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왈드 챔버스의 신비주의와 경건 

"다른 모든 고려할 사항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오직 이 한 가지만 생각하십시오. 최상의 주님께 나의 최선을 드리리라(My Utmost for His Highest). 단호하게 결심하십시오. 온전히 그분을 위해, 오직 그분을 위해 살기로 결단하라." 

내가 어떻게 해서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와 만남을 갖게 되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대학시절 청교도 목사님들의 설교집들을 읽어가면서 접하게 된 것 만은확실하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우리나라에 이미 많은 팬들을 가지고 있는 탁월한 경건주의자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는 묵상집을 통해 많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도전과 은혜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영국에서 태어난 챔버스는 방탕한 삶을 살아가다 10대 후반에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회심을 한다. 에든버러 대학에서 예술과 고고학을 전공한 뒤 소명을 받는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고, 미국과 영국 일본 등지를 오가며 순회 말씀사역을 펼친다. 런던 클래팜에 성경대학을 설립하는 등 교육과 선교사역에 헌신을 한다. 그러다 1915년 이집트 자이툰에서 군인목회를 하게 되지만 1917년 맹장 파열로 갑자가 숨을 거둔다. 43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는 생애였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가 남기 많은 소책자들과 묵상집 그리고 설교 등은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란 책으로 미국 기독교 역사강 최장기 베스트 셀러이며,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미국 대통령 취임식마다 이 책을 선물했다고 전해진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신비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하다. 중세적 신비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신비주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통찰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신비주의는 토마스 아 캠피스의 수도적 신비가 아닌 팡세의 현실적 세계에서의 신비주의이다. 현실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의 통찰력을 말한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의 스스로 해볼 것을 다해본 후에 포기하는 지점인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신다."(죄의 철학, 12쪽) 

오스왈드 챔버스의 탁월함은 이러한 죄된 인간의 허무와 한계를 깊이 헤아리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소망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비약을 잘 설명해준다.  

"낮은 차원의 삶에 만족하는 자들에게 성경은 황당한 책이다."(죄의 철학, 12쪽) 

오스왈드는 거침이 없다. 여러가지를 설명하고 논리적으로 끌고가려하지 않고 자신의 통찰력을 단 하나의 문작으로 풀어낸다. 구구절절 설명하기 보다는 명확한 선포가 더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오스왈드 챔버스의 문장은 시퍼런 칼처럼 예리하며, 때론 구름 속의 몽롱함도 더한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신비주의적 성향은 인간의 한계를 절실하게 체감한 결과이다. 그의 생애는 어쩌면 맥체인목사님과 같이 짧은 생애를 살다가 갔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 가지는 밑바닥의 체험을 체감했다. 이러한 신비주의적 경향은 그의 청교도 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펄전의 설교를 듣고 중생한 덕택인지 스펄전처럼 침례교인으로 목사안수를 받았다. 세상과의 단절과 혁명적 성향을 가진 침례교 전통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로 부각을 시킨다.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5-7장까지의 말씀을 설교한 것이며,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는 성령론에 관하여, <도움의 장소, The Place of Help>는 인간들의 진정한 도움은 어떤 것이어야하며, 하나님의 도움이야 말로 진정함 도움이라는 것을 작은 묵상들을 통해 밝혀낸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는 그가 세운 클래퍼 성경학교에서 사역자들을 위해 강의한 모음집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에게 있어서 경건이란 하나님을 닮음을 넘어 그 분께 온전히 자신을 드리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것을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실제로 역사하는 기도를 드릴 수 없다. 과거의 죄악들을 지울 수 없고 내 기질을 바꿀 수 없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 자신을 올려드릴 수 없다. 그런데 바로 그 불가능한 곳에서 성령의 이끄심을 받을 수 있다. 누구든지 자신이 영적으로 빈털털이라는 사실을 납득할 때에만 성령께 이끌 수 있다."(산상수훈 28쪽) 

오스왈드의 경건은 한마디로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나의 일을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을 수록 좋으며, 부정될 수록 더욱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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