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韓非子, 이사李斯의 모함으로 죽다.   

 

   

 한비, 손빈의 뒤를 따랐다. 사실은 손빈보다 훨씬 운이 나빴다.

진 왕국의 왕위는 기원전 247년에 열세 살인 영정(나중에 진시황)에게 전해졌고, 영정의 아버지 영이인의 오랜 친구 여불위가 섭정을 맡게 된다. 여불위는 조나라 사람으로 역사 속에서 정치적 이해가 탁월하며, 돈이 많은 자본가였다.  


집에서 도망쳐 나온 영이인을 거둬들이고 그를 통해 정치를 시도한다. 함양으로 가서 뇌물로 영주의 가장 아끼는 화양부인을 설득한다. 화양부인은 자식이 없어 영이인을 양아들로 준다. 결국 화양부인의 집요한 노력으로 영인이 태자의 자리에 오른다. 여불위는 여기서 끝내지 않고 자신의 가장 아끼는 희첩을 영이인의 아내로 준다. 이 희첩이 1년 뒤 아들을 낳는데 그가 바로 나중에 진시황이 되는 영정이다. 운이 좋게는 얼마 뒤 늙은 왕 영직이 죽고 영주가 뒤를 잇는다. 그러나 왕위를 이은지 1년 만에 공교롭게도 영주도 죽고, 뒤를 이은 영이인도 3년 만에 병으로 죽는다. 결국 영정이 보좌에 오르게 되고 여불위 자신이 섭정을 하게 된 것이다. 여불위의 노력과 운이 결정적 순간에 만나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진시황의 책사요 재상이었던 이사. 자신보다 더 탁월했던 한비를 모함하여 독살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비 못지 않는 탁월한 책술가였으며, 그를 통해 영정-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하게 된다.  

한비와 함께 한 스승에게서 배운터라 이사는 한비의 능력을 충분히 알고 시기한 것이다.

 

 

 당시는 진 왕국의 권력이 흔들리는 가운데 합종대항의 연맹이 조직되었고, 초와 미완을 맹약의 대표로 추대된 상태였다. 그러나 힘을 회복한 진군이 출전하여 5국 연합국과 승리에서 이겼다. 기원전 237년 영정의 나이는 스믈셋, 여불위가 전권을 휘두르는 것에 불만을 품은 영정은 마침내 여불위를 면직시키고 사진이 직접 정사를 돌보게 된다. 법가 학파의 이사를 재상으로 발탁한다. 영정은 독서를 무척 좋아해 여러 책을 두로 섭렵했다. 특히 ‘고분’, ‘오두’라는 글을 발견하고 매우 기뻐할 뿐 아니라 몽땅 외웠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탄식했다.
“이 책은 쓴 사람과 만나 교류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한비라고도 하고, ‘한비자’였다. 이사는 그 글의 주인공은 한비이며, 말을 더듬는 병이 있어 말에는 둔하나 모든 지혜가 그의 책에 있다고 전해준다. 영정은 기뻐하며 한 왕국에 알려 한비의 진 왕국을 요청하게 된다.  

 
기원전 232년 한비가 함양에 와서 국왕의 귀빈으로 성대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한비자에게 참으로 운이 나쁜 사건이 된다. 이사는 예전 손자병법을 쓴 손무의 후손인 손빈을 그 친구 방연이 했던 모함을 하게 된다.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 것 같은 두려움과 시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영정에게 이렇게 모함한다.
“한비는 한 왕국의 귀족으로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진 왕국에 충성한다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그를 기용했다간 배반당할 위험이 높고, 돌려보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려 보낸다해도 그곳에서 변법 개혁을 실시하여 국력이 강해지면 결국 우리에게도 큰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죽여서 후한을 없애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영정은 한비를 귀빈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감옥에 가둔다. 그러나 잠시 후 마음을 바꾸고 옥에서 석방시키라고 명한다. 그러나 어쩌랴 이사는 이미 한비를 옥 안에서 독살시키고 말았다. 
  

전국칠웅에서도 가장 약체였던 진, 중국을 통일하게 되는 기초는 한비의 글을 통해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비가 쓴 [韓非子] 

이 책에서 한비는 군주와 신하는 이해관계가 같을 수 없고, 군주는 신하들을 의심하며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특히 간신들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을 멀리할 것을 말한다. 

법을 지키면 강하고 굳세다.-한비자 

 

 

 


한비는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말해도 좋은 것이다. 그의 이론은 강력한 군주를 만드는 술책들이다. 상벌을 엄격히 하고 분명하게 하면 정부를 강력한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탁월한 식견과 폐부를 치르는 분석력 때문에 그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의 체제를 야비하게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 한비는 백성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전쟁이 일어나기 때문에 덕치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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