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쯤, 9월 25일 오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과 연락을 부탁드린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전날 새벽까지 공부하고 잠든 상태라 점심 때 겨우 일어나서 확인을 하게 되었다.
사실 9월 초에 공모전에 글을 제출했었고, 그 공모전의 주최기관 전화번호였기 때문에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마음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000님, 최우수상에 당선되셨습니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눈물이 흘렀다.
10년동안 참가했던 수많은 글쓰기 공모전에서 처음으로 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정말 좋아해왔고, 그래서 글쓰기 대회에도 부지런히 나갔었다.
글을 읽고 쓴다는 것에서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꼈지만, 그것과 무언가를 써서 인정받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하고 싶은 일과 잘 하는 일의 간극은 내가 절대로 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어 과목에서 전교 1등을 하고 국어 선생님께서 문제집을 선물로 주셨던 기억이 있다.
국어를 좋아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읽고 쓰고 이해하는 즐거움을 그때도 나는 알고 있었나보다.
그러던 어느날, 시를 써서 그림과 함께 시화 전시회를 하는 행사가 있었고 그 국어 선생님께서 내가 쓴 시를 읽고서는,
"너는 국어는 잘 하는데 시는 참 못 쓰는구나." 라고 하셨다.
나는 시를 너무 좋아하고, 정말 열심히 썼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게 못 쓴 시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때 마음의 상처를 조금 받았지만, 다른 친구들의 시를 읽어보니 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당시 우리 학교에서 글 잘 쓴다는 친구들이 몇 있었고, 그들의 시는 나 또한 감동받을 정도로 마음을 움직였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이것은 '작가' 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쓴 책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다.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등 각종 플랫폼에 어떤 이름 모를 이가 쓴 개인적인 글들을 읽으면서 무언가 감동에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은 적이 셀 수 없이 많다.
누군가의 진실한 생각과 그 안에 들어있는 아픔, 불안, 걱정, 희망, 사랑 등에서 책을 읽는 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한 인간의 생생한 기록을 포착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이름 모를 이들의 글이 왜 그렇게 좋은지.
오늘 살아있었다는, 잘 살아내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듯한 하루의 기록과 글.
그래서 나는 유독 수필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건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경험과 그것에서 느낀 것들이 글로 표현될 때의 반짝반짝함.
색을 특정할 수 없는 찬란한 빛깔을 평범한 사람들의 글에서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일상을 포착하는 글을 혼자만 알 수 있는 곳에 오랫동안 써 왔다.
그것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글이 된다는 건, 내게 있어 그 어떤 상보다도 가치가 있는 일이다.
대단한 글도 아니고, 그저 일하면서의 경험과 그것에서 느낀 것들을 글로 써낸 것인데.
공모전에 제출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리고 모든 행사가 끝난 지금은, 이 공모전으로 인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따뜻한 기억을 선물해주신 춘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의 직원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공모전의 작품을 발표하는 소통 콘서트를 준비하는 동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새로운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
저마다의 글을 무대 위에서 발표하는 것이 마냥 떨리기만 한 일인 줄만 알았는데,
각자의 삶 속에서 진심으로 대하는 것들을 글로 표현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무대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 매년 있는 학교 축제 때 무대 위에서 각자의 매력과 재능을 한껏 펼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무한한 동경을 가졌었다.
그때의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라서 무대 위에 올라가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곡들을 연주하고, 멋진 춤을 추고, 화려한 공연과 연극을 선보여주는 친구들을 보면서 참 부러웠다.
공부 잘 하는 것보다 그렇게 자신만의 다채로운 꿈들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친구들이 훨씬 더 멋져보였다.
그랬던 내가 서른이 넘어 무대 위에서 내가 쓴 글을 발표하는 것은, 중학생 때의 나는 전혀 몰랐던 일이다.
비록 지방의 작은 공모전이고, 작은 행사였지만 무대 위에서 각자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말하는 시간 동안,
나는 감동이 흘러넘쳐서 '언젠가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 순간을 여전히 기억할 것만 같아' 라고 생각했다.
10명의 공모전 수상자분들과 함께 무대에서의 발표를 준비하면서, 중학생 때의 학교 축제날이 계속 떠올랐다.
다같이 하나의 무대를 구성하기 위해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발표 대본을 가다듬고 리허설을 하면서,
지금까지 내 삶에서 전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었다.
비록 긴장되고 이 무대가 처음이지만 그 떨림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모든 순간들이 아름다워보였다.
정말 한 사람, 한 사람의 발표 때마다 넋 놓고 바라보았던 것 같다.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나눈다는 것.
인간과 인간이 나눌 수 있는 모든 것들 중에 그 대상이 '글'이 될 수 있음을 제대로 경험하게 되었다.
나의 생각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듣고 느끼고 나누는 것이 된다는 것.
줄곧 혼자서의 꿈과 역량을 키우고 품어온 내게 이런 소중한 경험을 선물해준 10명의 수상자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소통 콘서트에서의 발표가 끝나고, 집에 와서 수상 작품집을 읽었다.
다른 분들의 글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으면서 눈물이 흘렀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수필이 바로 여기에 있잖아.
자신만이 살아낼 수 있는 삶에서 포착한 생생한 감동과 진실한 마음.
자신의 삶을 공동체 속에서 예쁘게 가꾸어나가는 용기와 따뜻함.
세상과 연결되려는 강한 의지와 발걸음.
살아있다는, 살아내려는 무한한 생명력.
세상 모든 시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
그것들이 모두 수상자분들의 글에 담겨있었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들의 힘찬 날갯짓이 계속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날의 감동을 가슴 깊이 새긴다.
*소통 콘서트를 진행하셨던 이용석 아나운서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10명의 수상자들의 글과 그림을 현장에서 처음 접하시는 것일텐데도, 모든 분들의 발표가 정말 토크쇼처럼 편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질문 하나하나 세심하게 꺼내주셨다. 수상자분들의 나이대가 정말 다양해서 초등학생도 있었는데 아이가 부끄러워 하면서 발표를 머뭇거려도 민망하지 않게 아이를 기다려주시고 아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주시는 등 정말 베테랑 아나운서이셨다.
사실 나는 심장이 터질 정도로 무대 위에서 발표하는 것이 너무 떨렸는데, 이용석 아나운서님께서 정말 꽃보다 더 활짝 웃으시면서 함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응해주셔서 그래도 발표를 잘 마칠 수 있었다.
발표자들의 발표내용을 현장에서 즉각 듣고 적절한 질문을 바로 생각해서 말하는 능력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진행을 정말 잘 해주셔서 소통 콘서트가 더욱 빛이 났다. 좋은 곳에서 활약하시길 응원합니다!
->이 작품집에는 수상하신 분들의 작품 뿐만 아니라, 수상하진 못했지만 참가하신 분들의 작품도 실려있다.
"당사자, 가족, 이웃으로 더불어 살아가는/살아가기 위한 이야기" 라는 이번 장애인식 공모전의 취지에 정말 걸맞는 것 같아서, 참가한 모두의 이야기를 실어주신 배려에 참 따뜻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을 다 간직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ㅠㅠ
->공모전 수상자분들의 작품을 이렇게 2025년 달력으로 제작해주셨다. 우리들의 이야기로 2025년을 시작할 수 있음에 정말 감사드린다. 단순히 공모전에 참가한 것의 의미를 넘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셨다. 2025 달력은 안 사도 될 것 같다. 여기에 실린 모두의 이야기를 2025년에 두고두고 새겨야지!
->모든 글과 그림이 감동이었지만 이 그림이 하고 있는 말은, 정말 그림만으로도 깊숙히 와 닿았다. 똑같은 사과인데 비장애인이 건네는 것과 장애인이 건넬 때의 차이와 편견. 그것이 너무 아프게 느껴진다. 편견은 언제나 시시각각 깨부수어야 할 것이지만, 인간은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온전히 그 고통과 감정을 느끼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인 것 같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장애인식개선을 주제로 다양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고, 이번 공모전도 그러한 취지의 일환이다. 나에게는 별 일 아닌 것이 장애인에게는 세상 전부인 것임을. 자신의 소중한 것들이 부정되지 않고, 왜곡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그것은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존중받는 것, 존중하는 것.
->공모전 시상식에서 준비해주신 꽃다발. 너무 예뻤고, 꽃다발까지 주실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에 너무 감사했다.
곧 시들어버릴 것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정도였다ㅠㅠ
->오전에 리허설이 끝나고 행사 시작 전 점심 식사 때, 강대 정문에 새로 생긴 '단편'이라는 카페에 갔다.
단편이라는 이름이 너무 시적이고 예뻤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환한 햇빛을 맞이하며 엄마랑 함께 발표할 대본을 연습했다.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 같다.
->행사가 있었던 강원대학교 백령아트홀 주변의 꽃집 앞에 이렇게 낙엽을 하트로 모아 놓았다.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하면서 사진을 찍고선 바로 꽃집에 들어가 주황색 카네이션 3송이를 포장해왔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구매하게 된 주황색 카네이션 꽃다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에게 주는 꽃을 산 것이라서 기분이 참 신기했다. 그러나 더욱 신기했던 사실은 이 다음날, 알라딘 어플에서 이진명 시인의 '젠장, 이런 식으로 꽃을 사나' 라는 시가 오늘의 시로 소개되었다는 것.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하긴 부처님은 항상 빙그레 웃고 계시더라. 부처님, 다 보이시죠, 꽃 사는 이 미물의 속. 그렇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꽃이잖아요. 부처님도 예뻐서 늘 무릎 앞에 놓고 계시는 그 꽃이요. 헤헤, 오늘은 나한테 그 꽃을 내주었다 생각하세요. 맘이 맘이 아닌 중생을 한번 쓰다듬어주었다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