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고치면 병이 낫는다. 정말일까? 

 

마음과 몸은 하나다. 그러나 현대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근대화 되면서 몸과 마음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한데서 온 오해이다. 중세를 보통 암흑기라고 말하지만 몸의 암흑기는 근대다. 근대는 이성이 신으로 등극하여 온 세상을 자신의 마음대로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마음은 마음이고 몸은 몸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고전환은 마음 즉 신앙이라는 중세적 견해를 배척하는데서 오는 반동 때문이다. 즉 중세의 모든 것이 싫은 것이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를 함께 버린 것과 일반이다. 그러다보니 근대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최로 생각하고 진리가 철썩같이 믿었다. 결국 마음이 병을 부른다는 중세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몸과 마음은 별개라고 생각하고 주장하게 된다.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의 문을 열게 만든 사람들은 중세의 철학자 그러가 그것을 거부한 회의주의자였던 데카르트였다.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유명한 데카르트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회의에서 찾았다. 의심하지 않는 것은 결국 죽은 것이라는 암묵적 법칙을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회의주의 철학는 모든 것을 의심스럽게고 보고 직접 관찰하고 경험하는 철학적 사고로 발전하게 된다.

  

 

 

 

 

 

 

 

데카르트의 회의주의 철학은 양 극단으로 벌어지게 되는데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과 대륙의 관념주의철학으로 갈라진다. 전혀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 뿌리도, 도착하려는 목적지도 동일하다. 즉 이성에 의해, 이성을 통해 모든 것이 판단되고 성립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것이다. 과학적 경험을 앞세운 영국의 경험주의철학도 결국 인간이 스스로 경험 관찰 할때 진리가 되는 것이다. 대륙철학의 관념론도 역시 인간의 이성을 통해 완전함에 이른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성절대주의는 이성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순수하고 진리라는 강박관념을 퍼트린다. 이성이 아닌 것은 모두가 잘못된 것이 된다.      

 

 

 

 

 

 

 

 

독일의 관념론과 영국의 경험론은 모두가 인간의 성선설에 근거한 인간절대주의에 근저한다. 인간은 타락했지만 이성은 타락하지 않았다는 중세 신학자요 철학자였던  토마스아퀴나스에 의해 이미 주창된 것이다. 다만 그것을 표면상으로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그 잘난 후배들은 별관에 한가로이 쉬고있던 세미타락론을 중궁전에 끌어 들인 것이다. 이분법적 철학의 가장 고대적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물론적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영과 물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보편과 개체는 완전이 다른 그 무엇이 되는 것이다. 플라톤은 보편에서 개체가 생긴다고 말했지만, 아리스토 텔레스는 개체가 있어야 보편이 가능하다고 그 순서를 바꾸어 버린 것이다. 말을 바꾸면 이렇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이 세상에 실제 의자가 없는데 어떻게 이데아의 세상에 의자가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말을 바꾸고 순서를 바꾼 것이라지만 사실은 완전한 결별이요 거부이다. 

 영국의 경험론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면서 유물론적 경험주의에 맞게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주체가 된다. 영국에서 경험주의가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의 상황이 제국주의를 지향하고 세계를 향하여 식민지를 개척해야 했기 때문이다. 경험론은 당시의 상황에 교묘한 조우를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산업화로 인하여 세계를 더욱 물화되고, 비인간적인 존재로 사람들은 전락하고 만다. 즉 근대화의 폐혜가 눈에 보이게 된 것이다. 근대의 주의는 철저하게 대륙의 관념론이 아니라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와 근대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의 문제이니 말이다. 하여튼 경험주의는 인간을 하나의 기계 내지는 부속품으로 생각했다. 몸과 마음을 따로 다루게 된 것이다. 마음에 관련된 것은 일단 미신이니 버려야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바로 근대 의료의 시작이다. 근대 서양 의학은 몸의 병을 물리학적으로 병리학적으로 치료하려는 근대적 사고에서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근대적 의료의 한계점들이 분명해 지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근대 의료는 결과만을 말하지 결코 과정이나 이유를 묻지 않는다. 병이 걸리게 된 환경이나 마음의 문제등은 중요치 않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완쾌 되었다 하더라고 재발하는 현상이 많아지고, 치료가 불가능해 지는 경우도 많게 된다. 결국 병은 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세계의료보건기구도 마음의 병도 병으로 인정하게 된다.  

 몸이 병은 마음으로부터 온다는 주장을 하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사람들의 모든 병은 단순한 아픔이 아니라 먼저 과정이 들어가 있다. 마음이 아픈 다음 몸이 아픈 것이다. 보통 암은 마음이 아픈 후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암이 낫고나서 재발하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이 마음의 병을 고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풀어야 암이 낫는 것이지, 몸을 고친다고 고쳐지는 것이 결고 아닌다. 

우리는 왜 아플까 / 몸에 갇힌 사람들 / 통증 유발자 마음 / 암! 마음을 풀어야 낫지

 

 

 

 

 

 

 

 

그래서 현대의 의사들은 단순한 처방만을 내리지 않고 마음의 문제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전에 아버님이 수술을 하기 병원을 찾았다. 수술하기 전에 법적인 책임지지 지지 않는다는 서약을 받았다. 의사들이 하는 말은 고작. 어떤 잘못된 경우라도 인정하라는 것이다. 즉 죽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처럼 무책임한 말이 어디있단 말인가! 마음이야 안다. 노력을 하겠지만 절대적인 성공은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괜찬습니다. 잘 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될까? 위로하고 격려하면 좋지 않을까! 의사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아버님이 수술하시다 돌아가실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현대의 의학은 마음을 병들게 한다. 이러한 구조속에서 병을 고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가. 사람이란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하고 정말 죽게 된다. 희망을 심어주고 가능성을 열어 주어야 한다.

 

 

 

 

 

 

 

 

브레인 룰스라는 책에서는 사람의 뇌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즉 환자에게 당신은 죽지 않습니다. 살아날 것입니다. 건강합니다. 라고 말하면 자연적 치유능력을 발휘해 낫으려고 한다고 한다. 그러나 죽을 것입니다. 다시 못볼지 몰라요 등의 부정적인 말을 하면 뇌가 스스로 자신을 죽인다고 한다. 그러마 무엇보다 마음이 먼저인 것이다. 몸과 마음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마음의 시계>에서 엘렝 랭어는 노인들을 실험한 결과 마음이 젊어지게 하면 몸도 따라서 젊어 진다고 한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늦출수는 있다는 것이 랭어 주장이다. 그렇다 결국 마음이 문제다. 이제 잘못된 근대적 의료행위를 버리고 마음과 몸을 함께 다루는 혁명적 의료를 단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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