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생앙쥐도 고양이를 문다.
출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장치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안네 프랑크, 16살에 나치의 수용소에서 티푸스에 걸려 죽은 여린 천재소녀다. 그녀에게 천재 소녀란 별명이 붙은 이유는 그녀가 죽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면 그렇게 까지 치켜 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평범하게 그려내 그녀의 글을 읽고 있노라니 출구 없는 나는 사치스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난 너무 행복한 놈이다.
이번에 구입한 책은 지금까지의 축약본이 아닌 무삭제 완역판이다. 축약본은 출판사에서 의도적으로 축약한 것이 아니라 안네의 유일한 가족인 안나 아버지에 의하여 정치적인 의도로 축약된 것이다. 그곳에는 안네의 사소하고 평범한 이야기가 일부 편집되었고, 특히 그의 사춘기의 사랑과 애증의 고백들이 편집되어 잘려 나갔다.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소지는 충분한 축약본이다.
안네는 평범한 일기 형식이 아니라 가상의 키티라는 인물을 만들어 그와 대화하고 편지쓰는 형식을 취했다.
당신에게라면 내 마음속의 비밀들을 모두 다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발 내 마음의 지주가 되어 나를 격려해주세요.
1942년 6월 12일
생각해보면 나 같은 여자 아이가 일기를 쓴다는 것은 참 희한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써본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열세 살 된 여학생 따위가 마음속을 털어놓은 일기에 흥미를 느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쓰고 싶습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고 마음 속에 묻어 두었던 것을 몽땅 털어놓고 싶습니다.
1942년 6월 20일 토요일 / 나는 왜 외톨이라고 느끼는 걸까?
그녀의 추측은 틀렸다.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는 열세 살 소녀의 일기는 수억의 사람들이 읽고 있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을 거라는 그녀의 사소한 일상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렇다. 출구도 없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꽉막힌 일상을 소소하게 기록하게 나갔다. 그게 무슨 문학작품이겠는가 싶으면서도 출구 없는 그녀의 일상을 통해 출구 없는 우리의 삶을 보게 된다. 그녀는 내가 되고 그녀의 은신처는 출구 없는 나의 삶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려움이 아닌 희망을 찾아가는 작은 기록을 축적해 가는 그녀는 통해 오늘도 희망을 찾아 삶을 축적하는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