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의 <침묵>이 전혀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있다. 홍성사만 읽었는데... 말이다. 


홍성사는 개신교 출판사고, 바오로딸은 가톨릭 출판사.. 비교해 읽으면 느낌이 어떨지... 사뭇 궁금하다. 홍성사 침묵은 있으니 바오로딸을 구입해야 겠다.











사해 부근에서 앞 몇 장을 읽고 이상해서 자료를 찾으니 인간 예수에 관한 책이다. 엔도 슈사쿠에게 어울리는 주제다. 예전에 젤롯을 읽고 인간 예로서의 삶을 읽은 적이 있다.


보수적 관점에서 인간예수를 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러나 초대교회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4세기 이후 신경이 완성 되기 전의 예수를 만날 수 있다. 주의해야할 부분도 있지만, 인간예수 읽기는 그동안 놓치고 간과했던 삶으로서의 신앙을 생각하게 한다. 


왜 인간 예수인가? 사람으로서의 삶, 생각, 고뇌를 고려하자는 것이다. 낳고, 배고프고, 배신 당하고, 슬픈 예수 말이다. 잘만 읽어 낸다면 참으로 멋진 읽기 아닌가? 


















예수라는 한 인물 안에 보수적 관점과 진보적 관점은 차이가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 둘을 같이 읽어야 한다. 아직까지 나에게 팀 켈러의 <예수를 만나다>의 관점이 강하지만, 만들어진 예수의 관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인간 예수의 이야기는 다시 번역의 문제로 돌아간다. 번역이란 외국어,즉 타언어 타문화의 관점에서 서술된 한 권을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로 읽어내는 것이다. 예전에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를 읽고 혼란스러웠다. 이 책은 정확하게 인간 예수로서의 삶을 강조한다. 즉 예수 믿음은 개념이나 관념이 아니라 삶이며 현재 일상 속에 있다고 말한다. 주인공인 그 신부처럼 말이다. 


요즘들어서야 책 읽기가 뭔지 조금씩 감이 잡히는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말이다. 아니면 이제 독서의 양이 아닌 맛에 길들여지고 있는지도.... 하여튼 나도 천국에 갈 수 있을지.. 삶이 당췌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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