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국부론
우석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음식, 그것은 경제학이고, 철학이며, 동시에 하나의 예술이다. 그리고 생활이기도 하며, 이제는 또 다른 의미의 행복 그리고 식구들에 대한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이기도 하다. 아울러 음식은 정부가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 음모를 깨닫게 해주는 일종의 정의의 혁명 같은 것이기도 하다. (60쪽)

<한미 FTA폭주를 멈춰라>의 저자의 또 다른 책. 경제학자인 저자가 강력하게 세상에게 전하는 음식이야기는 <음식국부론>이다. 군주나 공화국이 섬세한 살림을 통해서 사람들을 부유하고 행복하게 만듦으로써 세상을 낫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그대로 빌린것이다. 경제학의 관점으로 음식을 바라보는 지금의 상황은 더 이상은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감사한 존재가 아니다. 맛 혹은 안전이라는 관점이 함께 존재 할 수 없는 이상하고 위험한 시대인게다. 저자는 국가가 부강해진다는 것은 시스템과 함께 문화와 제도와 그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튼튼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음식이란것은 분명 문화일진대, 한 사회의 구성원이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르고, 먹어도 탈나지 않을 음식을 공급할 수도 없을 때 그 나라의 행복과 힘은 무의미하다고. 그래서 국민소득이라는 숫자에 휘둘려 살림도 식생활도 되돌아보지 못하는 이 땅의 사람들은 '여성성'의 의미를 결코 알 수 없다고. 하여 여성의 눈으로 들여단 본 경제학의 출 발은 음식국부론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전한다.

먼저 우리가 자주 먹게 되는 음식들은 믿을 수 있는지 말한다.
중국집의 쫄깃한 면발은, 반죽할 때 한 웅큼씩 집어 넣는 중국 가성소다에서 나오고, 그 쓴 맛을 감추기 위해서 한 국자씩의 조미료가 들어간단다.(49쪽) 조미료 보다도 가성소다에서 난 기함했다. 알면 알 수록 미친 세상이다. 우유 많이 먹어야 골다공증 안 생긴다고 의사들도 아무렇지 않게 권한다. 그런데 우유는 대표적인 산성음식이고, 체내의 pH를 유지하게 위해 알칼리 성분인 칼슘등을 소모해야만 한다. 우유를 소화시키려면 결국 우유의 칼슘은 물론이고 체내의 칼슘까지도 써야만 한다.(68쪽) 게다가 발육촉진제, 항생제, 방부제 사료로 키워지는 소 아니던가.
말 많은 쇠고기. 귀족들만의 음식이던 쇠고기 스테이크를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에게 싸게 대량 공급했던 것이 스코틀랜드와 북미대륙 생태계는 물론,버펄로, 인디언들을 멸종에 이르게 했고, 덤으로 골프라는 스포츠도 만들어냈다.(75쪽) 물론 대표적인 산성음식이며, 도축 6개월전에 집중적으로 먹인 옥수수 사료로 생긴 지방을 두고 고급이라고 아우성치는 꼴이다.

벌레도 잘 타지 않아 농약 불안감도 없는 콩은 그 자체로는 완전식품. 하지만 시장의 콩과 콩제품이 모두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부나 콩나물처럼 가공하면서 무엇을 넣었는지 확인 할 길은 없다. 미국산 콩은 거의 대부분 유전자조작 식물이고. 당신이 집어든 두유는 국산콩을 만들었는가? 두부의 포장지에 쓰인 소포제, 응고제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방부제를 넣었을 확률이 훨씬 높은 대형회사의 두부가 더 안전한게 맞을까?

수입쌀은 맛이 있네 없네, 싸네 비싸네, 학교 급식에 쓰네 마네.....이 시끄러운 쌀. 한국, 아프리카 국가들에 돈을 꿔 주고는 그 돈으로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사도록 한 미국의 원조법. 덕분에 미국은 먹지도 않는 자포니아 품종의 쌀을 농가 보조금까지 지급하며 재배토록했고, 피원조국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국제 시세보다 4배 비싼 쌀을 사 먹는다. 더불어 거대 종자 회사와 곡물거래 회사, 화학품 회사들의 농간으로 특정 약품에서만 발아하는, 혹은 특정 병충해에 취약하게 만들며 동시에 자사의 병충해 약까지 만들어 파는 요지경 속의 종자회사 등에 전세계인의 주식인 쌀의 운명이 잡혀있다.(92-107쪽)

저자는 이 땅의 정부는 농업을 공업취급하는 정책을 폈었고, 이제는 그나마도 농업포기 정책을 휘몰아치듯 실행하고 있고, 정작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는 관심도 없다고 말한다. 관행농(화학농)을 하지 않는 유기농가를 지원은 커녕 타박주던 정부다. 저자는 그 시스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생협에 주목한다.우리나라 유기농의 비중은 전체 생산량의 2%를 넘지 못한다. 그 작은 시장마저도 개인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정부도 아니고, 백화점도 대형할인점도 아닌 '영세'한 개인들의 모임인 생협은 오히려 안전하고 고급스러운 제품을 유통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음식재료는 생협에서 구하는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생협은 더불어 소비 윤리와 정신건강도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구실을 한다.

저자가 말하는 생협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신뢰를 기반으로 만나는 트러스트 시장이라는 것.즉각적이고 단기적인 계약이 아니고 믿음을 근거로 하는 장기계약이다. 유기농 매장과 대형 할인매장의 유기농 코너와는 다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때그때 싼 물건만을 매입하거나, 전량 매도를 조건으로 '꺾기'를 해서 생산자를 밟는 매장에 비해 생협의 공급 조건은 생산자에게 유리한  안정적 물량의 장기계약이다. 단기계약으로는 수요를 예측할 수 없고, 생산계획이라는것도 세울 수 없다.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가 아닌 회원의 소비이므로 안정적인 소비 패턴을 갖기 때문이다.


유기농이 몸에 좋다니까 여기저기 유기농매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지만, 전체 2%밖에 되지 않는 공급이 충분히 이들 매장을 충족시키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소비의 측면으로만 운영하게 되는 유기농매장에서 생산자를 배려한 계획과 공급이라는게 있을 리가 없다. 유기농에 주목할 것이 아니고, 유기농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생협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하이엔드 시장으로 바뀔 수 있는 위험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생협에 가입해서 유기농 식단을 꾸리는 시장에 참여한다면 좋은 진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문제는 있다. 2%의 유기농이라는 안전판을 어떻게 키워갈 것인가. 유기농의 특성상 기계와 약에 기댈 수 없기 때문에 공장에서 물건 찍듯, 어느날 갑자기 생산량을 늘릴 수는 없는 문제다. 또한 수요는 어떻게 늘릴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으로는 학교 급식과 병원, 단체, 군대등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학교급식에 대한 우리 농산물 요구는 거세지고 있지만 통상부는 무역마찰을 우려한다고 반대하고 있어 지방자치 단위로 조례를 제정한 경우에도 아직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내 아이가 미국산 쇠고기국에 미국산 통조림옥수수 샐러드와, 조미료 듬뿍 넣은 반찬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약하지만 아토피를 경험했던 녀석이라 학교를 보내지 않아야 할까 좀 오바하며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으므로 여전히 오늘 돈까스, 내일 미트볼 식단에 반강제 우유를 매일 먹고 온다.

농업을 포기한 이 땅에서 앞으로의 10년은 어떻게 진화할까?
정말 소수 생협회원만으로 근근히 버티게 되는 유기농만 남게 될지, 혹은 자본에 유린된 하이엔드 시장이 될지 알 수 없다. 사실 이미 여러 생협들이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고 있다. 무엇을 위해 생산 이력을 기록하는지, 왜 매장을 경쟁적으로 개장하는지 알 수가 없다. 왜 자꾸 대형유통을 흉내내고 있는지, 가끔은 그 움직임에서 절망하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에서의 음식은 칼로리와 비타민과 맛으로 승부한다.(130쪽) 고칼로리 고단백의 서양 식단을 권장하고, 모자랄지도 모르는 영양은 비타민제로 보충하며, 집에서 만든 음식보다는 역시 조미료 한 수저씩 들어있는 얄팍한 맛의 외식을 더 선호하고 있다. 가끔 난 농담처럼 말한다. 맵고 짜고 달고 기름지기만 하다면 음식은 잘 팔린다고. 그게 이 땅의 외식이니까. 매운 걸 잘 먹지 못하고, 기름진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우리가족은 딱히 외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 그저 귀찮아서 혹은 몸이 아파서 한 끼를 때운다는 심정으로 먹게 되는게 외식이다. 조미료가 혀로 느껴질 정도로 듬뿍 넣고, 무슨 에센스까지 넣어서 눈물 나도록 맵게 만들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달고 기름진 음식들. 그럴싸한 인테리어와 달콤한 음식에 혹해서 몇 번 간 패밀리 레스토랑들도 뻔하다. 냉동식품을 데우기만 했을것이 분명하고, 주방도 패스트푸드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소문도 들었고, 무슨 근거로 매겼는지 알 수 없는 음식값도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툴툴거리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건 거의 없다. 귀찮고 힘들어도 안전한 음식을 먹을양이면 생협 식재료들로 내가 만드는 수 밖에 없다. 혹은 안전하지 못하지만 입맛을 대충 달래주는 편한 외식을 택할 수 있다. 어느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 손하나 까딱하기 싫거나, 힘든 날에도 내가 챙겨야 하는 식구들이 있는 법이다. 아니, 건강하고 멀쩡한 날에 누군가를 만나서 점심을 함께 사 먹을 수도 있는 일이다. 아니 하루 세 끼를 모두 집에서 해 먹는다해도, 집 밖에 있는 가족들은? 그 때마다 독일지도 모르는 음식을(혹은 음식을 가장한 그 무엇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할 짓이 못 된다.
내게 안전한 음식점을 알려달라.그런 음식점이 없다면 내게 그런 음식을 해 달라. 그것도 아니라면 그대도 생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정말로 시스템이 올바르게 진화하는지 봐 달라.

그리고 내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들을 해결해 주십사.
수입 유기농산물을 믿어도 좋은지. (난 풀무원을 믿을 수가 없다)
한 개 1200원 하는 애호박, 시장에 가면 3개 천원에 파는 현실에서, 중산층의 먹거리 놀음이라고 비난받기 쉬운 생협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지.또한 기업화하고, 자본의 논리가 이미 침투 해 버린 현재의 생협들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

(당신이 음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생협이라는 공동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단지 몸에 좋은 음식이니 먹어햐 한다는 논리보다 훨씬 크고 넓고 깊은 안목으로 사회를 보게 해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외교부는 지금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고, 한미 FTA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이 질문은 경제학의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철학에 대한 질문이고, 경제적 문제에 대한 철학적 답변이다. 왜냐하면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동의할 수 있지만, 어떤 거시경제의 운용방식이 한국의 문제점을 실제로 풀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케인즈 학파, 시카고 대학의 신산업주의 학파, 신오스트리아 학파, 스티글리츠를 좋은 경제학자로 추억하는 세계은행의 경제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르고, 하나의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거은 경제학 내에서는 '입장'의 선택에 해당한다. 그런데 사실 '경제적 대안'은 그 사회가 어떤 모습을 지향하고 어떠한 사회가 되고 싶어하는가에 따르는 '수단에 관한 질문'에 해당한다. -175쪽

 

  현대 환경연구원, 에너지 관리공단, 국무조정실 등에서 환경관리와 기후변화협약 담당 업무를 수행했다. 수년간 기후변화협약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국제협상에 참가했고, 한국 생태경제연구회의 설립에 참여한 이래 생태경제학의 기본 이론을 정리하고 생태학과 경제학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이것이 책에 실린 저자의 소개다. 이 책을 읽기 전 우석훈씨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설렁설렁 편안하게 얘기하는것 같았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으며, 신랄하게 비꼬는것도 서슴치 않았다. 이대로 한미FTA가 체결된다면 희망은 없다. 더 갑갑한 것은, 무엇이 잘못 되어 가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국민투표만이 마지막 브레이크인데, 그 국민투표 시행여부는 대통령이 결정한다. FTA체결만이 목표인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하자 말할리가 없단다. 그는 감히 '4인가족 기준 연봉 6000만원'이 되지 않는다면 한미 FTA 체결과 함께 바로 이민가라고 말한다. FTA체결 후 5년에서 10년 지나고 난 후엔 대한민국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테니, 국민소득만큼을 벌지 못하는 가정이라면 이 땅이 지옥일거라고.

 프롤로그 하나만 읽어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지금 노출된 정보만으로 판단컨대 (비공개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멍청이 한국정부때문에) 이대로  체결된다면 이 사회 말아먹기는 금방이라는것이다. 무엇때문에 다 내어주면서 FTA를 하겠다고 덤비는것인지, 왜 자료를 조작해가면서까지 체결하겠다고 하는것인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것이다. 협상하기도 전에 미리 갖다 바친 '4대 선결조건'만으로도 미국은 남는 장사다. 국제 관행상, 협상을 먼저 제안하는 쪽이 더 많이 내어주기 마련인데, 박정희 때부터 김대중에 이르기까지 먼저 제안하지 않았을만큼 급할 일이 아닌데 왜 그리 서두르는지.

 

실낱같은 희망.

국민투표에 붙여 대통령의 폭주를 막는다.

다음 대선때까지 협상을 끈다 (체결은 현 대통령이 하지만 책임은 다음 대통령이 지게 되므로)

세상에서 제일 험악한 미국과의 FTA에 노동시장개방을 포함한다.

악명높은 '슈퍼 11조'라는 기업소송권은 절대로 FTA에 포함하지 않는다.

젠장...정말 실낱같다.

 

 

잡설)

-정말 노무현 꼴 뵈기 싫어 죽겠다. 정신이 이상해진거 아니야? 너, 2002년에 노무현 찍었지? 너같은 놈들때문에 지금 이 꼴이잖아?

=으응....그게....나도 그땐 희망이라고 생각했다고. 우씨...(시무룩) 아니, 근데, 당신은 누구 찍었는데? 응? 1번이었어?

-나? 나야 당연히.......노무현 찍었다. 흑.

 

흑.우리집에서 빈번히 벌어지는 개그 아닌 개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말썽꾼이야 - 예진 아빠의 철학 동화 1
양승완 지음, 최수웅 그림 / 철수와영희 / 200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기를 낳아 놓고 버리는 것보다 뱃속에 있을 때 버리는 것이 더 좋다고요. 그럼 아기가 엄마를 좀 더 빨리 잊을 수 있을 거에요.- 113쪽

엄마아빠 품에서 마음껏 어리광을 부릴 수만 있다면, 제 나이보다 훨씬 더디 크는것이 확실하다. 동생이 있는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더 많은 어리광을 부리는 내 아이가 증거하는 일이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아이가 아이답지 못하다는것, 제 나이보다 훨씬 성숙하게 되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어린 나이에 부모 노릇을 해야하는 소년소녀가장들의 이야기를 TV에서 볼 때면 그들이 나이보다 훨씬 성숙하고, 어리광따위는 부릴래야 부릴 수도 없는 처지임을 깨닫게 된다.

모길이와 재구는 나이는 어리지만, 어리광을 부릴 수 없는 아이들이다. 자신들은 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고 새기고, 부모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그럼에도 우리는 말썽꾼이라고 노래한다. 엄마 없이도 잘 사는 자신들이 있는데, 어린 새를 어미에게서 뺏어다가 팔아치우는게 무슨 대수냐고 대든다. 어차피 버림받을 운명이라면 일찍 버려줬다면 부모를 그리워하지 않았을거 아니냐고 맹랑하게 따진다. 스스로 버림받은 존재라고 여기던 아이들이, 입양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보여주는 행동은....고약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버림받은 말썽꾼이 바야흐로 부모있는 정상적이고 착한 아이가 될 수 있는 기회니까.


중간중간 예진아빠와 예진이의 (철학)대화가 이야기 흐름을 방해해서 좀 아쉬웠다. 어른의 입장으로 동화를 읽었기 때문일까? 오히려 그 대화들이 책 말미에 한꺼번에 이루어졌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아이와 이 책을 함께 읽고 예진이와의 대화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테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으로 낳은' 아이를 가진 지인들을 생각했다. 한 사람은 큰 아이가 6학년이 되었을때 가족회의를 거쳐 돌쟁이 아이를 입양했다. 또 다른이는 큰 아이가 일곱살이었을때,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육체적으로 곤란했기에 백일이 채 못 된 아이를 입양했다. 두 사람 모두 매우 힘들어했지만, 낳은 아이 못지 않게 사랑을 듬뿍 쏟으며 키웠다. 주변 사람 모두 입양을 축복해 주었고, 작건 크건 도움을 주려 마음을 썼다. 난 책을 읽는 내내 그 아이들을 생각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부모를 만날 수 있었던 그 아이들은 모길과 재구처럼 스스로를 '말썽꾼'이라고 상처 만들며 살지 않아도 되었으니 행복한 아이들일게다.

이 책의 결말은 입양이 되거나 혹은 아니거나 두 가지 경우지만, 그 결말은 그닥 맘에 들지 않는다. 친구를 택하고 입양을 포기하거나, 친구를 포기하고 입양을 선택한다. 하지만  친구 혹은 부모,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존재들이 아니지 않나. 내가 몽상가일 수도 있겠다.


몸으로 낳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 가슴으로 낳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들. 부모를 갖지 못한 수 많은 아이들이 아직도 세상에서 스스로를 말썽꾼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아파하고 있을터인데, 그저 내 아이들이 울타리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것 만으로 안심해야 할까.  글쓴이는 결코 이런식으로 생각할 것을 예상하지 않았을테지만, 이 작은 동화를 읽고 내 생각은 너무 멀리 나갔는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 행복하니? - 보통 아이들 24명의 조금 특별한 성장기, 2004년 올해의 청소년 책
김종휘 지음 / 샨티 / 200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지 어른들은 모르고 있을 뿐이다. 뒤엉킨 실타래처럼 더운 꼬여만 가는 교육 제도, 낡아빠진 사회 관념, 쏟아지는 광고들, 치맛바람에 들썩이는 이웃집 사례 등 너무나 많은 유혹과 협박 앞에서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내 아이를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있는 그대로 간명하게 바라보지 못할 만큼 두 눈에 들보가 씌였기 때문이다.

 행여나 내 아이의 미래를 망칠까봐 두렵기 때문에 혹은 내 아이는 지극히 평범하기 때문에 모두들 몰려가는 그 길에 악착같이 달려들어서 내 아이 손을 붙잡고 열심히 뛰고 또 뛸 뿐이디. 그 끝없는 달리기 때문에 부모도 아이도 일찍 지쳐 멍이 드는데도 말이다. 남보다 가장 먼저 골인을 한 아이와 부모마저 끝내는 허망하게 한숨쉴 수 밖에 없는 이치가 자명한데도 말이다.    p. 239 에필로그 중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책들이 나오고, 그 덕에 좋은책인데도 묻혀 버리는경우가 종종 있다. 내 기준에선 이 책도 그러하다. 내가 이 책을 특별하게 사랑스럽게 보는 이유는 청춘들의 진솔함 때문이다.  흔히 만나게 되는 처세서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인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젠체하며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해...라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살아가는 또래들도 있다고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또래들이 거창하게 잘난 아이들이 아닌것도 매력이다.

 이 인터뷰집은,  '보통 아이들 24명의 조금 특별한 성장기'라는 부제가 책을 그대로 설명하는것이다.  정말 독특하고 특별하게 보이는 아이들인데도 굳이 평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어른들이 기회만 준다면 모두 이렇게 자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그들이 특별하다면 단지 '지금 여기에서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뿐. 하긴, 점점 더 각박해져만 가는 이 땅의 현실에서 이 아이들은 매우 독특하고 범상치 않다. 게다가 그 나이에 자신의 인생길을 정했다는 점이 가장 큰 '존경'거리일게다.

쉽고 간결하고 짧은 인터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저 시절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던가. 지금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깊고 넓은 생각을 갖고, 세계를 보는 눈을 가진 어린 친구들이 존경스러울 정도다. 저 친구들이 오히려 어른스럽다. 내가 그 나이에 제대로 하지 못했던 생각, 일, 인간관계, 공부. 과연 내 아이는 그리 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까.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다. 친구,어른, 아이들 모두에게. 감히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라부가 점프대를 구르며 앞으로 나간다. 거구가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우와~!"

술렁임이 일었다. 역시 뚱보는 그림이 된다. 보는 사람까지 자랑스러워졌다.

한 번 스윙을 하고 나서 손을 놓았다.

천막 아래에 있는 사람들 모두 숨을 죽였다.

다음 순간, 우치다의 두 손이 이라부의 팔을 낚아챘다. 중앙에 매달린 그네가 밑으로 내려앉듯 크게 한 번 출렁이더니, 훨씬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성공이다~!"

고헤이는 펄쩍 뛰어올랐다. 하루키를 끌어안고 기쁨을 나눴다. 부조정실에 있던 니바는 벌떡 일어서서 두 손을 모아 쥐더니 운동선수처럼 좌우로 흔들었다.

객석에서는 그날 공연 중, 가장 큰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리턴이다. 저 사람, 혹시 성공시키는 거 아냐? 고헤이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스윙을 한 번 하고 나서 이라부는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몸은 그대로인 채 고개만 휙 돌아갔다.

장내는 폭소로 뒤덮였다. 124-125쪽 '공중그네'중

 

 

책 표지의 그림이 보이시는지. 배가 나온 뚱뚱보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공중그네를 타는 모습이 말이다.

저 그림을 보면서 서커스를 떠올리지 못한 나는 바보인가? 서커스의 공중그네는 두 손으로 당목을 잡고 매달려 타는거잖아. 하하하. (책을 집어들때 자세한 정보를 미리 챙기지 않는 버릇때문에 간혹 당황한다)

 '공중그네'의 저 마지막 장면의 묘사야말로 괴이한 의사 이라부를 정확하게 묘사한게 아닐까 싶다. 핵심을 꿰뚫어보는 눈과 두려움이 없는 사람 그래서 뭔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어이없는 언행으로 맥을 탁 풀어버리는 사람인것이다. 진지하다고 끝까지 진지하진 않고, 어린애 같다고 해서 문제를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는건 절대로 아닌 묘한 사람.

 종합병원의 지하 한 켠에 위치한 정신과. 환자를 어린애 취급하는 의사 이라부가 있다.  F컵 가슴을 가지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며, 핫팬츠를 즐겨입고, 늬를 좋아하는 간호사 마유미짱도 독특하긴 마찬가지. 고민에 고민을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도저히 어쩌지 못해 심각한 얼굴로 정신과를 찾은 환자들에게 이라부는 무조건 비타민 주사 한 대(핫도그만한 크기의 주사기로!!)를 놓아주고 이야기를 듣는다. 진지하게 듣는건 절대 아니고, 듣는다손 치더라도 열심히 듣는것도 아니다. 공중그네 베테랑 고헤이가

자꾸 스윙에 실패하면서 불면에 시달린다고 호소를 하는데, 처방따윈 아랑곳 없다. 서커스단원이라는 얘기에 '서커스! 갈래, 갈래. 지금당장 가자. 내일부터 왕진해주고, 주사는 공짜로 놔줄께'라고 소리를 지르는 인간이다.

 날카로운 물건에 공포를 느끼는 야쿠자 중간보스, 공중그네에 실패하는 베테랑 서커스단원, 학창시절 놀려먹던 교수가 장인이 되는 바람에 장인만 보면 안절부절하는 의사, 꽃미남 루키가 입단함과 동시에 송구를 못하게 된 프로야구 3루수, 글을 쓰다보면 어쩐지 전에 이미 써 놓은 인물과 상황인것 같아 안절부절하는 잘 나가는 연애소설 작가.

 이라부에게 상담을 하러 온 이 사람들 모두는, 당최 이라부가 의사같지 않다. 야쿠자 무서운 줄도 모르고, 3층 높이 공중그네 하겠다고 겁없이 공중그네를 잡고, 파괴충동을 없애려면 괴팍한 장난도 해야한다고 충동질하고, 야구선수에게 타격을 가르쳐달라고 조르고, 나도 소설가 해보겠노라고 당장  50매 원고를 써서 편집자에게 보내는 이 사람을 어떻게 신뢰하겠는가. 일반적인 세상을 보는 눈으로 말이다.

 하지만 저 어린애같은 의사는, 그 천진난만함 덕분에 이들을 모두 치료한다. 백발백중! 한마디 조언을 하는것도 아니고, 특별한 처방을 하는것도 아니지만, 환자들은 이라부와 이야기하고 행동을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스스로 해결한다. 이보다 더 훌륭한 정신과 의사가 어딨을꼬? 이라부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나라도 당장 가 보고 싶다. 아니, 진심을 말하자면 이라부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해야하겠지. 못 말리는 사람. 세상에 두려움이란 모르는 사람. 해보고 싶은 일들 당장 실천하는 천진함. 이라부가 곁에 있기만 해도 더 많이 유쾌하고, 더 많이 행복해질 것 같은 예감.

 소설은, 같은 패턴의 단편 연작이라 두 편쯤 지난 후엔 재미가 떨어지긴 한다. 최근 유행하는 가벼운 일본 소설에서 그다지 많이 벗어나지도 않는다. 다만 '그래서 뭐?'라는 허무한 감정이 들지 않고, 읽으며 한 없이 즐거워지는것이 이 책이 지닌 미덕이겠다.

 

"자, 입 다물고 주사부터 한 대 맞자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