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주목신간] 돌아온 자들의 증언


아들이 쨉싸게 달려간다.

"잡았다!"

신이난 아들의 외침이 어둠을 가르고 푸르디 푸른 벼가 잠든 들녁의 밤을 깨웠다. 

"아빠, 와보세요. 암컷이에요."

"어디보자. 진짜네."

장수 풍뎅이다. 아들은 장수 풍뎅이를 잡고 즐거워 한다. 한 두 마리가 아니다. 잠시후 다시 날아 든다. 아들은 다시 잽싸게 달려가 잡는다. 빛을 좋아하는 장수 풍뎅이는 밤이 되면 시골의 가로등 불빛으로 모여 든다. 오랫동안 날 수 없는 뭉퉁한 몸매 때문에 윙하고 불 빛 주위를 돌다 바닥에 떨어진다. 아들은 가로등 아래서 날아 다니는 장수 풍뎅이는 기다리다 바닥에 떨어지면 잽싸게 달려가 잡는다. 벌써 스무 마리가 넘었다. 가져온 채집통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스티븐 F. 코언의 <돌아온 희생자들>

스티븐 F. 코언의 <돌아온 희생자들>이 글항리에서 번역 출간 되었다. 스탈린 사후, 굴라크 생존자들의 증언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굴라크(러시아어:ГУЛаг, gulag)는 소련에서 노동 수용소를 담당하던 기관이다.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국가 보안국 교정 노동 수용소의 주 관리기관'이다. 초기에는 이름처럼 교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점점 강제노동소가 되었고, 정치범을 다루는 수용소와 소련의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는 감옥이 되었다. 수감된자만 수백만명에 이른다. 아우슈비츠보다 더 악날하고 잔인한 곳이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다행히 알렉산더 솔제니친이 1973년에 <수용소 군도>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갇힌 사람들은 범죄자들이 많았지만 양심수도 상당히 많았다. 무단 결근이나 좀도둑질, 정부에 대한 비판적 말이나 농담만을 끌려온 이들도 상당수였다. 정치범들은 재판으로 변호도 받지 못한체 끌려와 수감되었다. 수감자들은 수용소 안에서 가혹한 육체 노동을 강요 받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끊임없이 죽어 나갔다. 음식이 없어 쥐도 잡아 먹었다. 


스탈인 사후 흐루쇼프는 굴르크 죄수를 방면하고 그들에게 생존의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1964년 흐루쇼프 정권이 막을 내리자 스탈인 주의자들의 다시 득세하여 반대세력과 긴장이 고조되었다. 저자는 수감자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사연을 듣고 메모한다. 소련은 그를 추방하고 입국 비자를 거부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책으로 엮었다.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몸와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황폐하다못해 생존조차 버거운 상태가 되었다. 악마적 존재였던 스탈린, 그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 오히려 수많은 이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들의 증언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해야 한다.




리차드 하워드의 <정말 600만이 죽었나?>


나치의 지배아래 유대인들은 600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잠깐 패배를 맛보았지만 지금은 포악한 살인자로 돌변했다. 끊임없이 가지지구를 공격하여 팔레스타인들을 몰살하려고 한다. 그 이면에 시오니즘이 자리잡고 있다. 저자는 '600백만'이라는 숫자 속에 담겨진 유대인들의 기만과 술수를 고발하고 있다. 


분명 유대인들은 피해자였다. 그러나 이제 가해자가 되어 무참하게 학살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본 모습이다. 저자는 차근차근 유대인

들의 주장에 대한 오류를 파헤친다. 




<살아남은 아이>

형제복지원, 말로만 들었지만 무슨 내용인지를 전혀 몰랐다. 이책을 보면서 형제복지원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았다. 아~~~세상에 이럴수가. 어느 신문 기사에 명료하게 정리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약 3천명을 수용한 전국에서 가장 큰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시 진구 당감동의 형제복지원에서 1975∼1987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거리에서 발견한 무연고 장애인과 고아 등을 끌고 가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구타, 학대한 인권유린 사건을 말한다."(SBS뉴스)

부산판 도가니였다. 증언에 따르면 간강, 살인, 암매장 등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들의 행적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잊지 말자 형제복지원사건!











도널드 서순의 <사회주의 100년 1.2>

우리나라의 현대사적 불행은 해방 후 소련과 미국이 자국의 이득을 위해 한국을 둘로 갈랐다는 점이며, 그로인해 남한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반공정책이 강하게 자리잡으면서 온전한 사회주의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점이다. 오로지 반공과 멸공으로만 해석되고 환원되는 이데올로기의 향연은 부패한 정치적 모략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시간도 지났고 여유도 생겼으니 서유럽의 사회주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도널드 서순의 탁월한 저서인 사회주의 100년이 번역되어 출간 되었다. 두께와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귀한 책임에는 틀림 없다. 그들의 증언도 들어보자. 사회적 약자와 평범한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면 말이다.

















아들은 채집통이 가득찬 것을 보고 마음이 뿌듯한가보다. 아내는 아들의 채집통에 가득찬 장수 풍뎅이를 보고 말한다.

"아들아, 불쌍하지 않니? 살려 주면 안 될까?"

그렇다. 생명을 보고 아파하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나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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