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또는 읽기의 역사


책을 빼고 역사를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읽기의 역사를 통해 시대를 읽을 수 있다.

역사는 기록된 책의 역사이다. 신화와 역사를 가르는 기준은 '기록'되어 있느냐 '기록' 되어 있지 않느냐이다. 왜 그러한 기준을 세웠는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증인으로서의 책'을 적절하게 설명해준 피셔의 <읽기의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결국 역사란 분명한 증거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역사학자들의 고집에서 나온 편견일 수 있다. 


그렇담. 기록이 왜곡되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칼이 아닌 글로 세상을 움직이는 현대에서 왜곡과 언론조작이야말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증거는 언제든지 조작될 수 있는 일이다. 의도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조작되기도 하는 것이다. <잡지, 시대를 철하다>에서 안재성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하여 해방 이후의 역사를 보수진보의 양 극단과 중도적 입장의 잡지들을 찾아가며 새롭게 읽어 보라고 말한다.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말일 것이다. 읽기는 곧 역사 해석이다.

















일본의 근대 읽기를 논하는 <독서 국민의 탄생>, 천재 화가들의 그림에서 빠지지 않았던 책 읽는 여성들의 모습.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유했을까?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를 통해 천재 화가들의 심리를 탐험한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는 생각보다 철학적이고 실용적이다. 쉽게 내려 놓지 못한 책이다. 


나가미네 시네토시는 <독서국민의 탄생>에서 일본의 근대화와 독서국민의 탄생을 같은 형제로 분류한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의 근대적 사상이 도입될 때 독서는 새로운 면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메이시 유신을 이끌었던 사람들은 20대의 젊은 또는 30대 초반의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독서'가 근대적 정신을 배양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겼다. 이에 더 나 아가 출퇴근의 이동 거리 확장이 일어나면서 독서는 더욱 국민들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전에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하철 풍경을 보여주면서 독서하는 국민 모습을 찬양했다. 그러나 이러한 국민독서는 가볍고 자기계발 도서의 확산을 만들어 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지하철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의 대량생산이 곧 일본의 근대화와 독서국민의 특징이다.


슈테만 볼만은 근대가 시작될 즈음 천재화가들을 매료시킨 한 장면을 잡아 냈다. 여자들의 책 읽는 모습니다. 왜 이것이 예술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그것은 읽기의 역사에서 일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것은 혁명적 변환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자가 아닌 여자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남성중심의 역사에 위험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고 기존의 편견을 뒤집기 좋아하는 예술가들에게 책 읽는 여자의 모습이야말로 그들의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의 이상향이었다.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진 장면인 것이다. 독서의 계절이 되면 의례이 보여주는 책 읽는 여자 동상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독서의 혁명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는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현대 여성의 평범한 독서풍경이다.















'오래된 새책' 참 맘에드는 제목이다. 새책 주의자인 박균호는 절판된 책에 찾아가는 사연을 담담하게 그려 낸다. 왜 책이 절판되는 것일까? 사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점에서 안타까워 한다. 우리나라는 초판만 발행된 후 절판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워낙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이기도 하겠지만, 나라 자체의 독서시장도 작은 탓이다. 읽기의 역사는 이곳에서 종말을 고할 것인가?





왜 알라딘에는 비공개 저장이 없을까 쓰다만 글을 놓고 나간다는 것은 화장실에서 뒤를 닦지 않고 나가는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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