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1
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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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안하는 기간이 6개월을 넘어가본 적이 없는데, 최근엔 1년을 넘게 운동을 안하고 있다.


이유를 고민해봤더니, 지난 운동시기들에 비해 동기가 없었던 것.


나의 운동 목적은 언제나 '지금보다 더 많이 먹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운동을 하지 않아도 이미 많이 먹고 있으므로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그러니 그것이 나의 운동의 동기가 되진 못했다. 예전엔 운동한 날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규칙도 세웠는데, 요즘은 그러거나 말거나 늘상 퇴근 후 운동하고 한 잔 하게 되니 그 규칙도 있으나마나가 되었다. 합리화 시점이 오게 된 것.


다이어트?

나는 현재의 내 몸에 만족하자는 주의고, 그렇기에 다이어트를 왜 해야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내 운동의 계기로 생각해본 적도 없고, 해낼 자신도 없다. 그건 아마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이렇게 운동의 동기를 찾지도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운동이 점점 재미없어지고 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서 아무튼, 피트니스를 읽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운동을 어떻게 잘 유지해가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고, 운동의 동기라는 게 '더 많이 먹기 위해서'라는 이유 말고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신체 단련을 피트니스(fitness)라고 하는데, 목적에 부합(fit)하기 때문이란다. 목적은 최소치이자 현실적인 목적을 잡아야만 한다, 고 했다. (9쪽)


내가 잡을 수 있는 현실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나에게 맞는', '꾸준히' 할 수 있도록 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도 나와 같은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엉덩이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를 움직이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결국 동기가 없어도, 내가 숨쉬고 먹는 것만큼 운동도 당연히 해야하는 것으로, 운동을 내 몸에 새겨지도록 만들어 '습관화' 하고 각인시켜야겠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특별한 동기나 계기가 없어도 당연히 하는 것이 되게끔, 그렇게 가는 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뭔가를 이루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래도 한 번은 도전해볼 만 할 것 같다.


운동을 내 몸에 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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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현남 오빠에게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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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현남 오빠에게>


현남이가 참 대단한 인간이었다.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어찌나 기가 차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주인공은 오빠오빠 해주는 건지 모르겠더라.

지난 긴 날들에 대한 나름의 예의인 건가-

어째서 주인공은 당장 헤어지지 않고, 그렇게 오래 그런 관계를 이어온 건지 너무 답답했으나, 사람마다 상황에 대해 납득하고 이해하는 시간은 다를 테니까 넘어가기로 했다.

생각보다(내 기준) 많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그 관계에 종지부를 찍은 주인공에게 축하하고 싶고, 앞으로의 길을 응원하고 싶다.



손보미 <이방인>


개인적으로는 참 쉽게 읽히는 글이었다. 손보미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떤 것이 있나 찾아볼 정도로.

린디합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이전 작품이 구미가 확 당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도전해보고는 싶다.



구병모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신선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지?

구병모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봤더니 그 중 내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파과'의 저자이더라.

이런 방식으로만 처리를 했어야 했냐고 누군가는 말할 지도 모르겠지만, 읽는 나는 솔직히 속이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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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
한국여성의전화 엮음 / 한국여성의전화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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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어떤 미친 놈이 내가 샤워하는 모습을 훔쳐봤고, 우리집 안방을 훔쳐보고 있었다.

소리를 안내면 창문 열기를 시도하지 않지만, 소리를 내면 창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다.

너무 무서웠고, 정말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 와중에 신고를 하긴 했다.

우리집에 온 경찰은 현관문 양쪽으로 휭- 둘러보더니 그 사람(그 놈) 없다고, 앞으로 이쪽을 잘 순찰해주겠다고 했다.

집에 있는 게 너무 무서워서 어떻게 조치 좀 취해달라고 하니까, 자신들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문 닫고 있으라고 했다.

계속 조치를 취해달라 말을 하니까 그럼 근처 찜질방이라도 가던지, 경찰서에서 앉아있던지 하란다.

그들의 말에 더 이상 말하기를 포기했고, 나라의 공무원으로부터 나의 안전 받기를 포기했다.


경찰은 가려고 했고, 너무 무서워서 창문을 못 닫겠는 거다.

그래서 경찰한테 창문 좀 닫아달라고 했다가, 굉장히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라.

이거 하나도 못 닫냐는 식으로.

결국 해주긴 해줬다. 내가 무서워서 창문 근처에 도저히 못 가겠다고 해서.


그렇게 경찰은 갔다.


그 날 내가 안전함을 확인시켜준 것은, 다름 아닌 먼 지역에 살고 있는 내 친구였다.

야맹증 때문에 밤 운전을 하면 안되는 그 친구가, 내게 일어난 그 일 때문에 나를 데리러 왔다.


이 나라에서 나를 지킬 사람은, 나뿐이고.

같은 성별을 가진 친구들과 자주 연락해서 생사를 자주 확인해주며 서로를 지켜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나라에서 온전히 지탱할 것은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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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이민경 지음 / 봄알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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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 2017년 3월 18일 ~ 2017년 3월 28일

 

처음부터 막힘없이 술술 읽혔다.

 

중간중간 비집고 들어오는 생각들 때문에 집중력이 흐려진 적이 여러 번이었다.

비집고 들어온 생각들이란, 그동안 내가 스쳐온 순간들, 벌어졌던 상황들,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대응을 했고, 대화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논점이 어떻게 흐려졌는지 등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런 생각에 빠져있느라 같은 장을 펴놓고 멍 때리기 일쑤였다. 하하하하하하...

 

어느 것 하나 중요하다고 없을 정도로 모두 다 적절한 말들이었기에, 모든 문구들을 여기에 적을 수는 없지만, 사전에 내가 적어놓았던 말들은 이러하다.

 

32p. '남성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니 여성이 알려주어야 한다'는 말은 남자는 관심과 공감을 표하는 것만으로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의미 밖에는 못 됩니다. 애초에 공감을 못하는 존재로 태어났다면 영영 못 하는 대로 살았을 텐데, 누군가가 이렇게나 노력한 끝에 결국 바뀐 걸 보면 스스로 먼저 노력해볼 수도 있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남성이 모자라고 여성이 지혜로우니 품는 수밖에 없다는 식의 말도 다시 생각해봅시다. 여성이 어쩌다 지혜로워졌습니까? 가진 것 없는 인간이 맹수에게 죽기 싫어서 지능을 이용해서 살아 남았습니다. 여성도 있는 그대로 살 수 있었다면 굳이 지혜롭지 않아도 괜찮았을 겁니다. 생존을 위해 지혜를 짜낸 쪽더러, 모자라도 충분히 살 수 있었던  팔자 좋은 본인들을 너그러이 종용하는 건 아무래도 얄밉습니다.

 

말이 필요했던 이들에게는 특별한 해결책을, 지금껏 나만 예민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가졌던 이에게는 확신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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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1
정희진 엮음, 정희진.권김현영.루인 외 지음 / 교양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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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7년 2월 21일 ~ 2017년 3월 13일

 

나는 그동안 양성평등(성평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성소주자에 대한 차별도 당연히 없어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는데, 어째서 이 책은 양성평등을 반대한다는 건가 싶었다.

나의 이러한 자각없음은 목차를 살펴보고 난 후에야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어째서 나는 '양성'의 의미를 이제야 생각했을까! 왜 그동안 그 단어가 주는 의미를 생각하지 않았던가!

 

7p. 인간은 애초부터 양성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평등의 기준이 남성일 대 여성에게 '양성평등'은 평등이 아니라 이중 노동이 되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다.

 

여기서 무릎을 탁!

 

11p. 이성애 제도가 가부장제의 전제임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성적 소수자 억압은 물론 젠더 문제도 풀수 없다.

 

29p. 이분법은 반반으로 분리된 상황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체와 타자가 하나로 묶인 주체 중심의 사고다. …(중략)… 주체가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삼아 나머지 세계인 타자를 규정하는 것, 다시 말해 명명하는 자와 명명당하는 자의 분리, 이것이 이분법이다. 즉 이분법은 대칭적, 대향적, 대립적 사고가 아니라 주체 일방의 논리다.

 

30p. 이분법적 사고의 핵심적인 문제는 세 가지다. 척째, 위계를 대칭으로 위장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은폐한다. 둘째, '대립'하는 이항 외 다른 존재 혹은 다른 방식의 사고의 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셋째,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원형으로서 모든 언어의 모델, 척도, 기원, 전형으로서 인류를 지배해왔다.

 

38p. 성별이 만들어지는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 - 트랜스젠더

      '생물학=자연'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트랜스젠더 엿어을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욕망한다고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여성은 남자로 태어나서 여자를 욕망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만들어진 여성 중 하나이다.

 

46p. 여성주의는 남성과 같아지는 것('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47p. 다시 말해, 평등은 다른 사람과 같아지는 것(sameness)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다른 이들과 공정한 대우(fairness)를 받는 것이다.

 

48-49p. 애초에 우리 사회에서 엿어은 남성과 평등한 존재라기보다 '발전', '개발'되어야 할 존재로 다루어져 왔다. 5공화국 초기 만들어진 "한국여성'개발'원", 김영삼 정부 시기 "여성'발전'기본법"이 대표적이다.

 

여성을 발전, 개발해야할 존재로 봤다니 이 부분은 좀 충격이었다.

 

55p. 한국 남성들은 자기 계발과 시간 기획처럼, 인간으로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기 관리부터 선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난 이 대목에서 정말 빵! 터졌는데, 생각해보면, 적어도 내가 본 한국 남성들 중에서도 자신의 기본적인 생활 영위를 위한 의식주를 제외하고는, 그 외적인 부분에서 노력을 하는 사람을 보질 못했다.

 

64-65p. 퀴어란 용어는 서구, 특히 1980년대 미국에서 비백인-비이성애자-여성 집단을 중심으로 본격 사용하다가 1990년대 들어 폭발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PC통신 사용자를 중심으로 하여 '퀴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퀴어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중 이 글의 논의와 관련 있는 두 가지, 즉 지배 규범과 불화하는 정치학으로서 퀴어와 정체성 정치가 아니라 권력을 문제 삼는 정치학으로서 퀴어의 의미만 살펴보자.

 

지금껏 퀴어라는 단어는 이성애가 아닌 성정체성을 지닌 자를 지칭하는 용어인 줄 알았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나보다. 또 무릎을 탁!

 

105p. 한국 법제도상 나이 기준은 워낙 복잡하고 임의적이며, 나이를 나누는 기준의 근거가 정확히 제시된 곳은 없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만 선거 연령이 19세인 이유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미성년자 기준 연령, 결혼 가능 연령, 선거 연령 등 모두를 살펴보니 모순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결혼 가능 연령은 더 어린데 미성년자 기준 연령은 더 높고, 미성년자 의제강간 처벌 연렫은 더 낮고, 등등 뭔가 다 말이 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미성년자 의제강간 처벌 대상 연령이 13세 미만이던데, 성매매율이 겁나게 높은 우리나라에서 성매수자들의 처벌을 피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뭐 그런 생각도 들었다.

 

121p. 성적 자기 결정권은 섹스할 권리가 아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성적 주체화(subjectivation) 과정을 경험할 권리, 즉 구체적 관계성 안에서 자신의 몸을 사회적 몸(social body)으로 구성해 나갈 권리이다.

 

184-185p. 이승만의 부정 선거에 협력하고, 박정희 독재에 협력해 유신 헌법을 찬양했고, 전두환 장군을 위해 기도회를 올렸던 역사적 '사실'들과 함께 분석해야 할 필연적 결과일 뿐이다. 지금도 독립 선언을 한 민족 대표 33인 중에 개신교인이 몇 명이었는지를 강조하며 교과서 개정을 요구하고, 재임 시절 개신교에 엄청난 특혜를 줬던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치켜세우는 기념 사업에 열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부끄러운 과거를 덮어버리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 개신교는 자신들의 시대적 사명을 '반공'과 '친미'에 두었다. 그렇게 사반세기를 지나왔고 공동의 증오와 공동의 적으로서 활용해 왔던 '빨갱이'도 예전에 비해서 점점 그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그럼 이제 이들의 '사명'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동안 종교신자 중에 개신교가 많이 차지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가장 적었다.

전에도 얼핏 개신교의 정치적 개입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 보고 보수 개신교도 마냥 넘길 시끄러운 집단만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한국 기독교 흑역사였던가, 기회가 된다면 그 책을 또 읽어봐야겠다.

 

 

페미니즘을 시작하는 나에게는 조금 어려웠던 책이었고, 고민해야할, 생각해야할 부분들이 많았던 책이었다.

완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다 읽고 나니 완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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