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서재, 그들의 정체는?
그들이 의도하든 하지 않든 대체로 유명한 사람들은에게는 서재가 있다. 요즘 가장 뜨는 안철수 그에게도 서재가 있다. [안철수의 서재]가 그것이다.
안철수의 서재가 뜨는 이유는 분명 그가 유명해진 탓이고 대선으로 인해 그에게 많은 과심이 몰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재라는 특유의 관련어가 흥행 코드가 된 이유는 그가 살아온 여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의사, 컴퓨터, 박사, 교수 등등의 성공 키워드가 서재라는 단어로 집약 가능한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의 서재에 서운한 느낌은 그가 학자다움의 느낌 아니라 혁명적이고 진보적인 정치색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고 내가 그의 정치색을 싫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학자다움이 그의 서재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자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최재천! 생물학으로 유명하다. 그는 몇 달전 통섭의 식탁을 통해 전문분야를 넘어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을 선보였다. 이분에게는 서재라는 이름이 붙여져도 고개가 끄덕여 지고 학자다움이 느껴진다. 학문적으로 꿈을 이미지로 보여주는 탁월한 분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꿈을, 젊은이들에게는 도전을, 성인들에게는 공감을 주는 분이다.
이런 분의 서재가 맘에 든다.
이건희, 삼성, 성공, 경영, 혁신, 휴대폰..... 부와 명예를 함께 쥔 시대의 모델이다. 그러나 이분에게 서재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이 타당할까? 내용이야 어떻든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독서에도 양식을 위한 것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수단화된 독서를 통해 정보를 탐하고, 성공을 욕망하는 독서도 분명 있기는 있다. 이분의 서재에서 나는 느낌은 이기적 욕망으로 가득찬 느낌이다. 영혼이 소화불량에 걸려 힘들어하는 그런 느낌이다. 성공햇으니 뭐라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서재라는 제목이 붙는 건 왠지 서운하다.
번약가에도 서재가 필요하다. 한 단어를 번역하는데 수십년이 걸리기도하고, 수백권의 책을 섭력하고서야 겨우 잉크를 찍기도 한다. 그만큼 번역은 반역과 재창조의 동전양면과 같은 것이다.
이분에게 서재는 고달픈 인생의 여정을 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번역가... 달콤하면서도 서글픈 직업이다. 자신의 책도 아니면서 번역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은 아니다. 아니 명예로운 일이다. 저자보다 못한 위치에서 저자를 충분히 드러내야 하니 말이다. 번역가들은 머릿말이나 후기에 모든 오역은 역자의 몫이라고 겸손하게 고백해야 한다. 그래서 죽도록 일하고도 제값 받지 못하는 인생이다. 그의 서재에 왠지 동정심이 간다.
제목이 참 맘에 든다. 거실을 서재로 만들다니... 우리집은 거실이 서재다. 이사오자마자 거실에 책을 두었다. 5천권이 넘어가는 책을 어디단 둔단 말인가. ... 어쩔 수없는 선택이었지만 집에 오는 사람들마다 주눅이 든단다... 우와... 라고 말하고 들어온다.
자랑이 아닌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