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세상의 예쁜 것'에서 건져 올린 문장들


책을 읽다보면 가슴이 저미도록 마음을 후벼파는 문장이 있다. 얼마 전에도 박완서 선생의 산문집일 읽다가 보석을 하나 캐냈다. 고이담아 노트에 담아 두었다. 두고두고 생각해 볼 문장이기에..


박완서 선생님의 <세상에 예쁜 것>이란 산문집에 나오는 문장이다.


아무리 어두운 기억도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르는 법이다. 


 박완서 선생의 글은 그냥 읽고 지나치기에는 서러울 만큼의 시대적 공감이 일어난다. 아니 실존적 공감이다.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남직한 깊은 울림이 문장에 담아 둔 탓이다. 우연히 문장이 생각났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한 문장에는 세월을 견뎌온 인내와 성찰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단순한 한 문장도 무게가 실리는 법이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 준 것이다.


지울 수 없었던 남편에 대한 기억을 시간이 치유해 주었다고 담백하게 털어 놓는 저 심정은 무엇일까? 그래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바로 저런 것을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른다. 


상상력은 사랑이지 증오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의 치 떨리는 경험이 원경으로 물러나면서 증오가 연민으로, 복수심이 참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소설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아주 잊지 않았기 때문에 쓸 수 있었고, 그 후 오늘날까지 꾸준이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쓰지 않고 보통으로 평범하게 산동안이 길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말에 태어난 해방과 전쟁, 그리고 새마을 운동과 민주화 운동, 살아있는 한국의 역사이기도 한 선생님이기에 뼈에 사무치록 한 스러운 삶이 비껴나가지 못했다. 모두가 그러했을 터이지만 살아있는 문장으로 드러나는 증언들은 역동적이다. 추억은 아름답지 않던가. 현재는 늘 불만이지만... 그러나 추억에도 티는 있고, 지우고 싶은 세월도 있는 법이다. 박완서 선생은 악몽을 지우지 않고 극복함으로 추억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마치 전역한 군인의 영광의 상처처럼 말이다. 


병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일면 활자중독이라는 병에 걸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경험도 있다. 


6.25전쟁 중 한 달 남짓을 파주 쪽 산골에 숨어서 지낸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종이와 활자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그 시간을 견디기가 얼마나 고통스러 운지 곧 미쳐버릴 것 같았다. 마침 다 떨어진 벽지를 군데군데 땜질한 신문지 활자가 보였다. 나는 그 얼마 안 되는 활자를 읽고 또 읽고 나중에는 반닫이 위에 올라서서 천정을 땜질한 활자까지 읽었다. 언제 적 신문인지 모를 철 지난 이야기지만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그게 내 정신이 미치지 않을 만큼의 통풍 역할을 해주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아픔이 있다. 아픔이 곯아 썩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영광의 상처가 되는 사람도 있다. 지독한 고통의 세월을 연마함으로 광채가 나는 보석이 되어야 한다. 다이몬드라할지라도 세공사의 손길에 연마 되지 않으면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월이 연마하기를 원한다면 기꺼이 세월의 손에 자신의 아픔을 내려 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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