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중독자와 활자 중독자의 공통점
손이 떨린다. 입이 바짝 탄다. 금단 현상이다. 손에 아무 것도 없다.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읽을거리를 망각했다. 무턱대고 앉아 있었다. 일 분, 이 분……. 고요한 시골 마을에 어디선가 째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인다. 몽환(夢幻)현상이다. 꿈속인 듯하다. 눈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멍해지는 느낌. 지우고 싶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편의점이 보인다. 들어갔다. 없다. 환장할. 편의점에 신문도 없다니. 아무리 시골이라도 이건 너무한 거 아냐. 마땅히 갈 곳도 없다. 이런 한 적한 곳에 무슨 읽을거리가 있단 말인가. 화가 치밀었다.
고딩시절 친구들은 꼴초들 이었다. 어느 날 돈이 다 떨어져 이틀 동안 담배를 피우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란다. 속으로 지랄! 했다. 도저히 못 참겠다며 거리로 나간다. 뭐하려고? 꽁초라도 주워 피우려고. 저기 미칬나? 뒤따라갔다. 몇 개 줍더니 ‘에이’하며 던진다. 욕을 한다. ‘염병! 조금 남겨두고 버릴 일이지. 끝까지 다 빨았네!’ 몇 발자국 더 가더니 얼굴이 환해진다. 찾았다. 자취방으로 달려 들어와 라이터에 불을 땡긴다. ‘퓨~~~ 좋다.’ 맛나게도 피운다. 이십년이 더 지난 일인데 생생하다. 이젠 내가 그러고 있다. 그 잘난 활자 중독 때문에…….
밤새 읽었다. 김영하의 장편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공부를 좋아하는 지라 '기억법'이란 단어에 꽂혔다. 뭔가 있으리라. 메모하는 법이라든지, 기억하지 쉬운 법이라든지……. 하여튼 그런 곱상한 생각으로 한 장 한 장 읽어 나갔다. 50쪽 정도를 읽어 나가면서 손이 떨렸다. 공포의 떨림이다. 금단현상 이상이다. '참을 수 없는 살인의 가벼움!' 바로 그거였다. 이게 무슨 소설이란 말인가. 괴기 영화지. 왜 19금의 딱지가 붙지 않았는지 알 길이 없다.
너 기가 막힌 건, 마지막 반전. 존재는 곧 기억이란 폭주를 이어가다 마지막 폭발해 버리는 느낌이랄까. 뭐야 이건??? 물음표를 열개를 달아야 속이 시원한 소설이다. 실망이다. 그리고 반했다. 김영하 라는 사람, 싫으면서도 눈이 간다. 그거 있지 않는가. 초딩이 여자친구에게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눈은 떼지 못하는. 사랑과 시기의 변증학, 아니.. 흠~~~ 아 알맞은 단어가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튼 난 이 책을 읽고 공부하기 위해 읽지 말라고 충고한다. 갑자기 칼을 들도 싶어질지 모르니 말이다.
'냉정', 아니다. 가슴이 없다. 그러다 살인마 박주태에게서 은희를 지키기 위해 인조심장을 삽입한다.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한다. 기억의 끈으로 ‘은희’를 단단히 묶는다. 은희 엄마가 죽으면서 ‘은희는 죽이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잊으면 안 되는 기억이다. 그것조차 망상이었다. 은희는 이미 자신의 손에 죽었고, 양녀로 들인 은희는 백골이다. 재가 요양보호사. 그녀도 은희다. 처음은 ‘죄와 벌’을 쓴 도스토예프스키를 놀린다고 믿었다. 살인자에게 양심도 없단 말인가. 의문의 끈이 끊어지지 않고 자꾸 읽기를 방해한다. ‘아무리 치매 환자라도 감정은 남아있대.’ 은희는 애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김병수는 마지막 문장을 되뇌인다. ‘감정은 남아있대. 감정은 남아있대.’
마지막은 그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그의 망상은 자신이 죽인 김씨 여인과 어린 아이였던 은희에대한 죄책감 때문에 일어났다. 그는 이미 그곳에서 죽었고,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치매는 신의 벌이다. 살인에 대한…….
죽이고 싶어 안달이다. 살인을 하지 못하니 금단 현상이 일어난다. 손이 떨리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중독자들의 특징이다. 그럼 나도 살인마와 동료가 되는가? 아니겠지? 나는 순진한 활자중독자일 뿐이니. 그렇게 생각하자. 읽기는 망각의 치료수단이 아니다. 존재 의미다.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 읽고 있음이 좋은 까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