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공감 능력이 뛰어나니까." 나는 이 말이 무섭다. 공감과 이해의 짐을 지울 때 밑밥 까는 말 같기 때문이다. 남자가 공감하려 들지 않으면 진화에 따른 유전자 탓이지만 여자가 그렇지 못하면 ‘비정상‘이다. - P45

"딸은 애교도 많고 공감도 잘하고 노후에 부모도 잘돌본다." 딸을 향한 상찬같이 들리는데 불편하다. 나는이런 ‘딸바보‘들이 무섭다. 1950년대생인 우리 엄마가평생 감내해야 했던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의 다른 버전 같다. 딸을 인간이 아니라 기능으로 환원한다는점에서 그렇다. - P46

프롬은 인류가 ‘남성의 무장해제‘ 방향으로 진화한 까닭이 여성의 성적 자율성이 커질수록 영아 생존률이나 개체군의 성장률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진화심리학은 남성적 시선을 적응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차별적 편향을 인간의 진화생물학에 투사해버리고 만다"며 "현대여성들이 과거에 진화를 통해 얻은 성적 자율성을 완전히 향유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주범은 가부장제라는문화의 진화였다"라고 썼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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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삶이 만만치 않다는 걸 절감할수록, 실은 내가 그리 대단한 존재가아니라는 걸 깨달을수록 사랑은 연민을 닮아간다. 자신의 약함을 절감할수록 연민의 폭은 넓어진다. 그런 연민은 다정하고 평등하다. 그 다정함이 나를 구원할 거다. - P13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에서 정신분석·문학 등을 몽땅 동원해 이 두 감정의 뿌리를 짚는다. 오염·전염을 떠올리게 하는 오줌, 똥, 콧물, 끈적끈적한 체액은 원형적 혐오 대상이다. 이 이미지들은 비약을 거듭한다. 인간이면 가질 수밖에 없는 동물성과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을 타인에게 투사하면서 혐오는 자란다. 승자만 지배하는 환경에서는 더 잘 자란다. 자신 안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을 타자에게 덮어씌우고 자기에게는 없는 척한다. 이상적인 남성성에 대한 환호는 여성혐오로 완성된다. 이상적인 몸은 추한 몸이 없으면 있을 수 없다. 인종주의, 동성애에 대한 거부의 근간에도이런 투사가 똬리를 틀고 있다. 누스바움은 이를 동물과 인간 사이 ‘완충지대’를 만들려는 욕망이라고 해석한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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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형체죠. 진정으로 가지고 싶은 건 자유로움이에요. 가고자 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요. 자유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주 잘 만들어진, 오르지 못하고 넘지 못하는 것이 없는 바퀴만 있으면 돼요. 문명이 계단을 없앨 수 없다면 계단을 오르는 바퀴를 만들면 되잖아요. 기술은 그러기 위해 발전하는 거니까요. 나약한 자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눈이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어도 각자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콜리는 인간의 구조가 참으로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있지만 시간이 같이 흐르지 않으며 같은 곳을 보지만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고, 말하지 않으면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때때로 생각과 말을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숨기다가 모든 연료를 다 소진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렸고, 다른 것을 보고 있어도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으며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시간이 맞았다. 어렵고 복잡했다. 하지만 즐거울 것 같기도 했다. 콜리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면 모든 상황이 즐거웠으리라. 삶 자체가 연속되는 퀴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나는 세상을 처음 마주쳤을 때 천 개의 단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 개의 단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천 개의 단어보다 더 무겁고 커다란 몇 사람의 이름을 알았다. 더 많은 단어를 알았더라면 나는 마지막 순간 그들을 무엇으로 표현했을까. 그리움, 따뜻함, 서글픔 정도를 적절히 섞은 단어가 세상에 있던가.

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단어를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n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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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시리즈는 모두 소장하고 싶어요. 

  전자책과 종이책이 뒤섞여 있는데 계획해서 살 걸 그랬어요. 


   













당연하지만, 지식에 이르는 지름길이나 뒷문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전 하나를 통째로 외워보아야 대양의 가장자리에서 물장구만 치는 꼴일 뿐퍼즐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착각에 매달린다. 이 책을 읽으면 이 분야에 대해잘 알게 될 거야,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내면 세상의 비밀을 알게 될 거야. 그런 믿음이 없으면 우주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본질적으로 그것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끔 또는 어떻게든 인지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의속성들을 목록으로 만든다"라고 했다. 그 목록들이혼란스럽고 위압적인 세상에서 일단 첫발을 디디게 해줄 무게추가 된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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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뜻을 잘 몰라서 일어나는 혼란은 대체로 내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해결되지만(‘아 그게 그 뜻이었구나‘) 내가 하려는 말을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일어나는 일들(말실수, 오해,
억울함, 답답함)은 사회적 장애를 일으킨다. 나는 제대로 말하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느낀다. 말을 하려는 마음이 말보다 늘 한 걸음 빨라서, 엇박자로,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다리보다 마음이 먼저 나가는 바람에 넘어지듯이 말을 한다. 제대로된 단어를 얼른찾지 못해 과녁에 맞지 않는 단어를 사용한다. - P10

어린아이는 언어를 배우면서 동시에 세상을 배워나간다. 아이는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추론에 의해 말을 익힌다. 단어가 쓰이는 용례를 수집하고 의미를 제련해서 제 것으로 삼는다. 이렇게모은 단어들을 잇고 엮고 쌓아 세계를 구성한다. 어떤 단어를 새로이 알게 되면, 그 단어가 표상하는 영역만큼 세상이 넓어진다. 새로 알게 된 단어는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도구가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단어가 없으면, 다른 사람의고급 언어 공격을 받아칠 수도 없고 세상을 이해할 수도 없고 내 생각을 표현할 수도 없어 위태롭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필요한 단어가 무엇인지, 그 단어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단어가 ‘엄연하다‘라는 사실을 그 단어로 얻어맞기 전에는 몰랐던 것처럼.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전이 있다. - P17

나는 당장 읽지도 않을 책들을 사서 책꽂이에꽂아놓는 것도 좋아하는데, 책을 일종의 외장 메모리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머리에 꽂으면 내 지식이 되는 메모리스틱처럼 여긴다. 그중에서도 모든 지식을 집대성한 사전이 집에 있다면, 테라바이트급의메모리스틱을 갖고 있는 셈이니 얼마나 든든한가(언제 머리에 꽂을지는 알 수 없지만).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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