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라부가 점프대를 구르며 앞으로 나간다. 거구가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우와~!"

술렁임이 일었다. 역시 뚱보는 그림이 된다. 보는 사람까지 자랑스러워졌다.

한 번 스윙을 하고 나서 손을 놓았다.

천막 아래에 있는 사람들 모두 숨을 죽였다.

다음 순간, 우치다의 두 손이 이라부의 팔을 낚아챘다. 중앙에 매달린 그네가 밑으로 내려앉듯 크게 한 번 출렁이더니, 훨씬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성공이다~!"

고헤이는 펄쩍 뛰어올랐다. 하루키를 끌어안고 기쁨을 나눴다. 부조정실에 있던 니바는 벌떡 일어서서 두 손을 모아 쥐더니 운동선수처럼 좌우로 흔들었다.

객석에서는 그날 공연 중, 가장 큰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리턴이다. 저 사람, 혹시 성공시키는 거 아냐? 고헤이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스윙을 한 번 하고 나서 이라부는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몸은 그대로인 채 고개만 휙 돌아갔다.

장내는 폭소로 뒤덮였다. 124-125쪽 '공중그네'중

 

 

책 표지의 그림이 보이시는지. 배가 나온 뚱뚱보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공중그네를 타는 모습이 말이다.

저 그림을 보면서 서커스를 떠올리지 못한 나는 바보인가? 서커스의 공중그네는 두 손으로 당목을 잡고 매달려 타는거잖아. 하하하. (책을 집어들때 자세한 정보를 미리 챙기지 않는 버릇때문에 간혹 당황한다)

 '공중그네'의 저 마지막 장면의 묘사야말로 괴이한 의사 이라부를 정확하게 묘사한게 아닐까 싶다. 핵심을 꿰뚫어보는 눈과 두려움이 없는 사람 그래서 뭔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어이없는 언행으로 맥을 탁 풀어버리는 사람인것이다. 진지하다고 끝까지 진지하진 않고, 어린애 같다고 해서 문제를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는건 절대로 아닌 묘한 사람.

 종합병원의 지하 한 켠에 위치한 정신과. 환자를 어린애 취급하는 의사 이라부가 있다.  F컵 가슴을 가지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며, 핫팬츠를 즐겨입고, 늬를 좋아하는 간호사 마유미짱도 독특하긴 마찬가지. 고민에 고민을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도저히 어쩌지 못해 심각한 얼굴로 정신과를 찾은 환자들에게 이라부는 무조건 비타민 주사 한 대(핫도그만한 크기의 주사기로!!)를 놓아주고 이야기를 듣는다. 진지하게 듣는건 절대 아니고, 듣는다손 치더라도 열심히 듣는것도 아니다. 공중그네 베테랑 고헤이가

자꾸 스윙에 실패하면서 불면에 시달린다고 호소를 하는데, 처방따윈 아랑곳 없다. 서커스단원이라는 얘기에 '서커스! 갈래, 갈래. 지금당장 가자. 내일부터 왕진해주고, 주사는 공짜로 놔줄께'라고 소리를 지르는 인간이다.

 날카로운 물건에 공포를 느끼는 야쿠자 중간보스, 공중그네에 실패하는 베테랑 서커스단원, 학창시절 놀려먹던 교수가 장인이 되는 바람에 장인만 보면 안절부절하는 의사, 꽃미남 루키가 입단함과 동시에 송구를 못하게 된 프로야구 3루수, 글을 쓰다보면 어쩐지 전에 이미 써 놓은 인물과 상황인것 같아 안절부절하는 잘 나가는 연애소설 작가.

 이라부에게 상담을 하러 온 이 사람들 모두는, 당최 이라부가 의사같지 않다. 야쿠자 무서운 줄도 모르고, 3층 높이 공중그네 하겠다고 겁없이 공중그네를 잡고, 파괴충동을 없애려면 괴팍한 장난도 해야한다고 충동질하고, 야구선수에게 타격을 가르쳐달라고 조르고, 나도 소설가 해보겠노라고 당장  50매 원고를 써서 편집자에게 보내는 이 사람을 어떻게 신뢰하겠는가. 일반적인 세상을 보는 눈으로 말이다.

 하지만 저 어린애같은 의사는, 그 천진난만함 덕분에 이들을 모두 치료한다. 백발백중! 한마디 조언을 하는것도 아니고, 특별한 처방을 하는것도 아니지만, 환자들은 이라부와 이야기하고 행동을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스스로 해결한다. 이보다 더 훌륭한 정신과 의사가 어딨을꼬? 이라부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나라도 당장 가 보고 싶다. 아니, 진심을 말하자면 이라부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해야하겠지. 못 말리는 사람. 세상에 두려움이란 모르는 사람. 해보고 싶은 일들 당장 실천하는 천진함. 이라부가 곁에 있기만 해도 더 많이 유쾌하고, 더 많이 행복해질 것 같은 예감.

 소설은, 같은 패턴의 단편 연작이라 두 편쯤 지난 후엔 재미가 떨어지긴 한다. 최근 유행하는 가벼운 일본 소설에서 그다지 많이 벗어나지도 않는다. 다만 '그래서 뭐?'라는 허무한 감정이 들지 않고, 읽으며 한 없이 즐거워지는것이 이 책이 지닌 미덕이겠다.

 

"자, 입 다물고 주사부터 한 대 맞자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