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힘들 것
자신을 보는 것이다. 창조주를 두 개의 눈을 만들었다. 하나의 눈만으로는 거리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눈이 두 개 이상일 때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외눈박이 거인 설화 등을 보며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이상한 그림은 그리지 말도록…….
문제는 눈이 밖을 보도록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눈은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시각이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대부분이다. 그만큼 시각에 의존하는 부분이 크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자신을 보는 것보다 남을 보는 것에 익숙해있다. 아니 자신을 거의 볼 줄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외부의 물체를 보고 판단하고, 가늠한다. 그런데 판단의 기준과 해석의 잣대를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들어보자. 길을 가다 나무를 발견하고, '왜 나무가 작지'라고 생각하는 반면에 옆 사람은 '나무가 정말 크다'고 생각한다. 나무는 그대로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판단기준은 다른 것이다. 작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동안 나무는 의례히 크다는 선입견과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도 모르는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반대일 것이다.
작다고 말하는 사람이 옆 사람에게 '저 나무는 작은데 왜 크다고 말합니까? 당신의 생각을 고치세요.'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옆 사람은 '저 나무는 작은 게 아니고 큽니다.'라고 대꾸할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외부의 물건을 보기는 쉬워도 자신을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양서와 저질의 책의 차이는 바로 이 차이다. 양서는 자신을 보도록 권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살피고 자신을 돌보라고 말한다. 모든 문제는 자신 안에 있으니 자신을 고치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질의 책은 모든 문제는 환경, 외부에 있다고 말한다. 잘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 바로 그런 뜻이다.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정약용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너희는 아무쪼록 이점을 생각하여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라. 대학의 성의장과 중용의 성신장을 써서 벽에 걸어 놓아라.' 자신을 세우는 것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공부이며 진정한 공부인 것이다.
자신을 살피자. 남을 핑계하지 말자. 이것이 나를 바로 세우는 가장 위대한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