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란 허상이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소유의 개념이 신석기 시대 이후, 특히 청동기 시대 권련이 집중화 되면서 급속하게 일어난 현상으로 파악했다. 청동기 시대를 권력의 집중이 일어난 시기로 상정한 이유는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건축과 화려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개  BC 3000년 ~ BC 1200년을 청동기 시대로 본다. 물론 반대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시대를 구분할 때 돌, 간 돌, 동, 철 등으로 구분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역사를 바라보는 일반 역사학자들의 관점을 드러낸다. 역사에 무지한 내가 그들의 주관에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동조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역사의 발전을 믿지 않으니까.


집 근처 공원에서 나무를 타고 올라오는 담쟁이를 보았다. 한 컷의 사진으로 구도를 달리해 크롭했다. 첫사진은 가장 일반적인 수평과 1/3 구도이다. 가장 안정적이고 평온하다. 두 번째 사진은 중간을 잘랐다. 그리 좋은 구도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왕성함'을 강조하고 싶어 그렇게 했을 뿐이다. 세 번째 사진은 수직이며 역시 1/3 구도로 잡았다. 풍경은 사진은 구직 구도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수평구도가 안정감을 준다면 수직구도는 긴장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역동성을 드러내고하는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수직구도로 사진을 찍거나 크롭한다.


문득, 동일한 사진이고 피사체도 동일하다. 그런데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보이느냐에 따라 독자들은 달리 해석하게 된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비평적 관점을 지닌 이들이라면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다양한 관점으로 보려고 노력하기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도 종종 보이는대로 본다는 것은 흔하다.




역사도 이와 같지 않을까? 주류의 역사가들이 만든 관점을 따라 역사를 해석하고 저술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관점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다른 관점이나 특이한 관점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부정하려 한다. 이것이 인간의 사유의 게으름이다. 나 또한 기존의 것과 다른 것을 추구하면서도 그것들에 함몰되어 있다. 이상하면 일단 제외로 한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가 가진 생각과 관점에 합일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이것이 인류가 고민하지 않은 생각의 소유이고, 소유의 관점이다. 그러니 사유의 소유도 권력이고, 개인의 종말이다. 진정한 무소유는 혼돈. 그러니까 누구도 일치하지 않는 관점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까. 우린 인간들이고, 한국인이며, 한글과 한국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일정한 합의와 공유된 상징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이 또한 소유이다. 그러니 소유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은 사회인은 소유가 존재인 이유이다.


자 이제 세 권의 책을 읽어 보자. 추석이니 말이다. 하지만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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