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스타일> 그리고 그에 대한 잡상


최재천 교수를 알게 된지는 오래 전은 아니다. 불과 넉달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처음 최교수를 알게 된 것은 <왕땅 없는 곤충학교>을 읽게 되면서이다. 그곳에 최재천 감수라고 적혀져 있었다. 그리고 그가 동물학쪽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는  '감'을 잡았다. 중국의 우샹민이 지은 이 시리즈는 곤충들이 벌이는 기상 천외한 이야기를 학교라는 곳으로 불러들여 아이들의 일상에서 같이 뒹굴게 하는 재미를 준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최재천 스타일을 읽게 되었다. 책을 집어들기 시작한지 하루 만에 다 읽어버린 가벼운? 책이다.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고 최교수가 읽은 책들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과 통섭을 추구하는 성향을 그대로 보여준 책이다. 최재천 교수는 교회에 다닌다. 그러나 진화를 믿는다. 참으로 이상한 스타일이다. 그는 <최재천 스타일>에서 자신이 교회에 갔을 때 교인들이 반응하는 세 가지를 이렇게 이야기 한다.

"첫 번째는 안됐다는 반응,

두번째는 언젠가는 (예수를) 영접하셔야죠 라는 반응

세 번째는 이런 이상한 게 교회에 왜 왔나? 라는 반응"이다.

그만큼 진화를 믿는 동물학자가 창조를 신앙하는 교회에 나오기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받아 들이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 이 책은 '자연' Nature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 책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창조를 믿지만 자연과 동물을 통해 사람이 배워야 할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중세적 종교관은 성속의 분리로 인하여 자연은 더럽고 영의 세계는 거룩하고 아름답다는 잘못된 이원론적 사고를 배웠다. 이러한 이원론적 사고는 중세보다 더 깊은 뿌리를 가진 고대헬라철학에서 온 것들이다. 중세가 그러한 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은 중세신학자체가 헬라철학의 이원론을 그대로 수용한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시 기독교나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은 영육의 이원론이 아닌 일체설을 주장한다. 몸과 영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이며, 기독교의 부활은 몸의 부활이지 영의 부활이 아니다. 그만큼 중세과 근대를 넘어오면서 기독교는 이원론적 사고에 변질 되었고 왜곡 되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러한 이원론적 변질은 종교개혁 이후 제국주의 팽창과 민족 우월주의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실수도 범했다. 노예제도나, 히틀러의 독일민족 우월사상, 일본의 황국신민 등은 모두 잘못된 이론이 만든 변질된 사상들이다.  최교수는 인간의 교만을 버리고 자연의 일부로서, 아니 자연과 공생하는 호모 심비우스로서의 인간을 생각해야 할 때 라고 주장한다. 그가 주장하는 <통섭> 이론 역시 공생하는 인간의 이론이다.
















이 책은 또한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인 최재천 교수는 1995년을 시작으로 벌써 40여권이 넘는 책을 쓰고 있으며, 수많은 글을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하고 있다. 한 마디로 글쟁이 과학자인 셈이다. 그는 어릴 적 세계지도를 천장에 붙여 놓고 자기 전 항상 지구를 돌아 다니는 상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다윈의 책을 접하면서 꿈의 첫발을 딛기 시작한다. 전국의 고등학교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는 최교수는 학생들에게 '방황하되 방탕하지는 말라'고 조언한다. 


특별히 최교수는 통섭학자로 알려져 있고, 스스로 통섭학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얼마전 최교수는 본인의 스승이기도한 하버드의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했다. 통섭은 한마디로 모든 학문을 아우른다는 말이다. 

지식은 단편적이어서는 안된다. 한 분야만을 전문으로 한다고해서 그가 진정으로 아는 것은 아니다. 지식은 통합 되어야 하고, 통섭될 때 진정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과 과학이 불리 될 수 없고, 과학과 사회학이 담을 쌓아서는 안된다. 서로 생각하고 서로 고민하고 서로 의논하고 서로 교류하며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동물학과 식물학이 다르지 않고, 식물학과 인간학이 다르지 않듯이 말이다. 통섭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통섭의 삶이기 때문이다. 








1999년 발간한 <개미제국의 발견>은 최교수의 주요 연구대상?인 개미를 연구한 책으로 우리나라의 수백종에 달하는 개미를 재미나게 풀어낸 책이다. 최교수는 남한에서만 개미의 종류가 135종이 된다고 한다. 영국 전역 개미종이 40종에 불과한 것에 비하연 우리나라의 개미가 얼마나 많은지를 잘 보여준다. 최교수의 강점은 단지 자연과학에 관련된 글쓰기에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섭학자답게 그는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에서 인간 동물의 아름다운 조우를 멋지게 그려내고 있고, EBS에서 강의한 것을 책으로 엮은 <호모 심비우스>에서도 역시 인간다움을 말하다. 이뿐아니라 <과학 종교 윤리의 대화>라를 책을 통해 진정한 통섭의 원리를 찾아간다. 


















최교수는 <최재천 스타일>에서 많은 책을 소개하면서 특별히 제인구달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보여준다. 제인구달은 독학으로 영국 최고 대학인 켐브릿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여성이다.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추구하며 동물이 결코 인간이 무시해도 되는 존재가 아님을 말한다. 
















최재천 교수의 또 하나의 위대한 스승이 있다면 단연코 찰스 다윈이다. 사실 최교수가 처음 동물들에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찰스 다윈이 쓴 <비글호 항해기>였다. 찰스 다윈은 '자연선택설'을 주장함으로 인간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를 통해 이루어진 존재임을 주장했다. 당시 국교도의 강력한 시기에 찰스 다윈의 이러한 주장은 가히 폭발적이었고 많은 칭찬을 비난을 동시에 받아야 했다. 찰스 다윈의 <종의기원>은 정글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영국인들에게 어쩌면 당연하게 받여들여진 이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제국주를 팽창하는 아주 중요한 이론적 뒷받침이 되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단순히 종교적으로만 본다면 불가능했을 이론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진화론 속에 숨겨진 오직 자연선택된 '영국'만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또다른 병폐를 낳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최교수는 그러한 역사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연선택설'을 말한다. 통섭학자로서의 이 부분을 상당히 간과하고 있다는 점은 많이 아쉽다. 인문학을 역사적 측면에서 고려하는 것은 어떨까? 아직 살아있는 그리고 유명한 동료가 있다면 그는 단연코 리차드 도킨스를 언급한다. 그리고 그가 쓴 책들을 비중있게 다룬다.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은 그의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또 하나의 책을 언급하자면 최교수 말대로 한다면 자신을 방황에서 건져준 책이기도 한 자크모노의 <우연고 필연>이란 책이다. 자기계발로서의 책에서는 아트 마크먼의 <스마트 싱킹>을 추천한다. 스마트시대의 일종의 마음 설명서인 이 책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생각의 방법을 잘 설명해 준다. 최교수의 평을 직접 인용해 보자.

"저자는 기왕에 좋은 습관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과감히 바꾸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습관이라는 게 두뇌의 속성상 일당 형성되면 바꾸기 정말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습관을 일으키는 요인을 제거하는 게 첫 단계라고 말한다. ... 그래서 저자는 습관일기라도 쓰라고 권유한다. 습관을 만들어내는 마음 기계의 작동법을 잘 활용하자는 말이다."


최교수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많은 일들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또학 후학들에게 주어진 과제로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직 풀어야할 숙제가 많은 자연이다. 끝없이 정진하고 전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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