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과학상
임경순.이상원.신정완.조숙경 지음 / 하나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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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바깥세상과 완전히 인연을 끊지 않았다면, 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은 노벨상에 관하여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그 상을 타는 꿈도 꿔 봤을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야말로 생각하는 수준이 유치하기 짝이 없었던 시절에 알프레드 노벨 위인전을 읽었고, 중학교 때는 SF 공상 소설에 미친 듯이 집착하면서 터무니없이 노벨문학상을 꿈꿨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꿈과 거기에 사로잡혀 보냈던 시간은 철없던 시절을 부끄럽게 여기는 나를 괴롭게 하는 골칫거리가 되어 버렸지만, 내가 현실에 너무 실망하여 마음대로 꿈꾸던 어린 시절로 가끔씩 되돌아가고 싶어 할 때는, 미운 털이 박힌 골칫거리에서 순수한 열정을 반영하는 존재로 다시 화려하게 되살아났다.

 

도대체 노벨상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유명하고, 사람들은 그 상을 타고 싶어할까? 사람들이 지닌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겠지만, 인류가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을 안겨주는 상이기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설명한다. 그렇다면 왜 노벨상이 인류로서 가장 큰 영광을 안을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일까? 그리고 그 영광이란 무엇이며, 그 또 영광이 주는 혜택은 무엇이 있을까?

 

알프레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와 바리스타이드 같은 우수한 폭탄을 만든 까닭은, 건설이나 산업 현장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훗날 아인슈타인, 페르미, 오펜하이머와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 때문에 절규했던 것처럼, 노벨도 1차 세계 대전에서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한 대량 살상 전술이 개발되고, 그에 따라 예전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어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심하게 좌절했다. 사람을 죽이는 폭탄으로 벌어들인 돈이 자기에게 자꾸만 들어온다는 사실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괴로워하던 그는 죽기 전에 자기가 그때까지 모은 엄청난 재산으로 노벨상 재단을 설립하고, 해마다 인류와 문명이 지닌 온갖 문제점을 파헤쳐서 비판 의식을 고양하거나, 인류에게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실천하거나, 인류 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역사를 새로 쓸 만한 일을 해내는 이들에게 자기 이름을 딴 상을 주라는 예언을 남긴다. 항상 강조하듯이 거의 모든 논리 아래에는 삶이라는 대명제가 깔려 있으며, 문명사회에서 살든 그렇지 않든 인류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어떻게든지 살아가야 하는 공동 운명체이다. 그렇기에 노벨이 제시한 모든 기준은 인류 평화와 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으로서, 당연히 인류에게는 삶과 연결된 가장 큰 가치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노벨상에 관하여 이 책은 매우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노벨상이 무엇인지 말고도, 노벨상 수상 분야는 어떻게 나뉘어 있으며, 그 분야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설명도 보이며, 노벨상 관리 조직과 그 구성, 수상자를 뽑는 방법과 그에 관한 온갖 의혹, 수상자에게 돌아가는 영예 따위 온갖 정보가 풍성하게 들어 있다. 얼핏 보기에도 옛날 책답게 겉표지뿐만 아니라 책 자체가 누렇게 바래 있어서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책이든 사람이든 역시 겉모습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깨달았다.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내용은 수상자를 뽑는 방법과 그에 관한 온갖 의혹과 비판이었다. 아무리 노벨상이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문명사회에서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 권력 싸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리고 수상자를 정할 때만 하더라도 그가 이뤄낸 성과가 노벨상 수상 조건에 들어맞는 듯해서 수상자를 정했는데, 나중에 그 성과가 지니고 있는 단점이 드러나서 말썽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정치권력이 입김을 불어넣은 낌새를 가장 강하게 풍기는 가장 분명한 사례는 헨리 키신저가 받은 노벨평화상이다. 공산주의를 몰아내고 베트남에 민주주의를 삼겠다는 명목으로, 냉전 시대에 일어난 가장 끔찍한 전쟁 가운데 하나인 베트남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 세상이 비난 여론으로 들끊었다. 결국 그는 상을 받았지만, 그 때문에 노벨상이 지니는 절대 권위가 크게 실추되었다. UN이든 WTO이든 어떤 국제기관이든지 마음대로 치마폭에 휘감아서 요리해 버리는데, 제아무리 노벨상이라도 별 수 있겠느냐는 차가운 비판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버렸다.

 

수상 근거가 엉터리였거나 수상자를 뽑을 때 예측하지 못한 문제점이 드러나 문제가 된 가장 뚜렷한 사례는 DDT라고 볼 수 있다. 뛰어난 병충해 방지 능력으로 식량 생산량을 늘려 기아 퇴치에 크게 공헌했다는 까닭으로 DDT 개발자가 노벨상을 받는다. 그러나 생명과학 연구가 진전되면서, DDT가 토양과 지하수에 축적되어 결국 생태계와 사람에게까지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에 따라 노벨상 위원회는 DDT 개발자에게 준 노벨상을 돌려받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가 상을 내놓을 리가 없었고, 결국 노벨상이나 그나 명성에 크나큰 손상을 입었다.

 

이런 내용 말고도 온갖 의혹과 비판과 논란이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그런 내용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 책 자체가 그런 내용을 다루려고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제목 그래도 노벨상 가운데에서도 노벨과학상에 주목하고 있다. 인류 문명이 이와 같은 수준이 발전하는데 가장 큰 보탬이 된 것이 바로 과학 기술 발전이며, 노벨상을 이 세상에 남긴 알프레드 노벨도 과학 기술 연구로써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인류에게 공헌하고 싶어 했다. 게다가 지금 같은 무한 경쟁 시대에서 한 국가가 선진국으로 거듭나느냐 아니면 후진국으로 추락하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과학 기술력이다. 저자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그런 사실을 넌지시 드러내고, 예비 과학도들이 과학도라면 누구나 꿈꾸는 노벨과학상 주인공이 되고자 기초 과학 연구에 학구열을 불태우도록 자극하고자 이 책을 쓴 것 아닐까?

 

이 책 거의 맨 처음에 나오는 수상자에게 돌아가는 영예를 자세하게 설명한 부분은, 누구든지 읽으면서 정말 가슴이 뭉클해질 만하다. 인류로서 누릴 수 있는 영예가 정점에 이른 수준이 바로 노벨상 수상자를 환대하는 시상식과 만찬이다. 하지만 단순히 상패와 상금과 웅장하고 성대한 만찬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받는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금이나 화려한 만찬은 어느 정도 명성이 있고 규모가 큰 단체에서 주는 상을 받는다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일상일 정도로 돈이 제법 있는 사람들은 전혀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노벨상이 특별한 까닭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어떤 상보다도 훨씬 고귀한 영예를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영예는 자기가 지닌 온 혼을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쏟아 부어, 오로지 진실과 인류 공영만을 쉬지 않고 좇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 진정한 과학도라면 이 자연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무슨 원리로 그토록 조화롭게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지 알아내고자 하는 열정에 사로잡혀, 1분 1초가 아깝다고 여기며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그런 집념은 자연스레 인류 전체가 발전하는데 어떻게든지 보탬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학구열을 불태우는 진정한 학자들은 이 책 중간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모든 조언, 곧 과학도록서 지녀야 할 창의력과 비판력을 기르는데 쓸모가 있는 모든 방법을, 단순히 머리만이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지 자기를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로 자아를 끊임없이 정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성현들이 강조했듯이 학문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선 사대부들이 보여주었던 그 완고함과 시대착오라는 한계를 비판한들, 그들이 보여주었던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완고했던 그 태도 속에 숨어있는 올곧은 정신만큼은 분명히 되새겨야 한다. 옛날에는 학문을 하는 이들이라면 인격과 품위 또한 갖추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실제로 사대부들이 공부했던 사서오경을 포함한 여러 가지 유교 경전에서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리를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강조했다. 그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일단 학문을 하는 이들은 인격과 품위를 기본으로 갖췄다는 가정 아래 존경을 받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성현들과 학문을 모독한다고 혹독한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오랫동안 지속된 그런 사회 풍토 속에서 유교 문화와 성리학은 눈부시게 발전했으나, 일본에서 문명을 일으키는 주역으로 활약할 정도로 뛰어났던 민족 과학 기술은 '사농공상'이라는 논리 아래 천대받았다. 그러나 그런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장영실 같은 뛰어난 과학자가 나타날 정도로,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는 과학 역량은 근근이 그러나 확실히 유지되고 있었다. 민족주의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국사 교육에서 애써 강조하지 않더라도, 한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능력은 온 세상 사람들이 분명히 인정할 만큼 뛰어나다.

 

6.25 사변이라는 참화를 딛고 가까스로 일어선 대한민국은, 학문과 인격이 하나인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런 사회 풍토와,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던 뛰어난 능력을 모두 살리려고 힘써야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을 때만 하더라도 절박하다는 위기의식이 온 나라를 휘감고 있었고, 나라에서 과학도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에 따라 과학도들이 사회에서 안정된 자리를 보장받고 연구와 실무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수많은 인재들이 과학계열 대학으로 몰려들어 나라가 발전하는데 필요한 주춧돌과 대들보가 되었다. 한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능력을 살려 나라를 일으키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니, 옛 조상들이 고수한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가치가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중요하다고 인정받고 있는 것, 곧 학문과 인격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여기는 정신과 풍토를 어떻게든지 이어가야 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너무 암담하고, 사람들은 그런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여기 굳이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 IMF에서 금융지원을 받으면서 우리나라는 구조조정이라는 무시무시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러면서 일단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봐야 한다는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실용 학문만 장려하는 편협한 실용주의에 따라 사회 구조 자체가 크게 바뀌었고, 그에 따라 인문학, 철학, 자연과학 같은 기초 학문이 발전할 기반이 뿌리째 뽑혀버렸다. 실용 학문만이 세상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는 풍토가 널리 퍼지면서, 높은 지식 수준은 더는 인격과 고상함을 상징하지 않게 됐다. 신자유주의가 널리 퍼뜨린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사실 자체와 그에 필요한 것들만이 절대 가치를 지닌다는 끔찍한 논리는, 세상을 살벌하게 변하도록 했고 사람들이 함께 지니고 있는 기본 의식을 바꿔버려 인격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시간이 흘렀더라도 예전처럼 공과대학에 입학하여 우리나라를 빛낼 과학자나 기술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은 이들을 이 나라는 꾸준하게 길러냈는가? 누가 봐도 그렇지 않다. 졸업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공부한 것들을 나라와 개인이 동시에 발전하는데 보탬이 되겠다는 희망을 일찌감치 접어버린 과학도들은 한국과학기술원과 포항공대와 서울대 공대를 떠났다. 경찰대학과 서울대 의대와 법대, 경희대 한의대로 편입하거나 다시 입학한 그들에게서 과학 기술 연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찾아볼 수 있을까? 창의력과 비판 능력을 기르려고 기초 학문을 공부하고 각종 자기 개발 서적을 읽는 대신, 온갖 자격증 시험과 고시에 합격하는데 필요한 맞춤형 공부에만 매달리는 그들에게서 진정한 학구열을 발견할 수 있을까? 오로지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투지로 자아를 태워야 하는 그들이, 과연 공부를 하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순수한 학구열만이 그런 즐거움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들이 그럴 수 있을 확률은 0이라고 본다.

 

이 잔인한 사회가 그들이 지닌 소망을 얼마나 철저하게 무시했기에,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은 자신감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들이 그토록 처절하게 꺾이고 절망하며 그렇게 꿈을 접어야 했을까? 그들은 진정으로 연구에 자기가 지닌 모든 것을 바치며 한 나라, 나아가 인류 문명 발전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인물이 되고 싶은 꿈을 접으면서, 우리나라에 얼마나 크게 실망했을까? 오죽하면 외국에 나가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으며 인재로 인정받아 자리를 잡은 이들 대부분이 고국으로 돌아올 의사가 거의 없을까?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실망했던 것들을 외국에서 분명히 보상받을 수 있었기에, 외국에서 자리잡아 일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들을 다시 불러들일 능력조차 없을 정도로 희망이 없는 나라인가? 하긴 오로지 경쟁자를 물리치고 살아남겠다는 일념 아래 편협한 실무와 맞춤형 공부에만 무서울 정도로 집착하는 이들만 양산하는 사회에서 그들이 돌아오고 싶겠는가? 노벨과학상을 받아서 누릴 수 있는 영예를 갈망하는 건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일인만큼, 일단 먹고 살 일을 걱정하는데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린 현실 속에서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나라에 그들이 돌아오려고 하겠는가?

 

이런 형편이니 우리나라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동북 아시아에서 강대국 노릇을 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노벨과학상을 탄 유카와 히데키부터 2002년에 단백질 질량 분석법을 연구한 다나카 고이치까지 무려 일곱 명이나 된다. 우수한 기초 과학 기술력을 세계에 마음껏 뽐내는 분명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를 바탕으로 일본은 첨단 전자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휩쓸고, 세계 최강 군사 대국인 미국마저 최신 무기를 개발할 때 공동 개발 제의를 해야 할 정도로 막강한 국방 군사력을 자랑하여 대한민국 국군을 기가 꺾이게 하고 있다. 영화 '한반도'에서도 독도로 돌진해 오는 일본 해상자위대 함대와 맞닥뜨린 작전사령관 해군중장 이동재가, 참담한 심정으로 우리나라 해군이 지닌 전투력은 일본 해상자위대와 견주었을 때 3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대통령에게 털어놓지 않았는가?

 

일본이 이토록 우수한 기술력을 축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일의 즐거움'을 쓴 다나카 고이치를 생각해 보자. 그 책에서 자기는 노벨과학상을 타고자 실용주의에 따라 맞춤형 공부만 죽어라고 했다고 그가 밝혔는가? 연구소에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취직했고, 거기에서 연구직을 맡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는 책 제목대로 '일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그것이 앞에서 그토록 강조한 순수하게 학문을 파고들면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민족이 지닌 저력을 일으키는 데도 실패했고, 곧 학문과 인격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여기는 정신과 풍토를 이어가는 데도 실패했다. 실용주의와 신자유주의만을 강변하는 이들은, 과학 강국을 외치면서도 진정한 과학 선진 강국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 잘못된 사회 구조와 의식 구조를 근본에서부터 개혁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한계에 부딪칠 것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은 한 가지뿐이다. 과학도들이 순수한 열정에 따라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하면서 행복해 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 무작정 돈만 지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돈이 지원되는 과정도 투명하고 복잡하지 않은 구조로 구축되어야 하며, 나아가 사회 구조와 풍토 자체를 바꿔나가고자 몇 십 년 뒤를 생각하며 꾸준히 힘써야 한다. 그래야만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풍요로운 기반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 책을 쓴 작가도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그 꿈을 어쩔 수 없이 접어야 하는 사회가 아닌, 그 꿈을 이루고자 자기가 지닌 모든 열정과 영혼을 기꺼이 바치려는 의지를 뒷받침할 기반이 마련된 사회를 꿈꾸면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나갈 주역이 될 예비 과학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사회에서 살면서 무엇보다도 뛰어난 경쟁력이 될 창의력과 비판력을 기르는데 보탬이 될 방법을 절반이 넘는 쪽수에 담았을 것이다. 아무쪼록 저자가 원하는 대로 한국이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노벨과학상 - 영광의 꿈, 도전의 지혜'라는 제목 그대로 지혜를 바탕으로 도전을 거듭하여 영광스러운 꿈을 이루는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우리나라에서도 탄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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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나남신서 302
김구 지음 / 나남출판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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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들어오기 전에 나는 좌파 진영에서 한 해가 넘는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집에서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를 읽었기 때문에 우파 지식 체계를 철저하게 받아들여 구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우연히 좌파 진영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내 머릿속은 매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논리 체계가 충돌하면서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려워졌다. 철학까지 동원하자 과연 옳다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하면서, 아무 것도 판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쪽에 몸을 맡겨버리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어차피 각 논리 체계는 의심하지 않는다면 나름대로 정말 잘 짜여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움직이는 원리처럼 사회학 이론이 예외 없이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으니, 의견과 논리는 자기가 제시하기 나름이었다. 수 백 년 동안 수많은 지식인들이 제시한 주장과 축적한 자료로 뒷받침한 논리 체계는 방대하면서도 치밀했다. 한 해 넘게 그 지식 체계를 공부하면서 나는 한 때 그 방대함과 치밀함에 반하기도 했다. 의심할 필요가 없는 진리라고 여기고 새로운 것을 거침없이 받아들일 때는, 그야말로 배우고 익힐 맛이 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에 돌이켜 보면, 그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어떤 특정한 영역에서 벗어나 무엇이든지 객관으로 바라보려고 힘쓰지 않았기 때문에 챙기는 착각이었다. 그 착각에서 벗어난 뒤 나에게는 좌파든 우파는 완전하지 않아보였다. 각자 쌓아올린 논리 체계는 방대하면서도 치밀해 보였지만, 조금만 파고들어가 보면 서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마치 칼과 방패를 든 두 무사가 서로 방패를 맞댄 채, 상대가 하는 공격을 무시하고 열심히 상대를 찔러대는 것 같았다.

 

각 진영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사회 현상에 관한 주장과 근거 자체만 바라봐서는, 그 까닭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밑에 깔려 있는 사상을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작정하고 파고들었더니 유물론과 유신론에까지 손길이 닿았지만, 얼마 뒤에 굳이 거기까지 나아갈 필요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철학이 아무리 정교하고 복잡하게 발달했다 하더라도, 고도로 발달한 철학이 보여주는 온갖 학설과 논리가 나타나는데 가장 밑에 깔려 있는 원인은 바로 생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단순하기 짝이 없고 사람들이 어떤 주장과 생각을 펼칠 때 거의 무조건 밑에 깔려 있지만, 미처 인식하지 못하든 아예 관심이 없든 어쨌든 무시해 버리는 것이 바로 생존 욕구이다. 아무리 사람과 짐승을 나누는 기준이 이성이라고 하고, 이성 덕분에 인류가 지금과 같은 첨단 문명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사람도 생명체이기에 결국 살아야 하고, 살아남는데 필요한 논리를 가장 먼저 내세울 수밖에 없다. 이성이 생기기 전에 감정이 있었고, 감정은 살아남는데 필요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사람들이 좋다 싫다 따지는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그 근원에는 생존 욕구가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이 굉장히 복잡해졌기에 생존 욕구가 매우 발달한 논리 체계로 덮여 매우 그럴듯해 보일 뿐이다.

 

옳고 그른 것도 가만히 따지고 보면 결국 좋은가 싫은가 하는 문제에 연결되어 있고, 좋은가 싫은가 하는 문제는 앞에서 말한 대로 생존 욕구에 직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나는 좌파 진영에서 활동하면서 그들이 가르치는 많은 것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들이 보이는 친북 성향과 그를 뒷받침하는 논리에는 절대 동의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하지만, 그리고 결국 끌어안고 함께 살아야 할 한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북한을 무조건 감싸고 들고 현대한국사에서 벌어진 모든 비극을 미국 탓으로 돌리는 까닭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북한이 남한에 끼친 피해는 정말 엄청난 것이었고, 그에 따라 우리 민족은 자칫하다가 끝장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그런 것은 무시하고 미군이 저지른 양민 학살 따위 전쟁 범죄만 강조하면서, 미군이 저지른 범죄가 아닌 미국 자체를 증오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것에 관한 문제의식이 있으면 당연히 질문과 반박을 쏟아내려고 힘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실력이 부족했기에, 그들이 지니고 있는 허점을 정확하게 집어내지 못했고 궁지로 몰아넣을 수도 없었다. 몇 번씩 토론을 벌이면서 그들에게 내 어설픈 논리 체계를 들켜버렸고, 철저하게 깨지고 논박을 당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어떤 이들은 내가 아직 많은 것을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더욱 열심히 좌파에서 제시하는 교양을 쌓으라고 권유하고 비판했다. 몇 번이나 연거푸 꺾이는 바람에 문제의식이 사그러졌지만, 나는 여전히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내 뜻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근거를 명확하게 하고 싶었다.

 

그런 뚜렷한 소망을 가지고 나는 군대에 들어왔다. 신병교육대와 실무 부대에서 훈련병과 이병으로서 사회에서 생각했던 것들을 이어나갈 겨를과 힘도 없을 정도로 시달리면서, 그 소망은 잠시 묻어두어야 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 되어,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훈교육자료를 열심히 읽었다. 그러면서 다시 내가 사회에서 생각했던 그 문제 의식을 다시 일깨웠다.

 

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내가 바랐던 모든 논리 체계와 정훈교육자료 안에 들어 있었다. 군인 정신, 국가관, 안보관이라는 세 가지 큰 주제로 이루어진 정훈교육체계는 내가 좌파 진영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것들을 아우르고 있었다. 잘 짜인 훈련 과정에 따라 교육 훈련을 받으며 굵은 땀방울을, 때로는 피와 눈물도 흘리면서 나도 모르게 내 정신도 정훈교육체계를 받아들이는데 알맞게 변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정훈교육자료를 정신없이 읽었고, 정훈 퀴즈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 안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혼란이 가라앉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착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인정하기 싫은 사실과 고된 실무 생활 때문에 너무 많이 지치고 상심한 나머지 그저 다 집어치우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들과 그것들을 이루고자 고민했던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그럴 수 없었다.

 

다시 무엇이 문제인지 골똘히 생각하다가, 내가 항상 좌파와 우파를 아우르며 큰 바탕이 될 수 있는 사상을 찾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좌파든 우파든 나름대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좌파 교양 자료이든 정훈교육자료이든 어떤 것에 바탕을 두어야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찾아야 했다. 물론 앞에서 말한 올바른 결론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런데 살아남는 주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지금 이 땅에 살아서 숨 쉴 수 있는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나 혼자서는 절대 지금처럼 살아있을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까닭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있기 때문이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내 핏줄에서 뜨거운 피가 흐르고 내 살결이 숨 쉬게 해준 한민족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가만히 있어도 거저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한 무력을 지닌 군대만이 쉴새없이 요동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나라를 지킬 수 있으며, 나라를 지켜야 민족이 살고, 민족이 살아야 내가 살아 숨 쉴 수 있다.

 

정훈교육자료가 가치가 있는 까닭은 나라를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국군이 얼마나 중요한지 밝히며,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 바탕은 바로 민족이 살아나갈 분명한 방법을 제시하는 민족주의였다. 좌파 지식 체계를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들이 주장하는 국경을 뛰어넘은 프롤레타리아 국제 연맹 같은 초국가 단체는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나라가 없는 민족은 결코 이 세상에서 떳떳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자기 나라를 얻고자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 투쟁에 근본이 되는 것이 민족주의이거늘, 어찌 민족주의를 그렇게 쉽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좀 더 정확한 사실을 밝히자면, 우리나라 좌파나 우파나 시민단체나 군대나 분명히 그들이 믿는 정신과 교리 바탕에는 민족주의가 있었다. 그러나 좌파는 이상하게도 구시대 유물인 공산주의에서 비틀어진 주체 사상이라는 괴상한 사상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북한을 변호하는, 한민족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그러진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들은 김구 선생이 말한 자주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거기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민족주의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는 정훈교육 내용을 되새기면서 좌파 비판에 더욱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 '백범일지'에 담긴 김구 선생이 남긴 발자취와 그 사상을 돌이켜 보았다.

 

김구 선생은 근대 개화기에 제국주의 열강이 조선을 집어삼키려 하는 현실 속에서 성리학과 신학문을 모두 공부하며 성장했다. 대한민국이 일제 식민지가 된 시기에 청년기와 중년기를 보내며, 그 젊음과 열정을 오로지 '대한민국 자주독립'에 바쳤다. 다소 엉뚱하고 호방한 행동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 속에서 올곧은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에 대한 선생만의 열정이 싹텄다고 하니, 그저 함부로 웃을 수는 없었다.

 

몇 번이고 독립 운동에 가담한 죄로 옥살이를 하고 민족이 처한 슬픈 현실을 헤쳐나가고자 많은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리면서도, 오로지 자주 독립과 민족 국가 정립이라는 올곧은 사상을 포기하지 않은 분이 김구 선생이다. 안두희에게 암살당하는 참극이 벌어지기 전까지 김구 선생은 일제 식민지 통치, 소련 지원을 받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모스크바 삼상 회의에서 결정된 신탁 통치 따위 자주성을 심각하게 해치는 온갖 정책에 단호하게 저항했다. 그러면서 자주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데 온 삶을 바쳤다.

 

내가 김구 선생에게 특별히 주목한 까닭은, 그가 민족 자주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학문이든지 사상이든지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힘썼다는 것이다. 민족 자주성을 지키려면 실력을 갖추어 다른 세력이 절대 우리 민족을 무시하지 못하게 해야 했고, 그에 따라 편견을 버리고 어떤 사상과 지식이든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다면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군대에서 정훈 교육을 받은 뒤 일부 극좌파 사람들과 토론을 벌이면서 일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위정척사파를 대표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완고한 성리학자인 고능선 선생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그 뜻에 공감하였거늘, 어찌하며 감옥에서 신문물이 담긴 책을 읽은 뒤 생각을 바꾸어 고능선 선생을 비판하였을까? 과연 그런 김구 선생을 고능선 선생이 변절자라고 비판한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김구 선생에게는 '대한독립'이라는 대명제를 현실로 만드는 데는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만을 생각하는 민족주의만이 단 하나뿐인 척도였다.

 

정훈 교육 자료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충실하게 받아들인 나를 극단에 가까운 좌파들은 주저없이 변절자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슬퍼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가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온 현실 앞에서 얼마나 힘을 잃었는지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안타까웠다. 국제 정세는 엄혹하며 한반도는 그야말로 19세기 말과 같은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한 치 앞도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힘들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일그러진 민족주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며, 민족이 나아갈 길과 바람직한 민족주의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어릴 때 '백범일지'를 읽어보기는 했지만,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던 철없던 나는 그 속에서 어떤 깊은 뜻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백범일지'를 까맣게 잊고 지낸지 어느덧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극심한 이념 대립에 지쳐서 해답을 찾아나섰다. 그러다가 군대에서 다시 '백범일지'를 꼼꼼하게 읽으면서, 이 지긋지긋하고 끝없는 이념 대립을 끝낼 수 있는 더없이 곧고 높은 사상을 찾을 수 있었다. 보다 큰 사상과 보다 큰 실천! 모든 것을 감싸안아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가 함께 번영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는 사상을 김구 선생은 민족주의에서 찾았다.

 

그가 주장한 대로 좌우익 이념 대립이라는 것은 한때 일어나는 혼란밖에 되지 않으며, 결국 한민족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뭉쳐 이 세상에서 가장 굳건하고 찬란한 문화를 이룩하여 문명을 떨치는 것이야말로, 이 한반도에서 태어나 숨 쉬고 살아가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려면 민족주의가 지니고 있는 양면성을 항상 경계하면서 올바른 민족정신을 함양하는데 힘써야 한다. 군대에서 얻어갈 수 있는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한 가지가 뚜렷한 국가관과 민족정신이라고 한다. '백범일지'를 다시 읽으면서 그 사실을 더욱 뚜렷하게 확인하고, 나는 어떠한지 점검해 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어서 기뻤다.

 

우리가 확실한 국가관과 민족정신을 가지고 실력을 쌓고자 온 힘을 모을 때, 그때서야 김구 선생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바라는 '천지와 같이 넓고 자유로운 나라, 그러면서도 사람의 덕과 법의 질서가 우주 자연의 법칙과 같이 준수되는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주저하지 말고 우리 앞에 분명히 보이는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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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이재훈 2015-12-1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랜만에 공감되는 글을 봤습니다
 
살수 - 전2권 세트 -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를 너무 많이 되풀이해서, 이제는 그 말을 들어도 아무 느낌도 없다. 그저 정해놓은 목표를 이루고자 새로 글을 쓰려고 하면서 이번에는 어떻게 그럴 듯하게 글을 시작할지 고민할 뿐이다. 병장을 달고 머리가 맑아지는 가을이 찾아왔는데도 업무 능력이 예전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 같아서, 그 고민은 더욱 깊었다. 게다가 이 책 '살수'는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나도 쉽게 술술 읽었기 때문에, 독후감을 쓰려고 오래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에 시달렸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만 적어도 글 한 편쯤은 뚝딱 써 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고민하다가 마침내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애당초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품었던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재미있게 읽었던 때가 2002년이었고,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건과 그 책을 연관 지어 독후감을 쓰면서 김진명을 비판했던 때가 2005년이었고, 이 책 '살수'를 읽고 이 독후감을 쓰는 때가 2007년이다. 그 세 시기와 그 때 일어난 일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하고 글로 조리있게 정리하면,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다.

 

2002년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정신없이 빠져들면서 나는 김진명이라는 작가를 처음으로 알았다. 그가 만들어 놓은 가상 세계는 현실과 견주는 것이 모욕일 정도로 현실에는 없는 너무나도 짜릿한 쾌감을 안겨다 주었다. 사람을 무서울 정도로 강하게 빨아들이는 그 흡인력을 소설 속에 불어넣는 창작력만큼은 정말 인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겨낼 수 없다.

 

그 가상 세계 속에서도 현실과 마찬가지로 힘없는 한국은 강대국들에 둘러싸인채 항상 손해를 보고 국민들은 그런 나라를 저주한다. 하지만 그런 국민들 사이에서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영민한 영웅이 나타난다. 그 영웅이 한국을 둘러싼 엄청난 계략과 음모를 파헤치고 때로는 그에 정면으로 맞서다가 절체절명과도 같은 위기에 수없이 처하지만, 그는 어떻게든지 위기를 넘기고 자랑스러운 조국에 막대한 공을 세운다.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 핵확산방지조약) 탈퇴라는 초강수를 두며 핵무기 개발을 박차한 북한과, 그에 발끈해 한국판 바벨론 작적을 세워 영변을 폭격하려고 했던 미국 때문에 최악으로 치달은 북핵 위기가 1993년과 1994년에 우리나라를 휩쓸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그 때 세상에 나왔다. 남한과 북한이 힘을 합쳐 나라 안에 있는 매국노를 주살하며 핵무기를 개발하고 그 핵무기로 철천지원수인 일본을 꼼짝 못하게 한다는 내용은, 강한 힘을 원하는 국민들을 강하게 자극하고 달아오르는 무좀과도 같은 간지러움을 기가 막히게 잘 긁어 주었다.

 

그 엄청난 마력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고, 그 마력에 고등학교 2학년 철부지였던 나는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그 가상 세계가 주는 짜릿함에 취해 있던 나는 2002년에 벌어진 한일 월드컵에도 빠져 있었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그랬다. 모든 언론은 온통 대한민국 축구 대표 선수들과 붉은 악마들이 이룬 붉은 물결을 찍은 사진과 영상과, 열광과 감동으로 가득한 도가니를 온갖 미사여구로 표현한 기사만, 1면부터 끝까지 실었고 온종일 틀어댔다. 사람들은 좋은 말로야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회복하고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엄청난 힘을 발견했다고 하지, 한없이 나쁘게 말하자면 이성을 잃어버려 아무 것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장 뚜렷한 사례가 서해 교전이라는 엄청난 비극이 쥐도 새도 모르게 묻히고 말았다는 것이다. 월드컵만 아니었다면 서해 교전 같은 엄청난 피해를 입은 전투는 1999년에 일어난 연평 해전보다도 훨씬 더 격렬한 반응을 일으켜, 마침 2002년 12월에 예정되어 있던 제 16대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한국 전반에 엄청난 파국을 몰고 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묻혀버렸다는 것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이 힘이 제대로 드러나면 상식이고 뭐고 다 무시해 버리는 엄청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고 볼 수 있겠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 사람들과 똑같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한일 월드컵에 아무 생각 없이 열광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와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눈과는 또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면서, 내가 그 때 왜 그랬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여러 글에서 차곡차곡 쌓이다가,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독후감을 쓰면서 모습이 뚜렷해졌다.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건 때문에 우리나라 과학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논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밝히려면 자체 검증으로써 쏟아지는 의혹을 풀어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과학도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논문이 띠는 진실을 파고들며 의심을 풀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과학과 사회 사이 관계와 과학이 국익에 진정으로 보탬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언론이 너무나도 띄워 놓아 국민 영웅 반열에 들어선 황우석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월드컵 대표 선수들이 그랬듯이 성역에 자리를 잡았다. '줄기세포교'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사람들은 과학이 기본으로 지켜야 할 원칙을 껌 씹고 버리듯 내팽개치고, 황우석에게 쏟아지는 모든 비판을 감정에 치우친 대응과 논리로 가로막았다. 과학자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의심과 검증을 차단한다는 건 상식 밖이었고, 그만큼 뭔가 구린 것이 있다는 의혹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황우석이 발표한 논문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최소한 기초 생물학 지식도 없는 애꿎은 국민들이 그토록 심하게 발악했기에 외국에서도 그 희한한 현상에 주목했고, 결국 대한민국 과학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안에 숨어 있는 광기까지 온 세상에 알려지면서 망신살이 찬란한 일곱 빛깔 쌍무지개로 뻗친 것이다.

 

오랫동안 외세에 시달려 온 한반도에서는 영웅이 필요했다. 그것은 수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소망이었다. 특히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계기는 일제 강점기였다. 36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식민사학으로 한국사를 비틀고 한민족을 영원히 지배하려는 음모에 맞서고자 민족주의가 극도로 발달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한국사 속에서 나타난 민족 영웅을 조명하는 사업 또한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일본에 맞서 싸우는 투사들을 칭송했고, 민족주의 사학이 조명하는 옛 영웅들에게 열광했다.

 

그 집단 심리는 근현대사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본과 중국은 여전히 한국보다 강한 국력을 자랑하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고, 사람들은 그런 두 나라 앞에서 떳떳하게 자기 할 말 다 하지도 못하고 눈치를 보는 대한민국이라는 자기 나라 때문에 열이 받쳐 견딜 수가 없다. 그렇기에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국위를 선양하는 것이라면 사람이든 집단이든 현상이든 무엇이든 간에 환장을 한다.

 

환장을 한다면 이성이 똑바로 작동할 리가 없다. 박정희 대통령 증후군, 2002 한일 월드컵,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건. 이 세 가지 현상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일그러진 광기를 추악하게 드러냈다. 그 광기는 치켜 올릴 대상을 한없이 떠받들어 신과 같은 격까지 올려놓은 다음, 그에 도전하는 모든 것을 오로지 잔인한 폭력으로 짓밟고 무너뜨린다. 그게 안 되면 아예 무시해 버린다.

 

노무현 대통령을 그토록 격렬하게 싸잡아 비판하는 이들이 왜 대통령 욕 한 마디 잘못했다가 온 가족이 남한산성으로 끌려가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을 비판하는 모든 논리에 격렬하게 반발하는가? 2002 한일 월드컵이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앞으로 만들 문제점을 진지하게 고찰해 보자는 주장이, 2002년에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는가? 황우석 교수가 발표한 논문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과학 기법과 논증으로써 성실하게 지적한 이들에게 어떤 이들이 벌어졌는가?

 

중국이 내놓은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태도를 봐도 그렇다. 평소에 그토록 서로 물어뜯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한 목소리로 중국을 규탄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 그지없다. 신문을 읽으며 동북공정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은 국민들은 분노하고 중국을 응징하자고 목이 터져라 외친다. 이런 언론과 국민을 보면서 무엇이 떠오르는가? 2002 한일 월드컵 때 언론과 국민을 하나가 되게 했던 그 붉은 광기(!)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 넓은 중국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라도 금방 휩쓸어버릴 것 같은 그 붉은 악마 말이다.

 

이 책 '살수'를 읽으면서 나는 앞에서 말한 그 '붉은 악마'가 내 안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 악마는 오로지 뜨거운 가슴만 지니고 있을 뿐 차가운 머리는 흔적도 없다. 그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그 시간 동안만큼은 한국 사학계에서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방법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생각해 볼 수도 없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대표들이 거두는 눈부신 승리를 지켜보면서 권순범과 이미현과 홍명보와 박지성에게 열광했듯이, 중국 대륙에서 일어난 거대한 제국 가운데 하나인 수가 일으킨 113만이라는 엄청난 대군을 휩쓸어버린 을지문덕에게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빛처럼 빠져들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는 것이 있어야지 김진명이 그려낸 을지문덕이 과연 고증학이 밝혀낸 을지문덕과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짧게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내가 을지문덕이라는 장수에 관하여 알고 있는 것은 공교육 과정에서 한국사 교육을 받은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이 살수대첩으로써 수나라 113만 대군을 패퇴시킨 고구려 명장이라는 사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김진명이 서문에서 지적한 대로 중국이 동북공정을 일으켜 고구려사를 중국사 안으로 통째로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고구려를 살린 명장에 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건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무지를 질타하듯이 김진명은 을지문덕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지 낱낱이 밝히고 있다. 중원을 통일하는 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측에 따라 여러모로 대비한다. 숨어 있는 무사들을 발굴하여 고구려군을 이끌어갈 장수로서 실력을 기르도록 장려하고, 각 요충지뿐만 아니라 전시에 적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경로에 요새를 증강하여 그 안에 식량과 병장기를 비축하고, 고구려 영역을 늘리고자 백산말갈이나 돌궐 같은 소수 민족을 포용하도록 영양왕에게 건의하고……고구려에서 '천 년의 영웅'이라고 칭송받을 만하다.

 

을지문덕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양광에 관해서도 많은 내용을 썼다. 수양제로 잘 알려진 양광이 얼마나 영민하고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야사까지 곁들여 실감나게 보여준다. 거기에 덧붙여 수나라가 서고 수양제가 즉위하여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113만 대군을 동원하는 과정을 환상소설과 실화소설을 넘나드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문체로 보여준다. 이는 이 무지막지한 수양제를 꼼짝없이 패퇴하게 한 을지문덕이라는 인물이 지닌 신비로움과 영웅 자질을 한 층 더 끌어올리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전체 내용을 돌이켜 볼 대 그 의도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제목을 '살수'로 붙여놓고도 정작 살수 대첩 장면은 책 전체 내용과 견주었을 때 너무 적어서 아쉽다는 평이 많다. 하지만 김진명은 그런 평이 나올 것을 각오하고, 작정하고 을지문덕을 부각시켰다고 본다. 그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동북공정에 맞서야 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중국 대륙을 무대로 삼은 '삼국지'를 모르면 저능아 취급을 받기 십상이지만 한반도에서 벌어진 '삼국지'를 모르는 데는 너무나도 관대한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한심한 현실 속에서는 웬만큼 큰 자극이 아니고서는 사람들이 감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가 지니고 있는 주특기를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내며, 얼개와 내용도 그렇게 균형이 맞지 않게 짰다고 생각한다.

 

일단 소설로서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도 있어서, 역시 김진명이라는 평을 수없이 이끌어냈다. 하지만 역시 김진명이라서 그런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효과를 '살수'에서도 이끌어낸다는 건 비판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광기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해 보자.

 

영양왕이 내린 모든 부귀영화를 정중히 거절하고 낭림산으로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은 을지문덕이, 자기를 따라온 건중에게 마지막으로 남겨 세상에 알려진 말은 다음과 같다.

 

 

"저들은 반드시 돌아온다. 역사의 허울에 사로잡힌 이들, 저들은 머리 위에 고구려를 놓아둔 채 살아가지 못한다. 언제든 그 허울을 벗어버리고자 다시 돌아올 것이다.

 

건중, 다음은 네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다른 후손이, 또 다른 후손이……영원히 지고 나가야만 할 업이다.

 

남을 침하지도, 그렇다고 당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것이 고구려의 업인 터, 그러기에 살수에서 내가 지어야만 했던 업이야."

 

 

그에 따르면 우리는 여전히 그 업을 짊어지고 있으며, 지금은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전쟁 도발 공작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을지문덕이라는 영웅을 보며 그저 통쾌함만을 느끼고 말 것인가? 그 을지문덕이 고구려인이로 그런 고구려사는 당연히 한국사라는 그런 당위론에 만족해, 고구려사가 왜 한국사인지 도발하는 동북공정에는 아예 귀를 닫거나 감정에 치우친 반응만을 내놓을 것인가?

 

절대 그러면 안 된다. 정신 바짝 차리고 동북공정을 분쇄할 온갖 논리를 고안해 내도 시원찮을 정도로, 현실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광기는 여전히 개인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이성을 가진 주체라는 사실을 잊게 하고, 온갖 다양한 견해를 편견 없이 진지하게 검토할 여건을 허락하지 않는다. 고구려사는 한국사라는 대명제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에 들어가 있으며, 그 성역에 도전하는 견해는 무시당하거나 심지어 몰매를 맞는다. 이 책이 그 성역을 더욱 견고히 하고 사람들이 다양한 견해를 검토할 능력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지적을 되새겨야 한다.

 

그리고 분명히 알아둬야 할 사실이 있다. 앞에서 말한 그런 추악한 광기가 통하는 범위는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 안으로 한정되어 있다. 엄혹한 실리주의만이 진리인 국제 사회에서 그 따위 광기가 통할 확률은 0이며, 대한민국은 그 광기를 물리력으로 변환할 국력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

 

위에서 들은 몇 가지 예 가운데 한 가지를 다시 들자면, '줄기세포교' 광신도들이 그토록 광분하면서 사정없이 짓밟을 수 있었던 세력은 대한민국 사람들뿐이었다. 그 광기는 힘이 통하는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힘이 통하지 않는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하다. 비겁하고 역겹기 짝이 없는 것이다.

 

만약 그 때 등장한 온갖 음모론 가운데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김선종 연구원과 미즈메디 이사장 노성일과 섀튼 박사가 미국 지원을 받아 한통속으로 음모를 꾸며 황우석 교수를 몰락시켰다는 미국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사람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때도 우리나라 반대파들을 철저하게 짓밟듯이, 미국에 그렇게 무작정 맞서자고 그랬을까? 실제로 그렇게 떠들기는 했지만, 그들이 정말 그렇게 했는가? 힘이 없는 정부를 욕하기만 했을 뿐이다. 아직도 인터넷에 남아 있는 황우석 교수 지지 모임이 현실을 체념했으면서도,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발악하는 추태밖에 남을 것이 없다. 미국이라는 남에게는 그 광기가 통할 까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동북공정 주체인 중국도 우리가 광기를 내뿜어봤자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하고 강한 상대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좀 더 냉정하게 현실에서 통하는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광분한 집단에서 나오는 화는 집단 구성원들 머리를 뜨겁게 해서,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일반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관한 반성과 일반론을 뛰어넘는 다양한 대안을 분석하고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가장 뚜렷한 예를 들자면 고구려사는 당연히 한국사라는 일반론을 뛰어넘는 변경사라는 개념을 민족사학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당연히'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사람들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여지조차 남기지 않고, 일반론이 지니고 있는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 일이 전혀 진척되지 않는다. 임지현 교수는 '적대적 공범자들'에서 이런 현실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라고 개탄했는데, 매우 일리가 있다.

 

굳이 동북공정 때문에 벌어지는 모습만 그런가? 어떤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시민운동과 개인 차원에서 정말 현실성이 있는 주장을 내놓고 그에 따라 차분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만큼 인터넷과 시민 단체가 발달한 나라가 도대체 왜 이럴까? 이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일그러진 광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광기를 생각하면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다고 비관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동참하고 싶어진다.

 

단순한 정서 환기 효과가 주는 짜릿한 집단 자위행위는 그만둬야 한다. 정서 환기 효과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는 건 무시할 수 없는 긍정할 만한 효과이다. 나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이 책 '살수'를 읽으면서 그것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이성을 잃어버린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그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앞에서 지겹도록 이야기했다. 영웅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심리 자위행위를 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주체답게 행동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동북공정 같은 거대한 역사전쟁에서 승리할 진정한 힘이 나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다음 내용은 반드시 기억할 만하다고 생각해서 여기에 쓰며 이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민족사학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에도 나는 여전히 희망을 걸고 있으며 민족사학 비판이 그 가능성마저 꺾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째, 고조선이 중국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고 심지어 중국을 압도하기도 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중국에서 수 천 년 동안 절대 영향력을 행사한 유학 경전에서 그 증거를 들고 있어 사람들 눈을 번쩍 뜨게 한다.

 

이 소설에 따르면 양견은 진숙보가 통치하던 진(晋)을 멸망시키고 중국 대륙을 통일한 뒤, 그 위세에 걸맞은 제례를 지내려고 했다. 그런데 제례에는 선례가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제례에 관한 옛 기록들을 검토하다가, 한 사관이 발견한 '상서'라는 문서에 있는 한 문구를 보고 양견은 화가 폭발하고 만다.

 

'요임금을 이은 순임금은 즉위에 즈음에 먼저 예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동방의 군자국에 사신을 보내 인사를 올렸다.'

 

'상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는데 그 동방에 있는 군자국이 고조선이며 그 후계자가 바로 고구려라는 것이다. 곧 수나라가 중국 대륙을 통일했다고 한들 고구려는 수나라에게 무릎을 꿇기는커녕 수나라와 대등하거나 심지어 먼저 예를 갖추어야 할 상국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안 그래도 중국 대륙을 통일한 뒤 천하를 얻었다고 기고만장해 있었으며 누구보다도 권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양견에게, 이는 황제로서 보여야 할 위엄마저 내팽개칠 정도로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양견은 광분하여 사관을 능지처참하려고 하지만, 사관은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죽여도 역사 속 진실은 묻을 수 없다고 말한다. 양견이 사관이 그토록 당당한 까닭을 묻자, 사관은 놀랍게도 그 당시 중국에서 절대 권위를 과시하는 유학 경전인 '시경(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사사오경에서 오경이 '서경', '주역', '춘추', '예기', 그리고 바로 이 '시경'이다)에 그 진실을 드러내는 구절이 있다고 말해 양견을 경악하게 한다.

 

'시경' 한혁편(韓奕篇)에 나오는 한후(韓侯)라는 인물은 고조선을 이끄는 지도자인 단군을 뜻한다. 동한시대 왕부(王符)거 지은 '잠부론(潛夫論)'에서는 한후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동쪽에 있던 나라를 통치해다고 한다. 한후가 하 • 은 • 주를 이은 중국 정통 왕조인 서주 왕실을 방문하자 서주 왕이 그를 환대하고 자기 질녀를 주었으며 조선이 추와 맥 지방을 다스리는데 협의했다고 '시경' 한혁편에 나온다. 그렇다면 추와 맥 지역이 서주와 고조선을 나누는 국경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추와 맥 지역은 당시 중원을 차지하고 있던 수나라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양견은 자존심이 구져질 대로 구겨져 두 눈을 부릅뜨고 외친다.

 

"고구려! 이 괘씸한 놈들. 너희가 감히 요순과 대(代)를 같이하는 놈들이라고? 내 이놈들을 가만두고는 절대 천자라 일컫지 않으리."

 

둘째, 순임금이 자신을 낮추어 서제라 하였고, 단군을 일컬어 동제라 하였다는 것이다. 전례에 따라 양광이 서제와 동제에게 둘 다 제사를 지냈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소설 속에서 양광이 유사룡이 조언한 바에 따라 평양에 있는 동제 능인 단군릉에 대선사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는데, 지순한 몸인 대선사가 백 년에 한 번씩 나타난다는 신녀수를 만나는 바람에 하늘을 노하게 하여 양광은 하늘을 거스른 죄인으로서 동제를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천명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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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좋은생각
김미숙 외 좋은님들 지음, 김동화 그림 / 좋은생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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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처음 중대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그 무섭다는 해병대 실무 부대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 지 몰라,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도대체 왜 혼나는지 알 수도 없으면서 그저 계속 욕먹고 때때로 얻어맞기도 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서, 내가 선임들이 가르치는 것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되새겨보고 행동하느라, 후반기 교육 기간에 한창 타오르던 학구열을 일단 숨겨야 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상병 6호봉 때부터 마음대로 책 읽고 공부할 수 있다면 호봉제 때문에, 그저 선임들 눈치만 보며 벌벌 떨던 나는 공부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틈틈이 중대 안에 책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만 엿봤다. 그러다가 당직분대장에게 처음으로 책을 읽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뒤, 나는 허락을 받고 시간이 날 때마다 중대 안에 잡지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허락받고 책을 읽는다고 해도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고, 일병 선임들 눈치를 계속 봐야 했기에, 꼼꼼하게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하는 책은 사실 읽기가 힘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일단 가볍고 읽기 쉬운 잡지들부터 읽기 시작했다. '좋은 생각', 'Newsweek', '세아이(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샘터' 따위 온갖 잡지는 나름대로 많이 있었다. 그 모든 잡지를 대대 인사과에서 한 달마다 꼬박꼬박 지원해 주고 있어서, 실무 부대에서 병들고 지친 내 마음을 달래는데 정말 좋은 양식이 되었다.

 

그런 잡지는 매우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잡지를 읽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나는 내가 읽은 모든 것을 어떻게든지 기록해 놓는 버릇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군대에서는 그런 잡지들을 읽고 나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뒤늦게 기록하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맺힌 눈물을 느낀 뒤 집어치워버렸다.

 

너무 갑작스럽고 난데없는 일이었다. 마음 속에서 누군가 나에게 묻고 있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가. 그 가운데 살기 팍팍한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로 가득한 책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그런 물음을 던지다 보니까 그 기록이 아무 뜻이 없어진 것이다.

 

그런 책은 몇 권을 읽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몇 십 권을 읽어도 그에 관해 각자 다른 독후감을 쓸 능력이 없을 뿐더러, 설사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그 때 느낄 수 있는 진한 감동과 그 글어귀와 정감 넘치는 그림이 내 영혼에 배여 그 일부가 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갑자기 몰려온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너무 놀랐다. 존재가 지닌 어두운 면을 바라보는데 극도로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그 느낌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 정도를 측정하고 싶어서 양자의학과 소립자 물리학에 관한 서적과 자료를 찾아 뒤적거렸지만, 이런 때는 그런 것이 정말 부질없다고 느끼면서 다 집어치우고 싶다. 그런 기준은 차라리 찾아내지 않는 것만도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그렇게 몰라야 하는 것이 있고, 알아도 모른 척 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왜 내가 굳이 그것을 알아내려고 공부해야 하는가. 그 기준을 알아내는 순간 인류는 파멸할 것이 뻔한데.

 

부질없는 짓은 그만두겠다. 굳이 내가 지금까지 읽은 아름다운 글로 한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감상 방법론이고 예술 사조고 뭐고 생각하지 않고 감상한(?) 좋은 그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좋은 음악……이 모든 것이 얼마나 내 영혼을 고양했는지 돌이켜 보면서, 그 느낌을 내 열 손가락에 담아 이 글을 쓴다. 그렇기에 이 글에는 상당히 특별한 뜻을 주고 싶다. 당신에게 특별한 뜻이 있는 꽃이 되고 싶다고 말한 김춘수처럼 나도 그러고 싶다.

 

한 가지 엉뚱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지금이야 웅진주식회사에서 해군과 해병대 장병들에게 10만 권이 넘는 많은 책을 기증에서, 우리 중대에도 겉표지가 매우 세련되고 내용도 알찬 책이 많이 들어와 있기에, 나름대로 많은 자유 시간에 책을 마음껏 읽으면서 군대 안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달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가끔씩 잡지를 정신없이 읽던 이병 시절이 가끔씩 그리워지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여인 가운데 한 명인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세상은 너무나도 끔찍하지만, 또한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했다.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을 것 같은 괴물 같은 자본주의에 도전한 수많은 사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사회주의가 현실에 나타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모순이 생기는 과정을 바라보며 얼마나 괴로워했던가. 그 당시 가장 뛰어난 사회주의 이론가로 칭송받으면서 어떤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여전사처럼 보였던 그녀도, 아늑한 가정과 아이를 같고 싶어했고, 세상에 사소한 아름다움을 바라볼 줄 알았던 아름다운 한 여인이었다.

 

그녀도 '샘터'나 '세아이'와 같은 소박하지만 더없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잡지들을 분명히 읽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가 그런 잡지를 읽는 모습을 떠올렸다. 공산당 대회에 참가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은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좌파 지식 체계를 공부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으면서도, 여러 대회와 모임과 투쟁판에 내 의지 반 남 의지 반으로 돌아다녔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노래를 불렀던 김윤아에게 빠져들던 때도 생각났다.

 

로자 룩셈부르크에게나 나에게나 결국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삶은 그저 이상으로만 남아있어야 했던 것인가. 치열한 논쟁과 이상과 현실이 멀어지는 현실에 좌절하고 지쳐버린 이들은, 자기를 잠시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불안을 물리칠 방법을 이런 풍요로운 잡지를 읽으면서 찾아야 했던가. 그런 시절이 내가 이등병일 때였기에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라고 봐야 하는가. 여전히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고,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상주의자이며 감상주의자이니까 말이다. 갑자기 '자본축적론'을 읽기가 싫어졌다. 지금은 그저 '좋은 생각'을 읽으며 '좋은 생각'을 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따뜻하고 뜻깊은 인물이 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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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다이어리엔 뭔가 비밀이 있다 CEO의 비밀
니시무라 아키라 지음, 권성훈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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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월) 03:00 ~ 06:00>

 

내가 항상 일어나는 시간에 오늘도 어김없이 일어났다. 아무리 늦어도 오전 5시에는 일어나려고 한다. 습관이 되어 있고 어제 오후 9시쯤에 일찍 잤기에 일어나기가 어렵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으므로, 조용히 세수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차려먹는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간단하게 체조를 하며 잠을 몰아낸 뒤, 오전 6시까지 약 3시간 동안 연재 원고 두 편과 프로그램 진행 대본 한 편을 썼다.

 

새벽에 되도록 많은 시간을 마련해 일하는 것이 내 철칙이다. 새벽에는 웬만하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일에만 몰두할 수 있다. 날이 밝으면 출근 준비 때문에 몇 가지 일에 몇 분 단위로 신경을 써서 움직여야 하므로, 안 그래도 집중력이 산만한 나에게는 새벽만큼 일에 집중하기 좋은 때도 없다.

 

원고 마감 기한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절대 딴 짓을 하지 말고 부지런히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매우 산만한 편이라, 일에 가장 오랫동안 집중한다 하더라도 1시간을 넘기기가 힘들다. 그래서 대개 1시간을 15분 단위로 끊어서 서너 가지 일을 번갈아하면서 한다. 어쩌다가 집중력이 좋아서 일에 정신없이 몰두하면 55분 정도 일하고 5분은 몸을 움직이는 잡일을 하는 방법도 쓴다. 이는 입시 공부를 할 때도 즐겨 썼던 방법이다.

 

어제 가족들과 놀이 공원에 가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고, 마음놓고 맥주를 즐기고 목욕도 깊이 자서 스트레스를 완전히 풀었으므로, 일도 술술 잘 되었다. 3시간 동안 기분 좋게 원고를 쓴 뒤 이번 한 주도 즐겁게 보내자면서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7.10(월) 06:00 ~ 10:30>

 

새벽에 일하면서 약간 쌓인 피로를 부지런히 출근 준비를 하면서 쫓아냈다. 어디에 가든지 평소처럼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준비물이 갖춰진 가방은 반드시 들고 다닌다. 한 해에 100만 엔이 넘는 교통비를 쓰고 200일 정도는 호텔에서 묵는 터라. 바깥에서도 집에 있을 때처럼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절대 지금과 같이 많은 일을 해낼 수가 없다.

 

오늘은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들어찬 수업을 펼쳐 오늘 해야 할 일을 살펴보고 미리 짜 놓은 계획을 간단하게 검토했다. 돌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도 나름대로 다 계획해 놓았다. 계획대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머릿속으로 그려본 다음, 앉은 자리에서 쓰던 원고를 꺼내들었다. 자리를 맡아서 잠을 쫓고자 간단하게 몸을 푼 뒤 부지런히 쓰기 시작했다.

 

오늘은 히로시마에서 강의를 해야 하므로 신칸센을 탔다. 이런 때는 일찍 일어나서 완행 신칸센을 타면 급행 신칸센보다 값이 싼데다가 자리도 확실하게 맡아서 원고를 쓸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고 아주 좋다. 어차피 나에게 이동하는 시간은 그냥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일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동 시간이 길어도 그 시간에 일만 제대로 한다면 상관없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도 계속 시간을 쪼개 집중하면서 원고 여러 편을 계속 썼다. 도저히 집중이 안 되면 기분을 바꿀 겸에 아침신문이나 잡지를 간단하게 읽기도 했다. 읽으면서 중요하다 싶은 기사는 바로 오려서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강의는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하는데, 10시에 히로시마에 도착하면 시내에서 이동하는 시간을 15분 정도로 예상하므로, 계획대로라면 오전 10시 15분에 강의실에 도착할 수 있다. 약속 시간 15분 전에 도착해야 지각에 신경을 쓰지 않고 도착한 뒤에 해야 할 일을 바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그 덕분에 다음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어제 미리 가서 호텔에서 원고나 쓰고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몸이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고 도쿄에서 일을 계속 해야 했기 때문에 그럴 필요를 거의 못 느꼈다. 계획대로 약속 시간 15분 전에 도착해 계획을 다시 점검하고 강의 원고를 간단하게 검토한 뒤, 강연을 시작했다.

 

 

……

 

 

<7.10(월) 17:00 ~ 21:00>

 

수영장에 들러서 15분 정도 수영을 했다. 당뇨병 때문에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어떻게든지 조금씩 시간을 내서 그 시간에 되도록 부지런히 운동을 한다. 내 일정표는 예정 과업이 너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건강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절대 실현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밤을 새워 일해 본 적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하는 술자리에서도 신데렐라처럼 자정이 되면 거의 무조건 빠져나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갈 형편이 안 될 때는 호텔에 방을 얻어서라도 잠을 잤다.

 

돈이 아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돈을 주고 호텔에서 묵는 시간을 샀다고 여기며 그 시간에 부지런히 원고를 써서 그런 생각을 버릴 수 있었다. 일을 하는 데는 어느 정도는 반드시 돈이 들어가고, 실제로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일을 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오늘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없어서 다행이다. 강연이 끝난 뒤 바로 히로시마에 새로 개장한 온천공원을 취재하고 구경도 하고 목욕도 하느라 몇 시간을 쓰고, 취재 결과를 도쿄로 돌아오는 신칸센 안에서 정리하는데 많은 힘을 썼더니, 집에 돌아오자마자 몸이 늘어진다. 신칸센 안에서도 전화를 받고 새로운 일을 떠맡다 보니까 포스트잇이 또 몇 장 더 늘어났다. 포스트잇 두께가 수첩 두께보다 더 두꺼워질 지경이다.

 

하지만 바쁠수록 더욱 많은 일감을 맡아서 해내야 한다는 생각은 발상을 전환한 뒤 지금까지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다. 실제로 지금까지 마감 효과 따위 온갖 방법을 써서 내가 지닌 잠재력을 나름대로 되도록 많이 끌어올린 끝에 13년 동안 한 권도 쓰지 못한 책을, 10년 동안 60여 권이나 쓸 수 있었다. 바쁘게 사는 사람에게 해야 할 일은 언제든지 산더미 같으니, 그 일을 처리하고자 자기에게 맞는 시간 관리법을 짜내야 한다.

 

집에 돌아와서 늦은 저녁을 먹고 목욕을 하니 피곤하다. 내일도 오전 3시에 일어나서, 순수한 개인 시간에 되도록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 낮에 열심히 일했으니 잠이 틀림없이 잘 올 것이다. 자기 전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잡다한 서류와 우편물을 뒤적였다.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처리하면서 정리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이 책 'CEO의 다이어리엔 뭔가 비밀이 있다'를 완전히 다 소화했다 싶을 정도로 반복해서 읽은 뒤에 나름대로 써 본 이야기이다. 나는 류비셰프가 남긴 시간 기록을 본 뒤, 시간 관리나 일하는데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다룬 책을 읽으면, 그 책을 쓴 사람이 보내는 시간을 글이나 시간통계법으로 기록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남긴 기록 가운데 류비셰프 다음으로 흥미롭고 쓰는데도 류비셰프에 맞먹는 재미와 흥분을 느꼈던 기록이라서 굳이 여기에 남겨 본다.

 

이 책 'CEO의 다이어리엔 뭔가 비밀이 있다'를 쓴 니시무라 아키라는 실제로 위에 쓴 대로 산다. 연간 강연 300여 회, 쓰는 책 10여 권, 신문이나 잡지에 원고 연재 10여 편, 수많은 취재와 프로그램 방송 일정, 호텔 숙박 200여 회, 교통요금 100만 엔 넘음……그가 사는 방식과 해내는 일을 보여주면 보통 사람들은 그저 할 말을 잃을 뿐이다. 그가 가지고 다니는 일정표에는 빈틈이란 없으며, 빈틈이 있다 하더라도 금방 새로운 일정으로 차 버린다. 그렇게 계속 되는 일정을 따라 10여 해만 살다가는 보통 사람 같으면 강시에게 당한 사람처럼 온 몸에서 피와 정기가 바싹 말라버린 송장으로 변해 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서문에서 밝혔듯이 그는 40여 년 동안 마감 기한이건 강연 시간이건 어떤 약속 시간도 절대 어겨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과 가족들과 완전히 동떨어져 산 것도 아니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장기 목표를 이루고자 경제 평론가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40세에 자기 회사를 차리겠다는 계획도 정확하게 실천했다. 바쁜 일정 가운데에서도 틈틈이 음악을 듣고 한가로이 맥주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고, 주말에는 거의 어김없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남편과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려고 힘썼다. 모든 것이 그가 계획한 대로 진행되었고, 그만큼 그 삶은 알찼다.

 

그가 짠 계획은 복잡하고, 융통성이 있으면서도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다. 그런 만족스러운 계획표를 짜려면 반드시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 모든 원칙을 니시무라 아키라는 이 책에서 아낌없이 드러냈다. 경제 평론가답게 시간을 아끼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찾았고, 자기 특성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 꾸준히 발전시켰다. 때로는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죽은시간을 없애고자 새로운 습관을 작정하고 길렀다.

 

장기 계획을 세운 뒤 10년 단위 중기 계획을 세우기, 포스트잇과 수첩을 활용한 효율 높은 일정 관리법, 하루를 이틀로 만드는 오전 3시에 일어나는 방법, 약속 시간보다 무조건 일찍 도착하기, 1시간을 55분과 5분 또는 15분씩 네 단위로 나눠서 일하기……온갖 다양한 니시무라식 시간 관리법이 이 책 안에 풍부하게 들어있다. 맨 앞에 쓴 이야기에 나타나 있는 원칙은 그가 말한 온갖 것 가운데 일부밖에 되지 않으니,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시간 관리뿐만 아니라 시간 그 자체와 일하는 능력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도 나타나 있다. 그것은 그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세계 경제를 연구하고 분석하고 정신없이 자기 삶을 꾸려나가는 가운데 우러나온 것이다. 지은이가 쓰는 시간 관리법을 뒷받침하는 이론 바탕이라고 볼 수 있어서,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시간을 사고파는 것은 어떤 뜻이며 그 실례는 무엇이 있는가, 시각과 시간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어떻게든지 방법을 고안해내는 원동력을 짜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정보 감각이란 무엇인가, 목표를 자기 능력으로 해낼 수 잇는 것보다 3배 더 많이 잡아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시간 관리법이고 계획이고 생각이고 다 좋다. 하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저자도 건강을 잃는다면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전혀 쓸모가 없다고 지적한다. 건강해야 자기 능력보다 3배나 더 많은 일을 할 용기도 생기고, 계획을 세운 뒤에 어떻게든지 실천하려고 쓸 힘이 있다. 그리고 일단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했으면 어떻게든지 되도록 많은 일을 하는 습관을 들여서 그대로 쭉 밀고 나가야지, 천천히 실천해야겠다고 마음 편안히 먹으면 평생 습관이 들지 않는다. 저자도 바쁜 때 더욱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였을 때 지체 없이 실천하여 쭉 밀어붙여서, 13년 동안 단 한 권도 쓰지 못하던 책을 쓰기 시작한 첫 해에는 1권, 몇 년 뒤에는 무려 열 배인 10권 씩 꼬박꼬박 쓸 수 있게 되었다.

 

시간 관리법과 자기 개발을 연관 지어 다룬 책을 지금까지 꽤 많이 읽었다. 그런데 실제로 내 삶에 적용하지는 못하고 머릿속으로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는 내용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기 개발에 관심이 많지만 성과가 적은 나와 같은 이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막상 어떤 원칙을 적용하려고 하면 새로운 것을 실천하면서 한동안 겪어야 할 불편함을 몸과 마음이 기꺼이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는 까닭을 사람들은 흔히 든다. 그리고 단순한 핑계가 아니라 실제로 여건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이 반(A good beginning is half done)'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무릎을 탁 칠 정도로 크게 감탄했으면서도, 지금까지 실천하기 시작한 것은 별로 없다. 시간을 쪼개서 집중하는 방법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름대로 잘 썼던 방법이라서 그렇다고 쳐도, 포스트잇과 수첩을 활용하는 방법은 분명히 많은 이점이 있는데도 쓰지 않고 있다. 시간통계법에 그 방법을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험 삼아 그대로 해 보기는 했지만, 뭔가 빠진 것이 있는 것 같아서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실험을 그만두고 말았다.

 

특히 실천하기 가장 까다로운 것은 '하루를 이틀로 만드는 오전 3시에 일어나기'였다. 아무리 신데렐라처럼 늦어도 자정이 되면 술자리든 사교 모임이든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잔다 하더라도 겨우 2~3시간밖에 잘 수 없다. 철야 작업이나 근무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전 3시부터 밤까지 줄기차게 일하면, 보통 사람들은 밤이 되기도 전에 지쳐 쓰러질 지경에 이를 것이다.

 

이 책을 그토록 칭찬하던 성묵이도 오전 3시에 일어나는 건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군대에 있을 때는 절대 실천할 수 없는 원칙이므로 전역한 뒤에 한 번 실험해 보기는 하겠지만, 실험이 성공할 확률은 0이라고 봐도 좋겠다. 이미 오전 5시 전에 일어나는 사람은 오전 5시 뒤에 일어나는 사람보다 고혈압이나 뇌졸중에 걸려 쓰러질 확률이 무려 5배나 높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 아예 오전 3시에 일어날 생각을 접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해내는 모든 일을 보면서 그저 부럽다는 생각은 가시지 않으니 그것도 참 환장할 일이다. 지은이도 이 책에 나온 대로 나름대로 시간을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터득한 방법을 실천하면서도 고달픈 일도 꽤 많이 겪는다. 하지만 그렇게 고달픈 만큼 얻는 것이 있기에, 그는 시시각각 닥쳐오는 고통과 시련을 어떻게든지 견디면서 삶을 풍요롭게 즐기려고 한다. 지은이가 하는 모든 일은 자기가 세운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고, 그 안에서 그는 가족과 일 모두를 놓치지 않고 많은 것을 성취해내며 보람찬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든지 지은이와 같이 살고자 나는 부지런히 힘쓸 것이다. 마흔 한 달이 넘게 쓰고 있는 시간통계법을 보강하는데 나름대로 많은 도움이 되었으니 다행이다.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다 쓰려면 이 독후감보다 몇 배는 더 긴 글을 써야 하니, 언젠가 작정하고 따로 쓰겠다. 그리고 한동안 자기 개발을 다룬 책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낀 적이 거의 없었는데, 꽤 오랜만에 책읽기가 즐거웠으니 그것도 좋다.

 

역시 내 친구가 추천한 책이라서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앞에서도 잠깐 말했듯이 나와 가장 친한 친구 가운데 한 명인 성묵이가 내용이 정말 알차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책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이 책을 읽었으니 둘 다 전역한 뒤에 누가 과연 이 책에 있는 내용을 더 잘 받아들여 더 많이 실천하고 있는지 견주어 봐야겠다. 따로 써야 할 이야기도 덧붙었으니 정리해야 하고, 이 책에 나오는 좋은 방법들도 나름대로 실천해야 할 방법을 찾아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많다. 절대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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