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된 종교


막스는 종교를 아편으로 취급했다. 중국은 공산화 되면서 거의 모든 종교를 숙청하고 문화재를 파괴했다. 사회주의 역시 종교이다. 종교가 아닌 이상 어찌 모든 것을 재편할 수 있단 말인가? 현재의 중국은 종교를 무시한 탓이고, 종교화되었다.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인가.


종교는 다분히 관념 생각 사상의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물화의 유혹을 떨칠 수 없다. 그렇기에 종교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존재한다. 물화되지 않는 종교는 아편일뿐이다. 또 다른 물화이다.


이 긴장을 표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종교는 삶에에서 시작되었고, 삶으로 풀어내고,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어찌 그게 쉬운가? 성육신을 어찌 이해하며, 죽음을 어찌 종교적 언어로만 해석할 수 있단 말인가? 


문학이 아니고서는 종교도 삶도 이해할 수 없다. 문학은 철저히 종교적이고, 철저히 실제적이다. 그렇기에 문학은 제한된 종교의 언어가 풀지 못한 것을 실존의 언어로 풀어내는 유일한 수단이다. 문학 없이 종교 없고, 문학 없는 종교의 언어는 무의미할 뿐이다. 


최근에 종교와 인문학이 자주 만난다. '기독교 인문학'이란 키워드로 검색해도 수많은 책들이 보인다. 어떤 책은 인문학이란 이름만 달고 나오는 고리타분한 설교집이고, 어떤 책은 불필요하게 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종교를 싸잡아 모욕하는 무례한 책들도 있다. 그럴 때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읽는 것이 훨씬 낫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철저히 무신론자다. 하지만 철저히 종교적이다. 그의 책을 읽어보라. 감히 기독교적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목사보다 더 설교를 잘하고, 수녀보다 더 거룩한 창녀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진실로 종교란 문학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진심으로 말이다. 삶으로 표현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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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20-09-30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도스토옙스키가 어떻게 철저히 무신론자입니까? 알고나 말하세요. 초기 작품에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나, 그의 장편 특히 마지막 작품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 그리스도를 변증하기 위해 쓴 책입니다.

낭만인생 2020-10-06 21:50   좋아요 0 | URL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제가 부족 해서 그런 것이니 너그럽게 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