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거지: 땅에서 추방된 빈민들의 이야기

 

미국 문학의 아버지란 타이틀에 걸맞게 마크 트웨인은 가장 미국적이고, 가장 미국인을 위한 소설 작가이다. 미국에서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된 톰 소여의 모험은 아직도 미국 근대 고전 소설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후속작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역시 미국을 대표할 만한 소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설 왕자와 거지는 마크 트웨인의 대표 3부작이다.

 















왕자와 거지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었지만 사실 서술이 아닌 문학적 상상으로 재창조된 허구다. 영국의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헨리 8세의 통치 말, 아들로 태어난 에드워드 6세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거지 톰 캔디와 옷을 바꿔 입고 갖가지 고생을 하게 된 이야기다. 에드워드 왕자가 찾아간 빈민굴은 당시 영국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상황이 그대로 묻어있다.

 

에드워드 왕자가 경험한 거지 소굴은 인클로저 운동으로 자신의 땅을 빼앗기고 비천한 삶을 살아가는 부랑자들의 이야기다. 조준현이 <고전으로 읽는 자본주의>에서 왕자와 거지를 땅에서 추방된 빈민들의 삶으로 해석한 것은 옳다. 한날 동일한 시간에 두 명의 남자 아이가 태어난다. 한명은 빈민굴에서 환영받지 못한 체, 한 명은 영국의 운명을 짊어지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왕자와 거지의 극적 대비로 소설은 시작한다.

 

그 집에서는 그 사내아이를 별로 반가지 않았다. .. 그런데 그 가문에서는 그 아이를 무척 반겼다. .. 마침내 아이가 태어나자 사람들은 미칠 듯 기뻐했다.”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은 다분히 정치적이며, 생물학적 이유 때문이다. 아들을 낳이 못하는 황후를 두 번이나 갈아 치웠다. 세 번째 아내에게서 극적으로 태어난 아들, 사랑할 수밖에 없었고, 온 영국민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런 빈민굴에서 태어난 톰 캔디의 출생을 아는 사람은 오직 그의 가족들뿐이었다. 옆집도 몰랐다. 그리고 그의 탄생은 골칫거리였다.

 

톰은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생각은 남달랐다. 유배당한 신부에게서 라틴어를 배우고, 신부의 책을 읽는다. 왕실의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을 갖게 되고 왕의 흉내를 내며 살아간다.

 

톰은 신부의 낡은 책들을 자주 읽었고, 신부에게 그 책의 내용을 자세해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공상에 빠지고 책을 많이 읽다 보니 톰은 조금씩 달라졌다.”

 

우연히 구걸을 하다 왕자를 만나게 된 톰, 왕자도 왕국 밖이 궁금해 톰과 옷을 바꿔 입는다. 옷은 신분이고, 정체성이고, 타자의 눈에 비친 존재를 상징했다. 결국 왕자는 거지가 되고, 거지는 왕자가 된다. 평상시 연습?을 많이 한 톰은 낯선 왕궁에서 익숙해지고, 왕자는 거지들 틈에서도 왕자의 권위를 잃지 않지만 수많은 난관에 부닥친다.

 

왕자가 어려움을 당할 때 마침 마일스 헨든이란 사람이 나타나 구해 준다. 거지가 정신이 나가 왕자인체 한다고 생각한 헨든은 왕자처럼 대해주고, 종노릇을 해 준다. 왕자는 다시 부랑자들에게 납치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부랑자들의 대화는 저속하고 음담패설이 가득하다. 또한 땅을 잃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홀로 된 이야기, 구걸하다 붙잡혀 사형을 당한 이야기 등 궁정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헨리 8세의 통치가 얼마나 악독한지를 말해준다. 증거도 없이 끊은 물에 던져지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하는 사건들이 이어진다.

 

그들에게 헨리 8세는 콧구멍으로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죽음을 불러오는 도깨비 같은 존재였다.”

 

그 좋은 머리 때문에 우린 그 여자를 잃어버렸어. 손금을 보고 또 그밖에 다른 점을 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결국에는 마녀로 낙인이 찍혔어. 법에 따라 약한 불에 천천히 굽어 죽었지.”

 

소규모 농부들이 자기 땅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먹을 것이 없게 되었지 뭐야. 그 땅을 빼앗아 양치는 목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서두에서 이 부분을 잘 지적해 주고 있다.

 

양떼들입니다. 얌전하고 먹이를 조금만 먹고 자라던 유순한 양이 이제는 무서운 식욕을 갖게 되고 사나워져 사람까지 모조리 먹어치우게 된 것 같습니다. 양떼가 지금들과 집과 도시,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있습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면 최상의, 그리고 가장 값비싼 양모(羊毛)를 산출하는 지방에서는 귀족과 지주, 심지어 성직자와 수도원장까지도 그들의 선조들이나 선임자들이 토지로부터 거두어들이던 수확에 점점 불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게으르고 안락한 생활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소유지를 모두 목장으로 바꾸고 아무도 경장하지 못하게 해서 사회에 적극적으로 해를 끼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가옥을 헐어서 전 촌락을 철거하고 있습니다.”

 

배고픈 것도 죄가 되고, 영국에서 살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처참하게 죽어가는 이들 틈 속으로 물정모르는 왕자가 끼어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왕자의 몰골은 추해지고 그의 옷은 더럽혀진다. 중간에 헨든에 의해 누더기 옷에서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다시 흙투성이에 파묻혀 엉망이 되기 일쑤다.

 

마침내 다시 왕궁에 입궁하여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해준 헨든의 재산을 되찾아주고 신분도 높여준다. 억울한 이들의 사정을 들어주는 현명하고 자비한 왕이 된다. 소설 속에서 말이다. 마트 트웨인은 왕자와 거지를 통해 비참한 사람들의 생얼을 보여준다. 그래서 때론 어린이 동화가 아닌 19금으로 처리할 판이다. 세세한 묘사를 하지 않음으로 넘어 가기는 하지만.

 

왕자와 거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그 무렵은 잔인한 시대였지만 에드워드 6세가 다스리던 기간은 특별히 자비로웠다. 이제 그와 작별하려는 마당에 그에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 사실을 명심해 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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