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책이란?

 

세상의 모든 책은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다시 읽고 싶은 책이고, 다른 하나는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은 책이다. 나 같은 사람은 책을 두 번 읽기 힘들다. 아무리 중요한 책이라도 한 번이면 족하다. 그런데 두 번 아니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읽을 때 다르게 읽혀지는 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헬렌 세페로의 <내 영혼을 위한 일기쓰기>란 책이 바로 그런 류의 책이다. 언제 샀는지, 왜 샀는지 알 길이 없는 살렘 왕 멜기세덱과 같은 책이다.

 

일기쓰기에 관한 책이다. 일기, 듣기만 해도 거부감이 일어난다. 초등학생 시절 방학숙제였던 일기, 글쓰기의 재미를 몽땅 빼앗아간 도둑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일기야말로 초등학생이 가장 먼저 배워야할 것 중의 하나다. 독서와 일기야말로 어릴 적부터 몸에 깊이 배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숙제라니. 듣기만 해도 싫어지다니. 이거야 말로 가장 모순(矛盾)이 아닌가. 나 뿐 이겠는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일기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이들이 없다. 대한민국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이라면.

 

싫음은 곧 망각이며, 망각은 곧 실력이 더 이상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알게 되고, 결국 탁월한 전문가가 된다. 그런데 처음부터 쓰기 싫었느니 누가 일기쓰기에 대가가 될 것인가. 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이 책은 우리가 가장 중요하지만 잃어버린 일기쓰기에 대한 기억을 살려 낸다. 따분한 이론 서적이 아니다. 소설처럼 읽혀지고, 일상 속에서 글감을 찾아낸 글쓰기로 이어가도록 만드는 가교(架橋).

 

일기쓰기는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旅程)이다. 일기는 자기만의 독백(獨白)이며 발설(發說)이다. 언어가 아닌 글로 표현할 뿐 자기 독백과 다르지 않다. 상담사의 역할을 조언을 해주기보다 먼저 경청(傾聽)하는 사람이다. 들어주는 것이 말하는 것이다. 듣지 않으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자신이 말하려 할 때 상대방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그러니 먼저 들어주어야 말할 수 있다. 일기쓰기는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다.

 

답은 밖에 있지 않다. 안에 있다. 문제가 안에서 발생했다면 답도 여전히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친구에게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이야기하다보면 스스로 답을 찾는 이치(理致).

 

때로는 친구나 상담가 또는 영적 지도자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결국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의 핵심을 파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기야말로 그런 영적 친구요 상담가가 될 수 있다.”(59)

 

글을 통해 자신을 발설하고 객관화(客觀化) 시킴으로 자신을 직시(直視)하게 한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자신의 문제를 바로 보게 하고 바른 답을 찾게 해 준다. 글이란 참 묘한 것이다. 생각만으로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던 것들이 글로 표현되는 순간 답이 된다. 문장은 불가피학 논리적이다. 처음 시작하는 일기쓰기는 어수선하고 중구난방(衆口難防)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체계를 갖추게 되고 절제와 인내, 논리와 사유의 깊이를 더하게 된다.

 

일기를 쓰노라면, 종이에 뭔가를 적음으로써 어수선한 것들이 정리되고 우리의 삶과 주변 세상을 좀더 명확하게 분별하게 된다.”(27)

 

일기는 여기서 나간다. 섬세한 안목을 갖게 해 준다. 속도는 피상성의 폐해(弊害)로 귀결(歸結)된다. 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주변을 보는 것과 3킬로미터의 속도로 보는 것은 다르다. 깊이보고 자세히 보려면 천천히 가야하고 때론 서야하고,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후 곧바로 십자가로 가지 않았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부모와 30년을 함께 살았고, 3년의 공생애 동안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과 외로운 자들을 찾아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씀하시고, 대화하시고 논쟁하셨다. 때론 거저 주시고, 때론 목숨을 요구하는 결단을 촉구했고, 때론 거절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올랐다. 즉 이 땅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구체적인 것, 현실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우리 기독교 신앙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하나님은 창조세계의 세세한 다양성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신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형체 없는 추상적 존재로 오시지 않았다. 그분은 탄생과 사역 고난과 죽음을 통해 인성이라는 현실속으로 들어오셨다. ... 영성훈련에서 구체적인 사물에 집중하는 것은 현실을 사랑의 눈길로 오랫동안바라보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48)

 

단순하게 시작된 일기쓰기에 깊은 철학과 자기 확장의 가능성이 있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자기를 찾는 여정은 곧 하나님께 머묾이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펼치는 것이다. 일기쓰기는 이러한 부르심의 소명을 도와주는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일기는 역사다. 수년전에 읽었던 위지안의 <내가 살아갈 이유>도 결국 일기다. 암에 걸려 죽어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허투르지 않게 일기에 담았다. 책을 읽으면서 삶의 소중함을 더욱 깊에 체득했다. 


우리에겐 소중한 것이 있다. 그러나 건강할 때는 소중한줄 알면서도 소중하게 다루지 못한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일기는 이러한 오류를 잡아 준다. 진정한 가치에 시간을 투자하게 한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은 바로 이런 것이다. 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 가장 고귀한 것을 사랑하는 마음. 내가 수단이 되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도록 하는 것. 일기가 이것을 도와 준다. 난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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