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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본 슬픔 ㅣ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4년 3월
구판절판
저자에 대해서는 넘어가도록하자. 워낙 유명한 분이니.. 그러나 한가지 이 분이 [고통의 문제]를 쓴 분이라는 사실은 참고할 만하다.
이 책은 가장 위대한 평신도 신학자요, 저술가요, 날카로운 이성적 통찰력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왠지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인간의 본연 속에 숨겨진 진실과 고백들을 신앙을 떠나 형식을 떠나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슬픔을 마치 신 없는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마지막에 신앙을 버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러한 주장은 너무 성급한 탁상공론에 불과한 것이라고 본다.
누군가는 의심과 신앙은 비례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신앙은 의심의 양분을 먹고 산다. 의심하지 않고는 신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랑은 고통에서 나오는 것이지 따스한 봄날의 햇빛같이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루이스는 이 책을 자신의 이름이 아닌 클랙이라는 가명으로 출판했다.
서문을 쓴 미국의 아동문학자가 랭글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루이스가 슬픔의 일기를 정직하게 써 내려간 데 감사한다. 인간이 슬퍼하도록 허용되었으며, 슬퍼하는 것이 정상이고 마땅한 일이며, 그리스도인도 상실에 대해 이처럼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허락받았음을, 그의 일기는 명백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이스는 우리가 하고픈 질문을 대신해 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거의 생의 말에 사귀었고, 그러다 얼마 후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아내를 생각하며 쓴 루이스의 일기는
때론 너무 사색적이고,
때론 너무 신화적이고,
때론 너무 상식적이다.
'또한 슬픔은 게으른 것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21쪽)
슬픔은 싫어진다.
생각하기도,
글쓰기도,
타인들과 대화하기도,
심지어는 밥 먹는 것도
싫어진다.
그래서 슬픔은 게으른 것이다.
'죽음은 없다 라든가 죽음이 중요한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참아 내기란 어렵다. 죽음은 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 차라리 탄생이 중요 않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낫겠다'(32쪽)
'그녀의 목소리는 생생하다. 그 목소리를 생각하면 나는 또다시 훌쩍이는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다'(33쪽)
루이스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그리고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다. 자신 안에 숨겨진 하나님에 대한 답답함과 불신앙을 숨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이것이 실존이다. 실존의 신앙을 가진 자만이 슬퍼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이나 사랑의 자질을 알아보시려고 시험을 하는게 아니다. 모르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78쪽)
[고통의 문제]가 냉철하고 합리적 사고를 통한 신학적 고찰이라면 [헤아려본 슬픔]은 실존적 신앙에 대한 꾸밈없는 고백인 것이다. 상실... 그 아프고도 쓰라린 고독을 루이스는 또다른 걸작을 만드는 밑거름으로 사용했다. 빛나는 보석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