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부르는 대화, 행복을 부르는 대화


지금까지 철학사를 보면 15세기 이후 더 정확하게는 르네 데까르트 이후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고 믿고 확신해왔다. 18세기에 꽃을 피훈 계몽주의야말로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이유 때문에 '신'의 위치에 올려 놓았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일까?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이유는 헬라철학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유적 이유가 있다. 그러나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인간의 이성에 대한 절대신뢰에 흠이 가기 시작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들이 사소한 이유 때문에 서로 죽이고 잔인한 폭행과 전쟁을 끊임없이 저질렀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에 대한 의심은 결국 회의로 돌아서고 말았다. 이것인 실존주의 시작이다. 인간에 대한 실망. 이것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답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답에 결론을 내리게 된다.















21세기로 넘어 오면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발견들이 여러곳에서 시작되었다. 철학, 교육, 생물학, 사회학 등등에서 .... 즉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점, 또한 이성은 감정보다 우선순위에서 뒤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예를들면 이런 식이다. 자신에게 욕을 먹이는 직장 상사에게 부하직원은 매사에 불만이고 불평이다. 부하직원은 상사의 모든 것이 싫고 미운 것이다. 그러나 상가 아빠인 아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전혀 다르게 평가할 것이다. 동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아빠는 아들에게 잘해줄 것이니 아들은 좋게 평가하는 것이다.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면 동일한 판단을 해야하지 않을까? 이것은 인간이 이성적인 사고만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현대의 뇌과학자들은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감성적인 존재라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은 외부로오는 정보를 뇌피질을 통해 저장하게 되는데, 들어오는 정보들은 후두엽에 위치한 해마를 통해 저장되었다가 다시 대뇌피질로 옮겨 갑니다. 해마는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에 해당하고 생존에 관련된 곳이다. 편도체는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편도체는 생존과 감정을 관장하기 때문에 수용되는 정보가 생존에 관련된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감정적으로 처리하게 된다. 즉 길을 가다 앞에 사자를 만난다. 새로운 정보가 후두엽의 해마를 통해 들어오면 편도체는 이것을 서술기억을 통해 해석한다. 사자는 사람을 죽이기 때문에 살기 위해 운동피질에 명령을 내린다. 도망가라는 신호다. 아주 간단한 과정이지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즉 인간은 정보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공격하느냐 편이 뒤어주느냐에 대한 적군과 아군으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입수되는 정보가 자신의 생존과 관련되어 해석한다는 것이다. 정보가 나를 해하는 것이라면 도피와 방어, 공격등을 하게 될 것이고, 나를 도와주려한다면 절대적 수용으로 받아들이고 미소를 지을 것이다.


이것을 대화로 이어가보자. 상대방이 나를 공격하는 말을 한다면 나는 대화를 회피하든지, 반격을 하게 될 것이다. 


"당신 어제 와이셔츠 빨아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했어? 입고갈 와이셔츠가 없쟌아!"

도피의 대화

"어? 그래 미안... 어제는 내가 너무 바빠서 잊어 먹은 것 같아."

공격의 대화(변명)

"뭐라고 아침부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바쁘면 잊을 수도 있지."

공격의 대화(경멸)

"돈도 지꼬리만하게 벌어오면서 해 달라는 건 많네!"


출근하는 가정의 분위기가 결코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은 감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먼저 감정읽기를 해주어야 한다.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결국 상대방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행위나 다름 없는 것이다.


세계에서 이혼율이 가장 높다는 미국(지금은 한군)에서 존 가트맨 박사는 3천쌍이 넘는 부부를 연구하면서 부부간의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부부간의 대화를 들어보면 5년 후에 이혼을 할 것인지, 행복하게 될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적중율이 무려 95%나 되니 작은 대화법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 지 알 수 있다. 

이혼하는 부부들의 대화 속에는 네 가지의 대화법이 있다고 한다. 

비난 Criticism

경멸 Contempt

방어∙반격 Defensiveness

도피(담쌓기) Stonewalling















비난하고 공격하고 경멸하는 대화는 결국 자신을 죽이는 대화법이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를 공격해 달라'는 전쟁선포인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누구로부터 비난이나 공격을 받으면 편도체가 활성화 되고, 아드레날린 등의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아드레날린은 생존을 위한 호르몬이기 때문에 이성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영항을 받지 않고 편도체가 속한 후두엽에 영향을 주며, 심장박동수와 혈압을 높여주고, 근육에 피가 몰리게 한다. 즉 싸움을 잘하도록 뇌가 배려?를 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전쟁이 선포되면 국가는 복지나 교육이 아닌 전쟁을 위해 비상체제로 변하는 것과 동일하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은 왜 그렇게 바보 같아!

당신하고 있는 것 자체가 싫어!


이러한 비판과 경멸의 대화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분노하게 하고, 감정적 자극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서로를 비판하는 대화는 몸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결혼만족에서 높은 부부와 불만족한 부부를 조사해본 결과 면역세포와 행복을 느끼게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수차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부부간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사소한 대화의 법칙이지만 이제부터 서로를 세워지고 공감해주는 대화를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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