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는 기독교에 불가분의 관계다. 기독교는 일제강점기 시절, 교회와 일제는 때로는 앙숙으로 때로는 교활한 친목을 다졌다. 애증의 관계인 셈이다. 현재 한국 내의 기독교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두 부류처럼 앙숙처럼 기묘하게 형성되어 있다. 대구 경북 중심으로는 친일파는 곧 기독교라는 지독한 편견이 드리워져 있고, 서해안을 중심으로 특히 전남북 서부지역은 빨갱이라는 프레임이 덮씌워져 있다. 정치와 기독교 색이 어찌 이리 같은지... 일제와 기독교의 관계를 입을 열면 끝이 없으니..여기서 그만. 그럼에도 한 가지...
한국의 기독교, 그러니까 철저히 미국적 기독교에 함몰된 한국 기독교 역사는 근대와 학교, 문명과 개화라는 단어들을 포섭하지 않고는 도무지 설명이 불가능하다. 친일이든 반일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어차피 우리나라의 교육체계와 경찰 체제는 일본에 물려준 것이 아니던가. 그 또한 해방 시기의 어지러운 사정이 있기는 하지만.. 작년부터 전남동부 지역 관련 학교와 선교에 대한 자료가 올라와 함께 싣는다. 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으나 이전에 나온 내용은 선별하고 교정하려 책으로 묶은 것으로 안다.
비아토르에서 신간이 나왔다.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평화의 나라>이다. 대가의 책이니 필독서가 분명하다. 복있는사람에서 <성경신학 스터디 바이블> 가죽판이 나와다. 가격이 억소리 난다. 하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북도 함께 출간되었다. 불과 3년 전만해도 이북으로 내야 된다고 그리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무도 듣지 않더니 이제야 하나 둘씩 종이책과 이북을 거의 동시에 출간하고 있다. 몹시 다행한 일이다. 시절을 어찌 이기겠는가? 10년 정도 지나면 우리나라 출판서적의 30%는 이북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사를 자주 다니니 책을 싸고 푸는 일이 거의 고문에 가깝다. 시골로 내려가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책 때문이다. 5천권이 넘어가는 책 때문에 창고가 필요하다. 그런데 성경신학 스터디 바이블은 어떤 성향일까? 꽤나 궁금하다.
동연의 기묘한 책 한 권이 나왔다. 두 뿌리라 해서 신학적 이야긴 줄.. 하기야 바탕은 두 신학 이야기다. 어찌보면 경상도와 전라도의 신학 성향과도 맞물린다. 낸시머피의 신학과 과학의 화해도 출간되었다. 이 책은 현재 읽고 있다. 곧 서평 할 책이다.
열심히 살자.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