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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말썽꾼이야 - 예진 아빠의 철학 동화 1
양승완 지음, 최수웅 그림 / 철수와영희 / 2006년 8월
평점 :
아기를 낳아 놓고 버리는 것보다 뱃속에 있을 때 버리는 것이 더 좋다고요. 그럼 아기가 엄마를 좀 더 빨리 잊을 수 있을 거에요.- 113쪽
엄마아빠 품에서 마음껏 어리광을 부릴 수만 있다면, 제 나이보다 훨씬 더디 크는것이 확실하다. 동생이 있는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더 많은 어리광을 부리는 내 아이가 증거하는 일이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아이가 아이답지 못하다는것, 제 나이보다 훨씬 성숙하게 되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어린 나이에 부모 노릇을 해야하는 소년소녀가장들의 이야기를 TV에서 볼 때면 그들이 나이보다 훨씬 성숙하고, 어리광따위는 부릴래야 부릴 수도 없는 처지임을 깨닫게 된다.
모길이와 재구는 나이는 어리지만, 어리광을 부릴 수 없는 아이들이다. 자신들은 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고 새기고, 부모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그럼에도 우리는 말썽꾼이라고 노래한다. 엄마 없이도 잘 사는 자신들이 있는데, 어린 새를 어미에게서 뺏어다가 팔아치우는게 무슨 대수냐고 대든다. 어차피 버림받을 운명이라면 일찍 버려줬다면 부모를 그리워하지 않았을거 아니냐고 맹랑하게 따진다. 스스로 버림받은 존재라고 여기던 아이들이, 입양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보여주는 행동은....고약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버림받은 말썽꾼이 바야흐로 부모있는 정상적이고 착한 아이가 될 수 있는 기회니까.
중간중간 예진아빠와 예진이의 (철학)대화가 이야기 흐름을 방해해서 좀 아쉬웠다. 어른의 입장으로 동화를 읽었기 때문일까? 오히려 그 대화들이 책 말미에 한꺼번에 이루어졌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아이와 이 책을 함께 읽고 예진이와의 대화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테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으로 낳은' 아이를 가진 지인들을 생각했다. 한 사람은 큰 아이가 6학년이 되었을때 가족회의를 거쳐 돌쟁이 아이를 입양했다. 또 다른이는 큰 아이가 일곱살이었을때,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육체적으로 곤란했기에 백일이 채 못 된 아이를 입양했다. 두 사람 모두 매우 힘들어했지만, 낳은 아이 못지 않게 사랑을 듬뿍 쏟으며 키웠다. 주변 사람 모두 입양을 축복해 주었고, 작건 크건 도움을 주려 마음을 썼다. 난 책을 읽는 내내 그 아이들을 생각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부모를 만날 수 있었던 그 아이들은 모길과 재구처럼 스스로를 '말썽꾼'이라고 상처 만들며 살지 않아도 되었으니 행복한 아이들일게다.
이 책의 결말은 입양이 되거나 혹은 아니거나 두 가지 경우지만, 그 결말은 그닥 맘에 들지 않는다. 친구를 택하고 입양을 포기하거나, 친구를 포기하고 입양을 선택한다. 하지만 친구 혹은 부모,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존재들이 아니지 않나. 내가 몽상가일 수도 있겠다.
몸으로 낳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 가슴으로 낳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들. 부모를 갖지 못한 수 많은 아이들이 아직도 세상에서 스스로를 말썽꾼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아파하고 있을터인데, 그저 내 아이들이 울타리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것 만으로 안심해야 할까. 글쓴이는 결코 이런식으로 생각할 것을 예상하지 않았을테지만, 이 작은 동화를 읽고 내 생각은 너무 멀리 나갔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