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국 소설에 대한 간단히 살펴보기


17세기 영국은 격동의 세기를 보낸다. 청교도 혁명이 일어난 후 수백년동안 지속되었던 천주교 영향에서 벗어 난다. 그러나 크롬멜의 사후 리더십의 부재로 왕정복고가 일어나 다시 구 전통으로 되돌아 간다. 헨리8세의 주도 아래 일어났던 종교개혁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명분이 없는 변화 였다. 수장령의 선언 이후는 영국은 형식적으로는 로마 카톨릭의 지배를 벗어났지만 국교회 형식 자체는 다분히 로마적이다. 이러한 성향은 왕정복고후 다시 일어 난다. 


그러나 한 번 자유를 맛보고, 신식 사상을 체험한 영국인들에게 카톨릭과 너무나 닮은 국교회는 구습 그자체였다. 영국 황실은 백성들의 반발을 예상하고 복고 초기는 강력한 물리적 강압 통치를 시도했다. 강압통치는 또다른 반란을 일으키는 법이다. 근대 문턱에 자리한 영국은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산업혁명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과학의 발달, 항해술의 진보, 시민정식의 고취 등은 구 전통에 대한 혐오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황실은 더이상 강압 정치로는 나라가 평안치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청교도의 영향이 어느정도 잊혀질 만한 시기라 안도감도 자리했다. 이러한 시기에 비국교도에 탄압이 줄어들고 관용적 정치를 시도한다. 


국가의 강압이 사그러들자 시대를 풍자하는 소설가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비국교도들이다. 대표적인 작가가 <로빈슨 크루소>를 저술한 다니엘 디포와 해악과 풍자로 국교와 황실을 비판한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다. 이들은 소설을 통해 국교회의 부패와 어리석음을 풍자한다. 특히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금서가 될 정도로 당시의 부패한 황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풍자한다. 시대의 부조리에 당당하게 맞섰든 작가들이다. 

















리처드 스틸과 조지프 애디슨 역시 <태틀러>와 <스펙테이터> 등에서 활동하면서 물오르던 시민정식을 고취 시키는 역할을 감당한다. 청교도 목사였던 리처드 스틸은 근면과 성실한 그리스도인 상을 강조하며, 금욕적이며 경건한 삶을 살아가도록 촉구했다. 그의 책 두 권의 현재 번역되어 있다. <흐트러짐>과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다. 요세프 애디슨은 리처드 스틸과 돈도한 우정관계를 유지했으며, 시인이며 극작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불행히도 그의 책은 아직 번역된 것이 없다.


그 다음으로 조목할 작가는 알렉산더 포프다. 일반 소설이 아닌 논문과 전기형식의 책을 서술한다. <머리카락의 겁탈>, <인간론> <도덕론> 등이 있다. 그는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수장령이 내려지면서 반천주고 법안으로 핍박과 고통의 시기를 보낸다. 그는 어린 시절 곱사등이란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이러한 결함이 그를 문학과 공부에 매진하도록 만들었다. 다행히 지만고에서 그의 시를 선별하면 <포프시선>으로 번역 출간했다. 영어권에서 포프의 시는 세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인용된다. 동시대 작가였던 루소와 조나선 스위프트는 포트의 시를 높게 샀다. 



















18세기 영국 문학은 탈권위적, 탈 전통적 성향이 짙다. 이러한 성향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일어난 자유와 주체 정신의 고양의 결과다. 특히 프랑스 혁명이 가져온 인간이성에대한 맹신은 20세기까지 이어진다. 중세 말기에 일어났던 철학과 과학의 발달의 결과다. 영국에서 경험주의 철학이 생겨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헨리 8세가 일으킨 수장령의 영향이다. 절대 권력을 행사했던 로마 카톨릭에서 벗어난 독립적 존재로서의 시도는 이후 일어난 청교도 혁명과 자주적 정신을 고취한 필연으로 이어진다. 18세기 영국문학은 이러한 시대적 조류의 양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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