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게 삶을 읽다


기독교인이지만 불교서적을 좋아한다. 수년 전에는 일년 내내 불교 경전들을 수십 권 읽었다. 누군가에 의하면 경전은 빨리 읽으면 안 된다고. 조곤조곤 자근자근 밥 먹듯 소화 시켜 가며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죽어도 그렇게 못한다. 나는 정독하지 않고 속독하고, 그렇지 않는 것은 몇 구절을 놓고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한다. 불교 용어는 낯설기 때문에 정독할 수 없다. 그래서 택한 것이 속독이다. 그냥 알든 모르든 지나치는 것이다. 그리고 읽어가다 이상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으면 밑줄을 긋고 물음표를 큼지막하게 그린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그곳을 찾아 정리하고 다시 찾아 본다. 


어제 한 권의 책을 얻었다. 법정의 <아름다운 마무리>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 하루를 살아가면 사유한 것들을 글로 옮겼다. '불필요한 것들' '노년의 아름다움' '모란이 무너져 내리고' 그렇게 써내려간 글의 실체는 존재의 발현 그 자체다. 자연을 사랑하는 노 스님. 운하를 반대했던 글을 썼을 줄이야. 지금은 감옥에 있는... 돈에 매수되어 버린 기독교 장로.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대통령 공약사업 홍보물의 그럴듯한 그림으로 지역주민들을 속여 엉뚱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개발 욕구에 불을 붙여 국론을 분열시키면서 이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은 지극히 부도덕한 처사이다."(37쪽)


무모한 국책사업.... 법정은 그렇게 보았다. 법정의 판단은 알았고, 예리하게 분별했다. 


"경제만 있고 삶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아름다움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너무 삭막하고 건조하다."(43쪽)


성불하소서! 참으로 기이한 이 표현을 아직 이해 못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된다는 말이리라. 기독교에는 성령이 임하면 모든 사람들이 작은 예수라는 교리가 있다. 모든 종교는 다르듯 같고, 같으나 다르다. 그렇게 2020년 부처님 오신 날은 내게로 왔다.

한 해가 다 지나도록 손대지 않고 쓰지 않는 물건이 쌓여 있다면 그것은 내게 소용없는 것들이니 아낌없이 새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 - P16

모란이 무너져 내리고 난 빈 자리에 작약이 피고 있다. - P27

자연을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 P36

대통령 공약사업 홍보물의 그럴듯한 그림으로 지역주민들을 속여 엉뚱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개발 욕구에 불을 붙여 국론을 분열시키면서 이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은 지극히 부도덕한 처사이다 - P37

경제만 있고 삶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아름다움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너무 삭막하고 건조하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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