충 달래주는 편한 외식을 택할 수 있다. 어느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 손하나 까딱하기 싫거나, 힘든 날에도 내가 챙겨야 하는 식구들이 있는 법이다. 아니, 건강하고 멀쩡한 날에 누군가를 만나서 점심을 함께 사 먹을 수도 있는 일이다. 아니 하루 세 끼를 모두 집에서 해 먹는다해도, 집 밖에 있는 가족들은? 그 때마다 독일지도 모르는 음식을(혹은 음식을 가장한 그 무엇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할 짓이 못 된다.
내게 안전한 음식점을 알려달라.그런 음식점이 없다면 내게 그런 음식을 해 달라. 그것도 아니라면 그대도 생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정말로 시스템이 올바르게 진화하는지 봐 달라.
그리고 내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들을 해결해 주십사.
수입 유기농산물을 믿어도 좋은지. (난 풀무원을 믿을 수가 없다)
한 개 1200원 하는 애호박, 시장에 가면 3개 천원에 파는 현실에서, 중산층의 먹거리 놀음이라고 비난받기 쉬운 생협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지.또한 기업화하고, 자본의 논리가 이미 침투 해 버린 현재의 생협들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
(당신이 음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생협이라는 공동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단지 몸에 좋은 음식이니 먹어햐 한다는 논리보다 훨씬 크고 넓고 깊은 안목으로 사회를 보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