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의 웃는 마음 - 판화로 사람과 세상을 읽는다
이철수 지음, 박원식 엮음 / 이다미디어 / 2012년 4월
절판



욕심의 강을 건너 겸허한 나를 찾아가며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게 하는 멋진 책을 하나 찾았다. <이철수의 웃는 마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동인 나를 교만하게 하고, 철 없이 만든 여러 유혹들로부터 구해진 멋진 책이다.


이철수?
내게는 매우 낯선 인물이다. 표지부터 읽어나가는 버릇 덕분에 이 분이 꽤나 잘나가는 판화 조각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유명한 그림?의 주인공 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데모나 진보성향의 사람이 일을 낼 때 약방의 감초처럼 걸리는 바로 그 그림의 화가였던 것이다. 약간의 놀람과 의외의 당황스러움이 몇 장을 넘기지 않으면서 내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과거를 들추어 내며, 과거에 대해 회의적 서술을 토해냈다.
"언제가 노동자들의 골리앗크레인 고동 농성장에 내걸린 제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다 정직한 것도 청청한 것도 아니구나, 체제에의 저항이 순정한 것만은 아니구나. '우리 편'에 관한 이런저런 성찰적 반성이 있었어요."
그랬다. 그는 순수했던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건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물론 그가 산골로 제 몸을 숨긴 것은 이미 오래 전이었지만, 이 충격은 내내 '남'이 아닌 '나'를 보게 만들었고 '나'를 성찰의 대상으로 눈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개혁대상은 세상이 아닌 나였던 것이다. 그렇게 순수하게 세상을 보려했던 저자는 조용한 생의 침묵 속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농사를 지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자연에게 배우고, 자연을 통해 보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를 몸으로 보여 주었다. 이 책은 그렇게해서 자신의 성찰과 세상에 대한 자신의 연민으로 낳은 것이다.



이철수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시장이야말로 모든 가치를 훼손하는 악마의 이름이지요!"(45쪽) 그는 시장을 혐호한다. 이윤을 목적으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잉여의 생산품을 나누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철수씨는 농사를 지으면서 생존을 넘어서는 대부분의 농산물을 공짜로 이웃들에게 나누어준다. 먹고 살 정도면 굳이 소유하지 않으려 하는 그의 배려심 때문이다. 그는 수렵시대보다는 농업시대를 더 좋게 바라본다. "수렵에 비해 농업은 생명 원리에 순응적입니다. 정적이고 원만해요. 제가 농사일을 자주 권하는 이유는 마음과 몸으로 존재 가치를 살피며 살아가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98쪽) 그는 농업이 존재방식에 있어서 더 올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농업이 완벽한 중립적 일이거나 인간의 해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농사도 악의적인 수탈일 수 있죠. 자연에서 얻은 생산물이 시장에서 왜곡돼 전달되는 구조까지를 생각하면 사태가 더 나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농사는 생명과 대화하는 일이고 이게 농사를 갖는 최고의 의미"라고 그는 주장한다.(99쪽)



그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깨닫기를 원했던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정 중요한 것은 존재에 대한 경외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가 일찌기 학생운동의 선봉에서 물러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버린 것은, 혁명을 외쳤던 대상이 타인이나 조직이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좀더 겸허함으로 자신을 들여다 보고 싶은 것이다. 잡초 같은 인생,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인생을 스스로 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소중함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도중 내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 못하는 것처럼, 나는 그동안 나를 잊고 산 것이다. 사람이란 성장하고 커야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교만해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넓어져야하고, 생각은 깊어지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다. 그러나 성공을 맛본 나는 교만해지고 편협된 시각에 붙들렸으며, 작은 것에 소중함을 상실한체 나를 망각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나를 돌아보자. 누가 뭐라해도 내가 문제다. 그동안 나를 잊고 살아온 나를 돌아보자. 욕심의 강을 건너, 겸허하고 진실한 낙원에 이르자. 이것이 진정 '마음 공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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