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알라딘에 서평을 올리지 않는다. 가끔. 엊혀질만할 때 가끔 올린다. 서평도 페이퍼에 담는니다. 왜 그럴까? 나에게 물었다. 답은 의외로 빠르고 명징했다. 책을 담아둘 수 있어서. 그렇다. 책을 담아 둘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답이었다. 서평란에 글을 쓰면 그 책만을 담는다. 그러나 동일한 내용을 페이퍼에 담으면 다른 책도 함께 넣을 수 있다. 헛된 책 욕심에 빠진 게으른 타성이다. 그래도 버리고 싶진 않다.


이 책는 수년 전에 읽었다. 그런대로 좋은 책이다.














이 책도 읽었다. 그런대로 좋은 책이다.














지난 주 구입해 읽고 있다. 역시 은유다. 여성의 까탈스러움이 짙게 묻어 있다. 산문이다. 물론 글쓰기 방법을 희미하게 그린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이들은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처럼 풀기 어렵다. 예를 들어 글 쓰는 일이 '소수의 권력'이 아니라 '최소한의 권리'(44쪽)라는 정의 속에 저자의 속성이 짙게 배여있다. 

일단 쓸 것, 써야 쓴다.(57쪽)

시속 150km 기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의 일면이다. 즉 써야 한다는 것. 글은 씀으로 글이 된다. 작가는 써야 작가이다. 


"고통의 글쓰기는 고통의 글쓰기다"(64쪽)


글쓰기를 가르치는 이들의 극단이다. 누구는 글쓰기는 누워서 떡먹기다. 누구는 생을 갉아먹는다. 누구의 말을 듣든 글쓰기는 쉽다. 단지 아플 뿐이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박종인의 <기자의 글쓰기>도 함께 구입했다.

남자다 조선일보 기자다. 아직도일까? 하여튼 기자다. 조선일보. 난 조선일보를 싫어한다. 그곳에 글을 쓰는 사람도 싫어 한다. 그러니 박종인도 싫어할까? 난 박종인을 모른다. 그래서 구입했고, 읽었다. 


"글은 글이 아니라 상품이다."(59쪽)


팔려야 상품이고, 읽혀야 글이다. 읽히지 않는 글은 글이 아니다. 타인에의해 읽혀질 때 글이다. 

그럼에도 그의 정의가 달갑지 않다. 하여튼 내용 자체를 비판하려는 건 아니고, 조선일보가 진정성 있는지는 나로서는 회의적이다. 


결국 글도 사진과 다르지 않다. 동일한 시공에서 동일한 장면을 보면서 전혀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일이 사진작가니까. 글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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