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래서 산다
부산을 소개한 딱 한 권의 책을 고르라면 유승훈의 [부산은 넓다]를 고를 것이다. 지금까지 부산에 대한 책 중에 가장 탁월하고 풍성하기 때문이다. 국지전이 아닌 전면적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거의 모든 역사의 궤적을 따라가며 한 권의 책으로 풀었다. 두 번째 책은 동아대교수로 있는 강영조교수의 [부산은 항구다]을 추천한다. 항구 도시로서의 부산을 서사적으로 기술하면서 낭만을 더해준다. 세번째 책은 정길연의 [나의 살던 부산은]이다. 과거의 유물처럼 전시된 부산의 오래된 흔적을 찾아 나선 작가의 아련한 추억이 글로 풀어진다. 마지막 책은 임성원의 [미학, 부산을 거닐다]이다. 오늘은 부산을 넓다를 소개한다.
부산은 항구다. 이 문장처럼 부산을 적절하게 드러낸 말이 있을까. 물론 목포도 항구고, 마산도 항구다. 그러나 부산이 항구란 의미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항구도시 부산은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한국 근대 역사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부산과의 첫 데이트는 항구를 통해서다. 80년대 말 대를 타고 입항에 자갈치에 첫 발을 디뎠다. 그 때의 설렘과 흥분은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깡촌에서 올라와 한국 2의 도시 부산을 밟았으니 무슨 말로 형용이 될까. 그것도 부산의 최고의 중심지인 자갈치와 남포동, 국제시장을 대면했으니 말이다.
부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여러 단어들이 존재한다. 항구, 산동네, 가라오케, 자갈치, 해수욕장, 국제시장,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복잡한 도로 등 다른 도시에서는 생각도 못할 단어들이 즐비하다. 거기에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찾아낸 영도다리 자살 사건이나, 고관의 일본 사람들 이야기, 여객선이 아닌 연락선으로 명명된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관부선까지 언급하면 부산은 그야말로 한국의 근대를 받아낸 주체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해양성, 개방성, 민중성(50쪽)을 부산항의 인문정신으로 꼽은 저자의 옳은 판단은 부산은 잘 드러내 준다. 항구도시이니 해양성을 빼고 부산을 말할 수 없을 터이고, 일제강점기와 육이오를 통해 외부인들의 출입이 수시로 일어나 개방성은 절로 이루어졌고, 피난민들에 의해 형성된 서민중심의 도시가 바로 부산이다. 부산의 특성은 곧 한국발전의 시초가 된 해외수출의 발판과 저력을 만들어 낸다.
"항구의 심장박동 소리와 산동네의 궁핍함을 끌어안은 도시" 부제로 달린 문구가 마음을 찡하게 한다. 영도에 살 때는 밤이면 가끔씩 북항에서 출항하는 상선의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뿌~웅! 처음엔 무슨 소린가 싶어 궁금했지만 이네 감 잡고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부산역에서 잠깐 만 시간 내어 산 쪽으로 돌아가면 초량동과 수정동을 만났다. 십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서 산동네가 시작 된다. 가파르고 좁은 도로를 비좁고 올라가면 어느새 수정동 산복도로를 만난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부산항을 내려다보면 옛부산의 풍경은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부산은 참 특이하다. 서울은 경관이 좋은 곳에 부자들이 살지만 부산은 반대다. 경관이 좋은 모두 산동네고 판자촌이다. 산이 많고 평지가 적은 부산은 평지에 대한 집착과 부러움이 있다. 평지에 살면 부자인 셈이다. 부산에 오래 살다보니 자전거타고 다니는 게 꿈이다. 그만큼 자전거 탈 수 있는 평지가 희소하다. 그러니 평지에 세워진 아파트나 주택은 프리미엄이 붙는다. 아이러니하게 말이다.
읽는 재미가 소소하다. 추억이 이슬비처럼 소리 없이 밀려온다. 부산에 산지 어언 22년. 부산에서 대학도 다니고, 결혼도하고,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블로그 이름도 부산은 항구다로 정하고 부산에 좀 더 천착했다. 이 책은 그러한 나의 마음을 읽기나 한 듯 그동안의 부산 이야기를 재미나 이야기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찾아낸 사진과 사건을 잘 정리해 엮었다.
아직 부산에 대해 부족하다. 부산역도 없고, 40계단 이야기도 없고, 부산과 영화 이야기도 없다. 하단과 동아대 앞 추억도 다루지 못했다. 신평 이주민 이야기도 없다. 한 책에 담을 수는 없었으리라. 다음 책을 기대해 본다.
그나저나 내친김에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나 들어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