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몇 달 전이다. 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하는데 '한국산문선'이 따라왔다. 샘플용이라 책에서 좋은 산문 몇 개를 엮어 보낸 것이다. 첫 산문은 이규보의 '우렛소리'다. 



우레가 칠 때는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뇌동한다는 말이 있다. ...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일이 있다. 나는 예전에 춘추좌씨전을 읽다가 화보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눈길을 떼지 못한 일을 잘못이라 여겼다. 그러다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렇지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달아나더라도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이것이 남몰래 미식쩍게 여기던 일이다.


이것이 과연 우레가 치면 놀랄 일일까? 순수한 이규보의 마음이 읽혀져 심히 부끄럽다. 나는 서시의 다짐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듯하다. 


하여튼 아내는 나의 손을 잡고 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고르라 한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한국산문선'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첫번째 책인 지종묵, 장유승 편역의 '이규보의 우렛소리'가 들어간 1권을 골랐다. 물론 이규보를 기억해서가 아니다. 난 곧바로 조선시대 산문을 읽고 싶었지만 아내는 시리즈는 1권부터 읽어야 한다며 골라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렛소리가 있다. 다음에 갈 때는 2권으로 살까보자. 


가을은 이렇게 깊어간다. 난 아내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니 철들지 않은 어린아이다.





























































출가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도를 실천하기가 어려우며, 도를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때를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66


출가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도를 실천하기가 어려우며, 도를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때를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66

사물에 집착이 있으면 해가 되지 않을 사물이 없고,
사물에 집착이 없으면 어떤 사물이든 덕을 이룬다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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