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중용]의 저자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후대에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에 의하여 새롭게 편역된 책이다. 주희는 리와 기를 통해 성리학을 집대성했으며, 이후의 중국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대학과 중용은 [예기]의 한 부분이다. 예기는 한무제 때 유학이 지배사상이 되면서 여러학자들에 의하여 수집 정리된 것이다. 진대에 분서갱유 사건으로 인해 유가사상이 훼손되기는 했으나 한대에 다시 복권되어 지배상이 되었다. 중국의 사상사를 볼 때 수당대의 경우 불교를 지배체제의 주종교로 받아 들일 때는 유가사상은 수동적이고 폐쇄적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한대와 같이 유가사상의 복권이 이루어진 시기는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대학은 유가사상의 대표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논어와 맹자 등과 더불어 중요한 교육서였다. 이에 비해 [중용]은 도가사상에 가까운 면이 많다. 무위사상가 불교적 숙명론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용은 난세를 살아가는 중요한 지혜로서 자리하고 있다.
불교가 심성을 강조하는 비텍스트의 종교라면 유가는 도덕과 행실을 중용시하는 텍스트의 종교이다. 유가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론을 통해 모더니즘적인 성향을 추구한다면, 불교는 비언어적이며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성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적인 차이로 인해 한 시기는 숭상을 받고 다른 시기는 무시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대학이전에 소학을 먼저 공부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소학은 대학 이후에 주희에의하여 대학을 입문하기 전에 기본 소양을 갖추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소학을 8세 쯤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시기로 잡고 생활 예절이나 음악, 활쏘기, 말타기, 글쓰기, 셈하기 등을 배우게 하였고, 대학은 대인지학이라 하여 학문을 공부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는 뜻으로 15세 쯤으로 잡았다. [소학] 구체적이고 생활에 관련된 것이라며, [대학]은 생활 속에서 체득되어진 것들의 원리나 사상을 잡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5에 보면 '사물이 탐구된 뒤에 앎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앎은 현대적의미에서는 물리학을 의미하지만 당시의 상황 속에서는 [소학] 또는 자연의 현상과 만물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유가사상의 8조목은 '격물 치지 성심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이다. 먼저 자연의 관찰하고 탐구하여 이치를 깨닫고 다시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고 다스린다면 가정과 더 나아가 온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 자연을 관찰하는 것과 자신을 관찰하는 것은 다르지 않으며 우선순위에 있어서 다를 뿐이다. 주희는 전5장의 격물지치에서 '자신의 앎을 확충(확장)하는 것을 사물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홍익출판사에 대학과 중용을 한 권으로 묶은 이유는 두 책다 모두 극히 작은 분량 때문이다. 또한 대학과 중용이 학문의 깊이는 더하고자는 수준을 요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이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한글 번역과 원문을 함께 책을 펴낸 까닭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대학은 삼강령으로 시작한다. 대학의 목적이자 본질은 덕을 밝히고, 새롭을 새롭게 하고, 선(착함)에 머무는 것이다. 삼강령은 순차적이며 과정을 통해 선에 머무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대학1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 데 있다.
삼강령은 대학 즉 공부하는 방향과 목적을 담고 있다면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체가 치국 평천하의 8조목에서는 공부의 방법을 논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먼저는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다음은 의지를 다음은 마음을 다스리고 다음으로 가정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이다. 다스림의 순서로 본다면 사물을 다스리고 자신을 다스리고 다음으로 가정과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8장의 정심수기의 일 부분이다.
心不在焉(심불재언)이면 : 마음이 있지 아니하면
視而不見(시이불견)하며 : 보아도 보이지 않고
聽而不聞(청이불문)하며 : 들어도 들리지 않고
食而不知其味(식이불지기미)니라 :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此謂修身(차위수신)이 : 이래서 몸을 닦음이
在正其心(재정기심)이니라 :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대학이란 모든 백성을 평안케 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중용은 공자의 아들인 리가 낳은 자사로 전해진다. 공자의 손자인 셈이다. 주희는 중용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해설한다.
첫째는 밝은 도의 보의 본원은 하늘에서 나왔으니 바꿀 수 없으며, 그 실체는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어서 떨어질 수 없음을 밝히고,
둘째는 본래으 선한 마음을 간직하고 본성을 잘 기르도록 살피는 공부를
셋째는 신묘한 성인의 역할과 교화의 지극함을 말한다. 즉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여기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나 스스로 터득하여 밖에서 들어오는 사사로운 유혹을 제거하여 본연의 선함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가득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중요은 맹자의 성선설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사람의 본을 선에 놓고 있다. 그래서 중용의 첫 시작은 이렇게 풀어낸다.
'하늘이 만물에게 부여해 준 것을 '본성'이라고 하고, 자신이 부여받은 본성에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고 한다.
중용의 원리는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기다려 보는 것이다. 마치 밥을 오래 씹으면 안에서 단물이 나오듯이 모든 이치도 오래 기다리고 살필 때 본심이 나온다는 것이다. 중용은 욕망에 의하여 흐려진 마음을 바로잡고 올바로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 그러므로 군자는 여러 부류 사람들고 잘 어울리기는 하지만 사악한 방향으로 빠지지 않으니 이 얼마나 강하가, 꿋꿋한 기상여! 가운데 서 똑바로 서서 한쪽으로 기울지 않으니 이 얼마나 강한가....
중용에서도 여전히 공자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으며, 대학의 8조목이 군데군데 스며있는 것을 본다. 결국 중용은 도가적 사상을 완전히 따지는 않으며, 차리라 유가사상 안에 담긴 진보적 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