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권력, 기독교는 왜 타락했는가?



'서구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절실하게 느낄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기술한 역사서적들의 목차를 보면 대체로 이렇게 되어있다.

원시시대(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 철기시대, 사대문명, 고대사회, 중세사회, 근대와 현대사회

원시사회와 청동 철기 시대까지의 구분은 동서양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지만 고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역사를 그리스와 중동의 초승달 지역으로 한정된다. 중세와 근현대는 말할 것도 없이 유럽중심의 역사이다. 동양사에서 중세의 개념은 없다. 고대에서 곧바로 근현대로 넘어가 버린다. 이러한 역사 편견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동안 역사를 주도해온 역사가들이 대부분 서양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대의 역사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문명 이야기와 그리스와 헤브라이즘, 그리고 이집트의 역사이다.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 가기는 하지만 고대 후반부에 자리잡은 나라들은 모두 중세와 근현대의 지평을 열어갈 초석이되는 나라들이다. 로마시대를 거쳐 중세로 접어들면 역사는 '기독교'라는 한 종교의 역사로 변형된다. 서양의 역사는 곧 기독교의 역사가 된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의 멸망 시기로부터 루터의 종교개혁과 시민계급의 등장으로 인해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과학혁명 등은 모두 기독교라는 배경을 깔고 있다. 장미전쟁, 30년 전쟁 등등 서구 역사의 걸죽한 사건들은 모두 기독교와 관련된 사건들이다. 중세는 기독교가 종교와 세속정치를 한 손에 쥐고 흔들었던 시대이다. 이곳에서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다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기독교은 초심을 잃어버리고 세속적인 권력에 유혹되어 정신적인 유배를 당한 시기였다. 중세의 시작을 역사가들은 대부분 그레고리1세가 교황의 자리에 오른 시점으로 시작한다. 중세로 구분하는 기준은 종교와 권력이 일치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학적인 문제는 그 전부터 암시되었지만 그레고리1세는 그것을 혈실화햇고, 실제로 로마의 붕귀로 인한 권랙 부재의 시기에 교회의 힘을 빌어 스스로 세속권력까지 교회가 손에 넣은 것이다. 초기의 교회권력은 혼란의 시기에 세상을 중재하고 평화를 가져다주는 수단으로서 이용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속정치에 중독되어 손을 놓지 못하고 만 것이다. 이리하여 중세는 교회가 종교와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좌지우지하는 타락한 시기요 암흠의 시기가 도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세의 교회는 하나의 교회로 지금의 로마천주교회를 말한다. 


중세의 천년이 될 즈음에 양심적인 한 명의 수사가 비텐베르크에 95개조를 걸어 놓고 도전했다. 그가바로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이다. 루터의 개혁으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도 물러나고 옥캄의 유명론이 대세가 된 것이다. 하나가 아닌 다양성을 추구하는 좀더 근대화된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종교개혁과 근대는 정신을 같이한다. 르네상스 운동으로 인해 고대로 돌아가려는 욕망은 그동안 신비에 갇혀있던 원전에대한 욕구, 호기심이 일어났고 이것은 다시 사본학과 과학적 수단으로서의 분석이 요구되었다. 칼빈의 등장은 루터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민정신을 가져왔다. 칼빈은 직업과 소명을 하나로 보았고, 성과 속을 구분했던 중세의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고 성속이 하나라고 말했다. 이러한 근대적이고 파격적인 선언은 세속직업을 하찬케 여겼던 중세의 사상을 벗어 던지게 했고, 세속 일하는 시민들의 열열한 반응을 얻어냈다. 실제로 프랑승의 자유와 이성, 영국의 합리주의와 시민정신은 모두 칼빈에게서 나온 것들이다. 그러나 개신교 역시 완전한 탈권력을 이루지 못한다. 지금 한국의 장로교는 칼빈의 후예들이 영국의 청교도와 스코틀랜드의 개혁자인 존 낙스의 작품이다. 장로교라는 자체가 권력적인이고 정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교회의 대표인 장로와 목사가 하나의 당회를 이루고 교회정치를 하는 것이다. 
















개신교가 가장 꽃을 피웠던 화란-네덜란드는 중세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갔다. 역사적 배경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라는 상황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화란은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 통합되었다. 근대의 시작은 천주교와 개신교와의 싸움이며, 이분법적 성속관과 근대적 정신을 가진 개신교와의 싸움이었다. 승리는 자명했다. 개신교의 승리였다. 그러나 개신교는 자신이 처음부터 분열과 옥캄의 유명론적 개체주의가 하나됨의 불가능을 안고 있었다. 자신의 의견과 견해가 다르면 개신교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다시 분열하는 속성을 자체적으로 가지게 된 것이다. 


근대의 합리주의와 이성이 시대이다. 계몽과 시민정으로 똘똘 뭉친 프랑스의 지식층들은 시대를 주도했다. 영국과 미국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대대적인 근대적 정신과 사물을 받아 들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화란-네덜란드와의 무역을 통해 신신 무기인 조총을 만들어 임진왜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근대정신은 곧 과학정신이고, 성과 속이 일치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근대정신의 속성상 교회는 다시 세속 권력으로의 발판을 놓을 수 있었고, 신의 이름으로 정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처음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 올 때는 정치적인 성향이 거의 없었다. 초기 일제강점기 때의 기독교는 계명과 신앙이라는 타이틀로 나라와 민족을 개화하고 정신을 근대화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이 부분은 심훈의 장편소설인 <상록수>에 잘 그려져 있다.) 정치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현실도피적인 성향이 두드러졌다. 아무래도 일본과 부딪히지 않으려는 선교사들의 조심스러운 행보였을 것이다.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던 민족지도자들은 개화된 정신과 과학정신으로 무장되었다. 독립선언서를 기록한 33인의 대표중 16명이 기독교인인 것은 당시의 기독교의 특징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문제는 해방 이후에 찾아온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은 기독교인이다. 현대인들은 그를 싸잡아 욕을 하지만 그의 초기 시절에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나 친미적 성향의 정권 수립과 친일파의 청산의 제대로 이루지지 않는 상태에서 '안정'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라를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로인해 집권층은 '기독교' '친일파'라는 두 큰 기류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일제시대 당시에는 탈 권력적이던 기독교가 집권층?이 된 다음부터 권력화되고 세미정치권력집단처럼 변질되기 시작했다. 개혁과 혁신을 부르짖기 보다는 안정과 복을 구하는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욕망의 도가니가 되어 버린 것이다. 


특히 군부시절을 지나오면서 권력과의 결탁이 아니며, 정치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하는 현실도피적 형태로 갈라지게 된다. 보수적인 장로교는 정치를 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강해지고, 진보적인 기장측은 구원을 사회적 구원으로까지 확장시킴으로 정치와의 대결구도로 나아갔다. 이승만, 김대중, 김영삼, 이명박 등은 기독교인들이며, 기독교적인 성향의 대통령들이다. 기독교 대통령의 당선은 기독교의 정치적 결탁을 더욱 부추겼고, 세속적인 성공을 신앙의 성공인 것처럼 꾸며대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한국교회는 탈권력화로 나아가야 한다. 초기 기독교는 중심부로 향한 권력지향이 아니라 주변부로의 치유지향이었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도록 부름받았다. 세상을 치유하는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의와 정죄를 일삼는 권력자가 아닌, 작은 자들과 소수자들을 향한 섬기는 자로 서야 하는 것이다. 대형화로 인해 교회 안에 소외현상이 극심하게 일어나고 있다. 교인수가 권력과 힘이되는 시대가 되었다. 교회가 스스로 높은 곳에 앉아 '체'하고 있다. 참으로 슬픈 일인다. 교회는 다시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논어에 이른 말이 있다.

자식어유상자지측 하매, 미상포야요, 자어시일에 곡즉불가라

子食於有喪者之側 未嘗飽也 子於是日 哭則不歌

상을 당한 사람 앞에서 배불리 먹은 적 없고, 곡을 하면 노래를 부르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을 당부하신 말씀이다. 예수도 진즉에 '슬픈 자들과 함께 울고, 기쁜 자들고 함께 웃으라'고 말씀하지 않았던가. 이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자. 낮은 곳으로, 소외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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