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며칠만일까? 요즘은 날짜를 잊고 산다. 망각된 시간은 존재의미를 앗아간다. 오늘 오후 2시에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를 모두 읽었다. 5월 11일에 주문하여 이틀 뒤에 받았으니 어언 한달하고도 4일이 지났다. 한동안 이 책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3주 가까이 썰렁한 책장에 방치했다. 그러나 6.4선건 이후 깨어날 줄 모르는 국민들의 '미개함'에 치를 떨고 궁금증을 털어 내고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첫장부터 '충격'이란 말이 어울릴만큼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6.15와 한국전쟁이란 용어안에 담긴 은밀하고도 조직적인 기적 조작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현대 한국이 가지고 있는 '기억' 또는 '추억'은 '압제하는 앎과 예속된 앎'(73쪽)이다. 사건은 객관적 진술이 가능할 것으로 믿지만, 해석은 아니다. 사건 역시 정보의 편향으로 인해 심한 왜곡과 변형이 일어난다. 인간은 많이 아는 것을 진리로 받아 들인다. 적게 아는 것은 의혹내지는 가능성으로 치부 한다. 현재는 조작된 과거의 기억의 편린을 한곳으로 끌어모아 왜곡된 해석을 부추겼다. 왜? 역사의 해석은 언제나 승자의 것이기에.


"언제나 기억과 기록은 승리자의 것이기에 대부분의 한국전쟁 자료는 여전히 미국에 있고 기록과 연구는 미국인들이 쓴 것들이다."(43쪽)


강제된 앎의 문제로 들어가보자. 필자는 70년대 태어난 박정희와 윤선, 전두환과 노태우, 그리고 김대중과 노무현, 이명박과 박근혜를 기억한다. 그러나 이승만은 문헌을 통해서만 접했다. 심지어 어릴적 경험은 강제된 해석으로 인해 바르지 못했으며, 왜곡된 시각을 심어주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우스꽝 스럽게도 나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북한 사람들이 '늑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기겁하고 말았다. 언제 미국은 우방이고, 소련과 북한은 '적'이었다.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였고, 박정희는 경제계발의 주역이었다. 그 것외에 무엇을 알았는가? 아무 것도 몰랐다.


순전히 우연히 접한 제주항쟁, 여순반란사건, 국민보도연맹의 학살 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함을 보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도대체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렇게 시작된 앎에대한 갈증은 박세길의 <다시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민중항쟁사를 접하게 되었고,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를 통해 한국전쟁이 아직 일제시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몰랐던 수많은 정보와 사건은 편중된 기억을 객관적 시각이 되라고 강제했고, 아직 끝나지 않는 일제청산의 문제가 현대사를 장식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친일파, 미군부, 학살과 살인 등. 끝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생소한 단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게 한다.


난 한국사에 대한 무지했다. 아니 전혀 몰랐다. 지금 내가 알아가고 있는 사실들은 금시초문이 대부분이다. 난 그렇게 순진했고 바보였다. 그러나 이제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한다. 눈을 부릅뜨고 역사를 살펴 볼 것이며, 정치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모두 6부로 나누었다. 먼저 1부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란 제목으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 즉 해석을 다룬다. 가장 중요하다. 2부에서는 '피란'을 통해 지도층의 무책임함과 민중의 고통을 다룬다. 피난 가지 않으면 '빨갱이다' 3부에서는 '점령'된 상황 속에서 당해야 했던 민중의 처절한 아픔을 살핀다. 4부 '학살'에서는 나의 가장 많은 관심과 주의를 필요로 했던 문제이다. 인민군에의한 학살과 국가의 직접적 간접적 학살의 양태를 탐색한다. 참으로 끔찍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마지막 5부에서는 '국가주의를 넘어서'란 제목으로 책의 전체적인 결론과 희망을 담았다. 마지막 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다.


"결국 50여 년 전 한국전쟁 과정에서 민중이 당한 비참함과 인간 존엄성의 훼손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야만의 흔적들, 즉 극우반공주의의 광기, 소외계층의 궁핍과 사회적 배제 등의 상과 그 뿌리가 같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인간의 존엄성을 앗아가는 이러한 세계자본주의, 그것의 정치적 표현인 국제적 군사대결체제라는 틀 속에서 보아야하고,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에서 항구적인 평화의 구축과 인권의 실현이라는 전망을 놓치지 않은 채 그 부정적 유산을 청산할 길을 찾아야 한다."(4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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