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가 떨어졌다

 

제임스 미치너의 작가는 왜 쓰는가를 읽는 중이다. 이분이 누군지 정확하게 가늠하기 쉽지 않다. 훑어보기를 통해 대충 살펴보니 하버드대와 펜실베니아대를 나온 수재다. 학자겸 편집자로 소개하고 있으며, 태평양 전쟁 시 해군 소령으로 근무한 적도 있다고 한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유명하다. 이 책 <작가는 왜 쓰는가>는 죽기 전 4년 전에 쓴, 그러니까 그의 마지막 책이자 가장 노년에 쓴 책이 되는 셈이다. 지금까지 모든 능력을 발휘하여 쓴 책이리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작가가 왜 쓰는지 말하는 책이 아니다. 그저 지나온 삶에 대한 회상쯤 될 것이다. 많은 소설을 썼는데 몇 권만 번역되어 있다. 에세이 식으로 써내려간 글은 자신의 스토리와 더불어 작가들의 평을 예리하고 첨가했다. 이 분을 이해하려면 이왕주 교수의 추천의 글이 유효하다.

 

이 책을 서평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건 나중에 다 읽고 생각해 볼 일이다. 굳이 중간에 펜을 든 이유는 눈에 들어오는 한 구절 때문이다. 바로 이 구절, "읽을거리가 떨어져버렸다." 그렇다. 읽을거리가 없는 것이다. 활자중독자들에게 읽을거리의 부재는 두려움과 무료함과 지독한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탁월한 작가는 지독한 독서광이다. 미치너 역시 그랬다. 그는 작가로서의 글쓰기를 소개하는 곳보다 여행 중이나 일하는 중에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늘어놓는다.

 

그는 젊은 시절 우연하게 만났던 여성 소설가 리빙스턴 힐의 문고집 소설을 발견하고 한 권 구입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녀의 작품은 아직도 호놀룰루 서점의 한 벽면을 가득 메운 문고본 속에 살아있다. 이미 64종이 재판되었고, 앞으로 40종이 더 나올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것이 현학적인 학식보다는 솔직한 감정이 결국 승리를 거둔 것이라고 생각했다."(85) 솔직한 감정의 승리! 이보다는 멋진 표현은 없을 것 같다. 힐의 소설은 바로 그런 것이다.

 

활자중독자는 사냥꾼이다. 책을 찾아 종횡무진 활보하며 읽을거리가 없는지 눈에 독기를 품고 찾아다닌다. 미치너 역시 그런 사냥꾼이다. 심지어 폭식가이다. 식탁에 차려진 책을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모습에 기가 질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의 집은 무척 가난했다. 아주 어린 시절, 그의 말대로 하면 '알파벳을 암송하기 전에 디킨스, 새커리, 리드, 솅케비치 등의 작가들을 더 먼저 알게 되었다."(100) 논리적으로 맞지 않지만 감동적인 문장이다.

 

어떤 사기꾼 같은 세일즈맨에게 속은 이모 로라가 발자크 전집을 사게 되었는데 그에게 '그 전집은 천만금보다 더 귀중한 것이었다'고 털어 놓는다. 나의 어린 시절에 종종 이런 사기꾼들이 동네마다 돌아다니고 쫌 있어 보이는 집들은 그 책들을 월부로 구입했다. 불행히 우리 집은 똑똑한 아버지 덕에 사기꾼이 발도 들여 놓지 못했다. 나에겐 이처럼 큰 불행이 또 있을까.

 

고등학교 시절 <토지>를 읽고 난 후 10년 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책을 다시 집어 들었던 나와 비교하면 미치너의 독서량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먹으면 배설하는 것이 생리적 현상이니, 그가 탁월한 글을 많이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엄청난 독서에서 찾아 볼 수 있으리라. 어쨌든 요즘은 돈이 궁해 읽을거리가 떨어져 간다. 책을 절대 빌려 읽지 않는 고질병 때문에 읽기는 곧 돈과 직결된다. 아내를 닦달한다한들 무슨 소용인가. 결국 내 돈이 나가는 것을. 이럴 때는 누군가 책 사라고 수표 한 장 주머니에 꽂아 주고가길 신에게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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