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마가 사랑한 화가 들라크루아 - 별난 화가에게 바치는 별난 그림에세이
카트린 뫼리스 글.그림, 김용채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뒤마가 사랑한 화가 들라크루아


따뜻함 넘치는 글과 그림



 당신이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 책을 읽고, 누군가 내 사후에 이런 글을 써서 남들에게 들려준다면, 그것도 정말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일러스트가 아닌 글의 원작인 뒤마의 <들라크루아에 대한 한담>은, 한담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실 죽은 친구에게 바치는 추모글이다. 오해와 질시, 편견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야 했던 친구의 삶을 애통해하지만, 그럼에도 열정적이었던 친구의 삶을 결코 지나치게 추앙하여 왜곡하지 않고 뒤마만이 쓸 수 있는 문장으로 그려나고 있다. 부드럽고 농담이 넘치는 글이지만 그 사이사이에 스며든 주제는 결국 그리움이었다. 그 따뜻한 우정이 이 책을 빛나게 만드는 첫 번째 요소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들라크루아에 대한 한담>이 아니라 <뒤마가 사랑한 화가 들라크루아>이다. 단순히 글로 이루어진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카트린 뫼리스의 그림과 재능 덕분에, 나는 그녀의 일러스트가 없는 이 책을 상상하기 힘들어졌다. 이미 일러스트가 단순히 책의 이해를 쉽게 하거나 책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식적이고 보조적인 역할만을 해오던 시대는 지났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빽빽한, 글자만 가득한 책만을 읽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뫼리스의 그림은 내게 일러스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명화의 패러디로 독자의 재미를 돋우는 것은 그저 그녀의 재능의 일부분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러스트 자체가 이 책의 내용과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넉넉하고 따뜻한 감정이 넘치는 뒤마의 글과 어우러져, 뫼리스의 글 역시 들라크루아에 대한, 또 그의 친구 뒤마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고 있다. 또한 춤추는 듯한 그녀의 그림은 뒤마의 글과, 더 나아가 들라크루아의 그림에 대한 그녀 나름의 해석이자 존경심으로까지 보인다.(물론, 원래 그런 그림체라고 한다면, 그녀의 탁월한 글과 소재 선택에 박수를 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지만)

 이렇게 뒤마의 글과 뫼리스의 그림이 씨줄과 날줄 얽히듯이 어우러져 하나의 ‘대담하고 정교한(이 수식어는 들라크루아의 작품에도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라고 생각한다)’ 책 한 권을 만들어냈다. 나는 단순한 의미일 뿐인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가 어우러져 책으로 만들어질 때, 그것이 살아있는 생명이 되는 기적을 많이 목격했다. 그러나 이제 단어와 그림이 어우러져 생명이 되는 기적까지도 목격했다. 그리고 이 따뜻함이 넘치는 책이 나를 안아주며 들라크루아의 삶으로, 뒤마의 사랑으로, 뫼리스의 재기로 나를 안아주는 기적도 경험했다. 그러한 기적들을 겪고 어찌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책은 명작이 아니다. 후세에 길이길이 남을 교훈이나, 예술적인 가치를 함뿍 담은 책 역시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책과 사랑에 빠지는 진귀한 경험을 선물한 소중한 책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 뒤마의 연회준비에 들라크루아가 뒤늦게 나타나 로드리그 왕을 그리는 것을 볼 때가 가장 그 진귀한 경험을 잘 설명할 수 있으리라. 그 장면은 들라크루아가 순식간에 붓질을 하는 장면을, 역시 스치는 듯한 붓자국으로 연출하며 ‘빨랑빨랑 그리시오.’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나도 어서 펜을 들고 글을 쓰고 싶어지니까. 그것도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듯이. 기적이 별개 있던가. 이러한 삶의 순간순간이 기적인 거지. 얇은 책을 다시 들추며 생각한다. 책이 주는 큰 기쁨을 다 맛보고 살고 있으니, 나도 참 행복한 인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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