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 29회

종이책 읽기를 권함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글자를 읽는다가 맞다. 그런데도 여전히 책을 읽는다고 표현한다. 문법이 맞지 않으면 지적하고, 오타가 나면 고치라고 말하는데 책을 읽는다는 표현을 고치란 소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왜 그럴까


얼마 전 이민희의 <책쾌 송신용>을 읽기 시작했다. 구한말에 태어난 일제 강점기를 지내며 육이오까지 경험한 한국 근대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책쾌' 그러니까 책장사였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가정판매원인 셈이다. 요즘처럼 서점이 존재하지 않았고,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 송신용은 책장사를 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뿌리를 보존하려했다. 그의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더해진다. 저자의 딱딱한 문장과 논증방식의 글쓰기 예리함을 더해 준다. 오늘은 책 내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책을 이야기하고 싶다.


<김영주의 <책쾌>를 같이 담은 이유는 송신용이 구한말의 책쾌였다면, <책쾌>의 주인공인 조신선은 조선의 혼란한 시기였던 18세기에 책쾌로서 기이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은 나의 책이요.'라고 장담할 정도로, 자신을 거치지 않고 책을 사기는 힘들었다. 잘 알려진 정약용 등이 모두 조신선에게서 책을 구입했다.>

 

겨우 175쪽이다. 그러니 평전도 아니고 간략한 인물 연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완독에 대한 부담이 없다. 언제든지 시간 내면 끝까지 읽을 수 있겠다 싶은 분량이다. 이정도 분량이면 한달에 50권도 무난하지 않을까. 사람의 심리란 묘하다. 100쪽 열권이나, 1000쪽 한 권이 똑같은데도 100쪽 열권은 쉬워 보이는데, 천 쪽 한권은 무섭기까지 한다. 독서습관을 갖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런 책을 추천한다


한 손에 쏙 들어온다. 두껍지 않아 부담도 적어 핸드백에 넣어도 되고, 손에 들고 다녀도 무리가 없다. 휴대성의 편리함은 가독력을 높여 준다. 심리적으로 안정되며, 틈나는 대로 읽을 수 있다. 생각해보라. 1000쪽짜리 두께의 책을 어디에 들고 다니겠는가. 고대로부터 독서광은 집에서 읽는 책, 외출할 때 읽는 책이 달랐다. 나 역시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가방에 짐을 더 늘릴 필요는 없지 않는가. 부담 없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분량의 책이 딱이다.


내가 좋아하는 알베르토 망구엘도 이렇게 말한다.

 

침실에서 읽거나 독서대에서 읽기 위해, 아니면 기차 여행 때 읽거나 선물을 주기 위해 책을 고를 적에 나의 손길은 책의 내용 못지않게 모양새도 고려한다. 기념할 행사에 따라서, 아니면 책을 읽을 장소에 따라서 나는 작고 읽기 편한 책을 더 좋아할 때가 있고, 두툼하고 내용이 알찬 책을 더 좋아할 때가 있다.”(<독서의 역사> 중에서)


출판사들은 책의 크기를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지 모르지만 독자로서 크기는 매주 중요하다. 읽는냐 마느냐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크기도 적지 않게 좌우한다. 특히 나같이 이동이 잦은 사람들은 내용의 무게감과 휴대성의 극대화가 공존하는 책이라면 대 환영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책의 디자인이다. 전면도 좋고, 왼쪽 하단에 살짝 넣은 출판사 이름도 멋지다. 굳이 한자로 된 책이 주인공의 삶을 잘 반영해 준다.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고루 배여있다.



눈길을 끌었던 건 다름 아닌 오른쪽 하단부분이다. 궁글게 깎여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곡선의 미학을 살려준 배려가 고맙다. 근데 살짝……. 출판사에서 의도적으로 배려한 것이 아니라 어떤 독자가 책을 사서 칼로 다듬지는 않았을까? 나도 예전에 그런 적이 있다. 연필깎이용 칼을 사서 칼의 날카로움을 시험코자 책의 한 모퉁이를 깎아 둥글게 만들었던 것이다. 보기에도 좋았다. 왠지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작당을 벌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다른 책을 살펴보지 않아 확인할 길은 없다. 그렇다고 책을 다시 주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의심의 눈초리를 부정하기라도 하듯 책은 전반적으로 독자를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중간 부분 곳곳에 <깊이읽기>코너를 만들어 놓았다. 주인공의 삶만을 다루지 않고,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 주인공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책쾌들의 역사를 간략하게 알려주니 송신용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책의 역사도 함께 배울 수 있어 역사공부에도 적지 않는 도움이 된다.

 

 내부 디자인도 책의 내용과 잘 어울린다. 외부에 황토색의 넓은 테두리는 안정감을 주고 축적된 시간의 향기와 아늑한 느낌을 함께 선물한다. 누군가는 황토색에 안정감을 갖는 이유를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무의식 속에서 자신과 동일시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송신용의 일생을 추적하면서 그가 다루었던 책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 또한 독자들에게 큰 도임이 된다. 오래된 사진과 책 풍경들이 그 시대 속으로 침전하도록 끌어간다. 병인양요가 거꾸로 적힌 것을 보니 시간의 궤적을 찾아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한문학에 능했던 송신용이었지만 우리글에도 아낌없는 사랑을 쏟아 붇고 자료를 찾고 보존하려 했다. 송신용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근대문학서적의 상당부분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수고가 후대에 풍성함을 전해 주었다니 이 또한 기쁘지 않는가.



책은 눈으로 입으로 읽는다. 그러나 그것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보이지 않는 부분도 함께 읽는다. 손으로 만지고, 코로 책 냄새를 맡는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맛도 제법이다. 오감을 통해 전해 책을 읽는다. 이북eBook에서는 도무지 느낄 수 없는 맛이다. 얼마 전 이북을 구입해 몇 권을 읽었다. 극대화된 휴대성과 저렴한 가격이 크게 다가왔지만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메모도 힘들고, 무게감도 없고, 디지털방식의 글자는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결국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왔다. 김무성이 <종이책 읽기를 권함>에서 밝히듯, 책은 역시 종이책으로 읽어야 제 맛이다.


송신용이 만지고 보았던 책을 지금 만지면 어떤 것일까? 케케한 냄새에 털이 일어난 종이, 까끌까끌한 촉감이 느껴질 것이다. 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종이책이 완전히 보존되기를 불가능하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책도 늙어 간다. 그러나 그곳의 정신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래서 난 아직도 종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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