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다는 것의 역사


오랫만에 서면 알라딘에 들렀다. 무려 5권의 책을 단돈 8100원에 구입했다. 나머지는 모두 적립금으로 해결했다. 즐거운 하루다. 특히 엄마의 책방이 참 좋다. 네 명의 저자가 공저한 책이다. 책은 두가지 의미다. 하나는 읽고 싶어, 다른 하나는 참고하기 위해서다. 시간이 지나니 책 사는 성향도 점점 변한다. 초기에는 그저 호기심과 읽고 싶은 책만을 골랐다. 이제는 꼭 읽어야할 필독서 중심과 글쓰기 위한 자료를 우선으로 고른다. 물론 읽고 싶은 책이라는 주체를 떨치기 힘들지만 말이다. 필요한 책과 읽고 싶읜 책의 중간쯤 되는 책을 고르는게 일이다. 오늘도 여섯권의 책을 골랐다. 



<엄마의 책방>은 의외였다. 그저 책 읽기에 대한 가벼운 책쯤으로 여겼지만 읽어보니 훨씬 더 좋았다. 여자라는 존재, 딸,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수식어와 대명사를 넘어 '나'라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책 읽기는 이렇게 존재 의미를 밝히는 작업인게다.  <왜 책을 읽는가?>는 제목만 보고 샀다. 저자가 누구인지 몰랐다. 역시 좋은 책이다. 얼마 되지 않는 작은 독서에세이를 모아 놓았다. 독서에 관련된 개인의 체험이 깊이 스며있다.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다. 위대한 작가는 개인 체험에서 인류의 공유되는 이야기를 만드는 전문가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전광의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을 산 이유는 하나다. 문장력을 배우기 위해서다. 간단 명료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끄는 힘이 있다. 제임스 A. 미치너의 <작가는 왜 쓰는가>는 꾸준이 모으는 주제다. 작가, 그리고 글쓰기를 위한 수련을 위해서 말이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는 집에 있다. 아직 <일리아스>를 구입하지 못해 셋트로 맞추려 구입했다. 수천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거대서사를 다룬 멋진 이 책을 아직도 읽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당연히 구입대상 일호다. 





읽는다는 것은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하다. 읽기를 통해 내가 완성되고 변화된다. 그렇기에 읽기는 역사고, 성찰이고 존재의미다. 이미 흘러간 읽기는 여전히 내 안에 자리잡고 있고 나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기억함으로 존재하고, 존재하기에 읽는다. 이것이 진정 아름다운 '호모북커스'(인간은 책 읽는 존재)가 아닐까. 난 그렇게 믿는다. 


문자는 망각이다. 기록함으로 더이상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스티븐 로저의 <읽기의 역사>에서 알려준 읽기의 준비 단계이다. 읽는다는 것은 수용하고 받아 드리고 재해석하는 것이다. 읽기를 통해 나를 변화시킨다. 그래서일까 읽기는 항상 위험했다. 로제 샤르티에의 <읽는다는 것의 역사>는 읽기가 무엇인지 재조명한다. 지극히 사적인 장면을 들추어 낸다. 읽기는 원래 사적이다. 노마 히데키의 <한글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 일본 학자가 쓴 한글 역사다. 한글의 탄생이 가져온 위대한 변화를 추적한다. 이거 우리가 써야 되지 않는다. 시공디스커버리에서 나온 브뤼노 블라셀의 <책의 역사>는 고대로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책 이야기를 다룬다. 


















읽음으로 역사가 탄생한다. 역사는 자신의 흔적을 문자로 책에 남긴다. 오늘도 나는 읽는다는 것의 역사를 마음껏 즐거워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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