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틀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있다. 추석이라 그리 많은 시간은 없지만 틈틈이 책을 꺼내 읽는다. 오늘은 아예 카페로 피신해 두 어시간 독서 시간을 확보했다. 중간 중간에 전화가 오는 바람에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2부 섹스와 검열 첫 페이지는 읽었다. 하도 하구잡이 기질이 많이 몇 권의 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읽는 타입이라 집중하지 못하지만 이번책은 그나마 눈에 잘 들어온다. '토라짐' '내면의 아이' 등의 단어가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부부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소설인지 작은 소논문인지 약간 헤갈리긴 하지만 부부의 일상을 꼼꼼히 챙겨주는 보통의 글실력에 감동 먹고 있다. 


볼현듯 초혼에서 부부싸움이 잦은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건 우리 스스로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연애와 부부 사이는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 대개 많은 사람들은 같다고 생각한다. 결혼 한 후 달라진 아내와 남편을 향해 '변질' 또는 '변했다.'고 믿어 버린다. 심하면 '사랑이 사라졌다.'는 무모한 의심을 하기에 이른다. 하여튼 보통의 책은 보통은 아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이제야 희미하게 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 강진 읍내에 나가 책을 샀다. 문제는 몇 권 사지 않았는데 20만원이나 된다는 것이다. 가격도 보지 않고 산 내가 문제다. 알고보니 아이들 참고서가 한 권에 25,000원이다. 중1-3학년 영어과 수학을 사고 나니 책 값이 눈덩이처럼 커져 버린 것이다. 꼭 사야할 책은 아니었는데 그냥 카드를 긁고 말았다.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무지막지한 잔소리가 자정이 넘도록 들릴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다음달 카드값은 확실히 불안하다.


아이들 참고서와 더불어 몇 권의 책을 더 샀다. 이것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공병호의 <김개철 평전>, 한정주의 <글쓰기 동서대전>, 카트린 지타의 <내가 혼자여행하는 이유>, 파울로 코엘료의 <불륜>,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때>이다. 이 책들은 전혀 살 마음이 없었다. 견물생심이라고 책을 보는 순간 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났다. 첫눈에 반하듯, 소개글을 읽고 난후 한쪽 구석에 쌓기 시작해 다섯권이나 사고 말았다. 그것도 무지막지한 책들을. 공병호의 <김재철 평전>은 순전히 김재철 회장의 고향이 강진 군동이기 때문이다.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 창업자인 그가 강진 군동 출신이라니. 그러고 보니 예전에 누군가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아무 생각도 없었다. 다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외에는. 


카트린 지타의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는 제목만 보고 샀다. 표지에 독일 아마존 심리.여행 베스트셀러라는 광고 문구만으로 충분히 살 이유가 된다. 난 요즘 혼자 여행 중이거든. "어리석은 사람은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 선전 문구도 맘에 든다. 


"나는 여행자들이 글을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모두 최상급 여행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글쓰기가 혼자서 여행을 하는 동안 가질 수 있는 자기 성찰의 기회, 내면적으로 단단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여행지에서 깨달은 것과 결심한 것들을 잊지 않고 지켜 나가고 싶다면 지금 당장 가방에 노트와 연필을 챙겨라."(195쪽)


멋지지 않는가. 그런데 연필이 아닌 젤펜을 챙긴다. 연필은 깍아야 하니까. 독어는 연필인지 아니면 의역해 연필로 번역한 건지 궁금하다. 차라리 볼펜을 들어라가 좋지 않을까? 시대를 감안한다면. 하기야 요즘에 스마트폰으로 충분하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는 고인이다. 그는 1977년에 태어나 의사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젊은 사람이다. '젊은' 그가 왜 죽었을까? '암'이다. 의사이면서 환자의 입장에서 자기만의 관점으로 죽음을 풀어 간다. 암을 확신한 그는  내과 의사인 아내를 '젊은 연인들처럼 서로를 꼭 끌어 안았다.'(p20) 죽음을 감지한 그가 취한 행동은 아내와 포응하는 것이다. 그것도 뜨겁게. 그는 영문학과 생물한을 공부했고,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과정까지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했다. 그래서인지 죽음까지 용감하게 걸어갔던 그는 탁월한 문장과 표현으로 삶의 의미를 파고든다. 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결국 이 책도 쌓았다. 


파울로 코엘료의 <불륜>은 장편소설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과 비교하고 싶어 샀다. 워낙 유명한 남미 작가가 아니던가. 충분히 살 가치가 있는 작가다. 한정주의 <글쓰기 동서대전>을 두께가 살인적이다. 글만 663쪽이다. 800쪽에 가까운 <김재철 평전>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읽기는 쉽지 안을 상 싶다. 내용도 그리 단단해 보이지 않는다. 글쓰기 비법이 아닌 글쓰기 철학쯤으로 이해하면 될까? 그래도 좋다. 분명 좋은 책에 속하니 양서에 넣고 싶다.


내가 궁금한 건, 권태도 사랑일까? 라는 점이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인 것처럼 말한다. 아직 그 대목까지는 가진 않았지만 흘러가는 분위기는 그렇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상에서의 논쟁은 그들 성격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어져 나온 실밥이다."


권태는 사사건건 일어나는 일상의 논쟁 이후에 일어나는 일종의 무관심이다. 지겨움이다. 관심을 끄고 싶은 것이다. 무료함으로 이어지고, 무관심까지 나아간다. 이것이 정상인 것이다. 정말일까? 불쑥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의문은 이것이다.

"이걸 어떻게 견디고 살지?"


알랭 드 보통은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있는 현미경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심지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퍼붓는 비난들은 딱히 이치에 닿지 않는다. 세상 다른 사람 어떤 사람에게도 그런 부당한 말들을 발설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난폭한 비난은 친밀함과 신뢰의 독특한 증거이자 사랑 그 자체의 한 증상이고, 제 나름대로 헌신을 표현하는 비꾸러진 징표다. 분별있고 예의 바른 말은 모르는 사람에게 할 수 있지만, 밑도 끝도 없이 무분별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믿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뿐이다."


그래서 말인데, 아무리 친밀한 부부사이라도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부부싸움은 결코 칼로 물베기가 아닌 것이다. 서로에게 실망하면 권태에 빠지고, 존경심이 사라진다. 존경심과 경외가 사라지는 순간 존재를 부정되고 부부사이는 금이 간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 부부라도 곧 이런 회의를 느끼게 된다. 


"고작 이게 다야?"(코엘뇨의 불륜 중에서)


내가 보기엔 권태는 사랑이 아니다. 보통의 사랑은 감정을 넘어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을 백번 동의하면서도 무료한 일상이 사랑이란 범주에 들어오기엔 어색하다.





꼼꼼히 / 부사의 끝 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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