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유물론과 관념론의 경계들 

 

 고대 철학은 자연철학과 인간철학으로 구분한다. 어설픈 추론이지만 대충 그렇다. 자연철학자들은 자연에서 만물의 기원과 본질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부터 인간이란 누군인가 질문하기 시작한다. 철학의 두 뿌리는 바로 이러한 두 평행선상에서 이어진다. 

칸트 , 경계의 철학, 철학의 경계 

순수 칸트만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이미 놓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칸트는 로크와 루소 등의 경험주의자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진 형이상학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했다. 물론 경험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이 전부가 아니라 선험적 문제, 즉 형이상학은 거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저자가 경계이란 주제를 끌고 나온 것은 경험과 형이상학의 경계를 두고 한 말이다.  

고대 헬라철학은 경험이 아니라 형이상학 영역에 속한다. 경험이 무시되지는 않았지만 그 모든 것을 받아 들이는 것은 자신 안에 있다는 것. 즉 형이상학의 문제라는 점이다.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을 알라'는 경험으로 전부로 여기려는 기계론적 사상가들에게 던지는 반성적 요구이다. 오로지 경험을 통해서만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즉 과학적인 것으로만 분석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르다. 그는 정치가였지만 전쟁의 포로가 되어 노예가 되었다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나 드디어 찰학자가 되었다. 그는 폭력과 자만으로 무력행사하는 폭정에 치를 떨었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지혜자. 즉 철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꿈꾸었다. 그것은 이데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플라톤은 중세 초기의 기독교 철학과 정신을 담고 있으면서 경험론을 굴복시킨 형이상학의 철학자 칸트의 기원이다.

 

 

 

 

 

 

 

 

 

자연 대 인간. 고대로부터 면면이 이어져오는 철학의 두 기둥이지만 그들은 동지이면서 동시에 적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듯이 말이다. 플라톤은 형이상학만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만을 추구했다고 하지만 전혀 아니다. 플라톤은 보편과 개체의 분리 내지는 개체는 보편을 닮았고 보편를 그리워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과 개체는 하나였다. 보편이 없다고 말한 홉스나 경험론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점에서 중세철학의 문을 연 어거스틴과 경험론과 형이상학은 하나로 묶고 싶었던 칸트와 헤겔의 시조였다. 

 

 

 

 

 

 

 

 

그런 점에서 칸트와 헤겔은 보수적이며 중세적이며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후예들이다. 자연철학자들의 후예는 경험론자, 기계론자, 과학자들이다. 플라톤은 관념을 추구하는 중세기독교 철학이며, 헤겔과 헤겔의 우파계열들이다.  헤겔 좌파는 유물론자들이며, 경험론에 가까우며, 후에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이는 바로 포이에르바하이다. 그는 종교 즉 형이상학을 절대 부정했으며, 사람은 물질에 불과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신은 없으며, 신을 믿는 것의 어리석음을 폭로했다. 신은 형이상학이다. 그는 형이상학을 부정했다.

 

 

 

 

 

 

 

포이에르바하는 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과 같은 사회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포이에르바하로부터 이어지는 유물론자들은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장자계열에 속한다. 물론 완전한 장자는 아니다. 다만 중요한 정신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유물론은 무엇일까? 인간을 정의함에 있어서 형이상항을 제거하는 것이다.

 

 

 

 

 

 

 

 

 

인간은 정신과 육체로 되어있다는 것이 고대 그리스 철학이다. 플라톤과 같은 이데아론자들은 정신을 해방하기 위해 육체를 제거해야 했다. 이러한 육의 해방은 플라톤에 이르러 정점에 이르며, 이 후로 계속된다. 헤겔에게서 특히 강하게 드러난다. 정신이 모든 것이다라는 명제는 플라톤 주의자들에게 담겨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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