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진화론


기독교와 진화론은 서로 원수지간일까? 기독교는 단번에 신에의해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진화론은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이곳까지 왔다고 주장한다. 어느 것이 옳을까? 


2009년에 번역 발행된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의 저자는 영국 성공회 목사이며, 옥스퍼드 대학에서 생물학을 연구한 석학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초기 루터에의해 시작된 개신교가 반과학주의가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한 생각은 근래에 일어난 반기독교적 정서 때문에 일어난 오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잘아는 갈릴레이 재판은 개신교가 아닌 천주교이 행한 것이며, 반과학주의를 보여주는 측면이다. 천주교가 그렇게 한 이유는 지동설이 반 성경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보면, 천주교가 갈릴레이를 재판한 이유는 그들의 기득권을 잃어 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천동설은 모든 우주의 중심을 지구로 말하며, 그 지구 안에 인간이 가장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뒷받침 해 준다. 그러나 지동설이 된다면, 지구는 태양의 위성에 불과하고 그 안에 있는 인간이란 존재도 부속물에 불과한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천주교회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다는 생각에서였다. 우주 중심에 지구, 지구 중심에 인간, 모든 인간 중심에 교회, 교회 중심에 사제들, 사제들 중심에 교황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칼빈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개혁파 개신교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성속을 분리했던 카톨릭에 반기를 들고 성이 곧 속이라는 일치론적  관점을 견지했다. 칼빈은 소명론을 통해 세상의 직업은 더럽거나 타락한 것이 아니라 곧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직업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인식이 대두되었고, 특별히 상업에 종사했던 중산층 시민들은 칼빈의 주장에 매료되었다. 또한 개신교는 친과학주의를 주장했고, 당시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기독교인들이었다. 지동설의 완전한 성립은 개신교도였던 케플러에 의해 증명 되었다.


케플러는 칼빈의 영향을 받은 개혁파 개신교도였고, 과학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파스칼과 뉴턴 등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막스 베버는 칼빈에 의해 주창된 직업론과 친과학주의가 근대를 열열다고 주장한다. 특히 칼빈의 소명론은 근대정신을 대변하는 자본주의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전통적인 학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난다. 18세기는 혁명의 시대이다. 프랑스 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등의 기존의 지반을 흔들어대는 거대학 혁명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이러한 혁명의 배경 속에는 중산층의 성장과 합리주의의 성장 등이 맞물려 있다. 18세기는 또한 관용이 꽃피운 시대이기도 하다. 그동안 종교전쟁으로 인해 유럽을 피로 물들었고, 정신은 피폐해졌고, 국가의 재정은 바닥나 있었다. 직설적인 표현을 하자면 '전쟁에 질렸다.'는 것이다. 이제 그만 싸우고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영국에서는 그동안 '경험론'철학이 성장하면서 산업혁명과 만나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산업혁명의 이면에는 자연과학의 발달과 생물학의 진보가 일어나고 있었다. 천체학에서 지동설과 같은 기존체제에 대한 반동이 일어났다면, 생물학에서는 특별한 진전이 없었지만 1600년경 얀센이 발견한 현미경을 통해 새로운 마이크로의 세계로의 탐험이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 세기가 흘러가면 현실적인 열매들이 나타나는데 그주의 하나가1859년 다윈이 발표햔 진화론이다. 진화론은 그동안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인간존재에 대한 특권에 의문을 제기했고, 결국 지동설보다 더 위험한 이론이 되었다.














우리는 역사를 보면서 과학의 역사는 기독교의 친구이다가 원수로 돌변해 간다는 느낌이 든다. 교회는 자신이 키워준 과학이 자라면서 자신을 배신하며 도망치다 오히려 공격하는 존재로 보여진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창조론과 같은 이론들이 도전을 받으며, 인간에 대한 도전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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