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 - 별난 천재, 마지못해 나선 예언자 하나님의 사람 13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홍종락 옮김 / 복있는사람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C. S. Lewis 숨겨진 뒤 이야기를 읽다.


전기란 공평해야 한다. 객관화되지 않으면 한쪽으로 불가피한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 이러한 쏠림은 아부가 되고, 극단적 비판이 된다. 공정하게 보는 것이야말로 전기의 가장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일리스터 맥그라스의 루이스 전기는 최고의 공평성을 갖춘 책이라고 자부한다. 짧지 않는 시간동안 500쪽이 넘는 책을 숨을 고르며 읽어 나갔다. 마지막 책을 덮었을 때 지금까지 알아온 생소한 루이스의 모습에 약간의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고, 더 깊이 알아 행복했다. 



순전한 기독교와 예기치 못한 기쁨, 스크루페이프의 편지를 읽었다. 영광의 무게는 그야말로 무게가 느껴지는 강연이었다. 최근에 읽은 피고석의 하나님은 낯설었지만 변증가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내가 아는 루이스는 한 방향으로 편향된 듯하다. 무신론자에서 회심하여 기독교인이 된다. 그러다 기독교 변증을 시작하여 영국과 미국에서 유명해진다. 독신으로 살다나 생의 마지막 즈음에 결혼한 것.. 그 것 뿐이다.



생각지 못한 발견이다. 모어부인과의 관계, 생의 마지막의 결혼은 의외다. 너무 이른 어머니와의 사별이 모어부인과의 정서적 유착을 강제 당한 것처럼 보인다. 인간적이 이었던 루이스는 미국에서 쫓기다 싶이 영국으로 입국한 데이빗먼과 결혼한다. 사랑의 결과도 아니고, 함께 살려는 의도가 아니다. 순전히 영국에 살 수있는 법적 조치일 뿐이다. 대체로 복음주의적이고 보수적 결혼관을 지닌 루이스의 생뚱 맞은 면이다. 평생 후회하게 될 아버지와의 관계도 썩 좋지 않았다. 루이스가 루이스 다워지는데 아버지의 역할을 지대했다. 그러나 아들과 소통할 줄 몰랐던 아버지는 자신의 생각대로만 다룬다. 



글쎄 뭐랄까. 존경하는 사람의 어두운면이 까발려지는 것이 싫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공명정대하게 직면하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해야하나. 신화에서 역사로, 사건에서 일상으로의 추락처럼 다가온다. 약간의 서운함과 위로가 묘하게 교차한다. 인간은 시대를 초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시대의 문화와 정신적 흐름을 뛰어넘지 못한다. 루이스도 역사 속에 살다 간 인물이다. 


돈 때문에 걱정하고, 삶의 고단함으로 힘들어 했던 루이스. 그 가운데 기독교를 변증하고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 마치 더러운 연못에서 피어오른 때묻지 않는 연꽃처럼, 평범한 일상과 고통 속에서 세공된 그의 변증과 문학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책이 아니라면 얻어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강연이나 변증이 아닌 그의 소설의 은익된 유익들이다. 특별힌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해준 나니아 연대기 부분과 해석은 루이스의 진심과 신앙을 다시 엿보게 해 준 선물이다. 이뿐아니다. 독서와 고전의 힘, 문학과 이야기의 힘을 잘 알려 준다. 후회하지 않을만큼 치밀하고 조목조목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